[새벽묵상-하박국1장] 질문하는가? (합 1:1-11)
“질문하고 있는가? 언제까지 질문해야 하는가?”
“어느 때까지리이까… 어찌하여…”(1:2, 3)
예스맨은 쉬운 사람이지만, 맞는 사람은 아니다. 역사 속에, 사회 속에 ‘예스맨’으로 있을 때, 당장은 평안한 것 같지만, 실은 역사를 망가 뜨리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하박국 선지자는 예스맨이 아니었다. 그는 타락하고 부패한 자기 조국, 유대민족의 죄악상, 타락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항거했다. 하나님께 질문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2)
질문하는 것은 반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더 나은 발전을 위한 것이다. 답을 찾는 것은 더 나은 단계로의 발판이 된다. 조금 껄끄럽더라도, 진정한 발전을 위한다면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하박국 선지자는 질문을 던짐으로 몇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갖는다.
첫째, 죄에 대해서 깨어 있게 되었다.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2)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3)
영적으로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깨어 있다는 뜻이고, 죄에 대해서 민감하다는 뜻이다. 죄와 타협하지 않고, 죄에 대해 ‘잘못’ ‘악’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죄에 둔감하고, 죄에 타협하는 이 시대, 이러한 선지자적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 하나님의 답을 얻는다. 즉, 정답을 얻는다.
하나님은 두가지도 대답하신다. 바벨론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과(5-10), 바벨론 또한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을 말씀하신다(11). 만약 바벨론만 끝까지 남는다면 정답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바벨론 또한 심판하심으로 하나님 자신이 정답임을 말씀하신다.
답은 분명히 있다. 하나님은 모든 정답을 갖고 계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과감히, 늘, 깊게, 세밀하게 질문해야 한다. 그럴 때 답을 얻게 되고, 그 답을 얻어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답 없이 나아가면 참된 발전으로 나아갈 수 없다.
질문 하는 자만이 답을 얻게 된다.
하나님께 질문하는 자만이 정답을 얻게 된다.
질문하고, 답을 얻는 자만이, 모든 상황 끝에서 비로소 새롭게 시작하는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된다.
제일 큰 문제는 질문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어쩌면, 현재 사회를 보면서 겪는 혼란과 어려움의 이유는, 지나온 과정을 보면서 너무 당연히 하거나, 너무 쉽게 상황을 받아 들인데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질문하기를 두려워하지는 않았는가? 질문하는 것을 무례하게 여기거나, 당돌한 것으로 스스로 생각한 것이 아니었는가?
질문하지 않고, 그냥 덮어두고, 그냥 넘어가는 것은 ‘역사에 악의 획을 긋는 공범’임을 알아야 한다.
질문을 못하는 것이 무능한 것이다.
질문을 안하는 것이 함께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다.
질문을 피하는 것이 가장 비겁한 것이다.
질문을 던지는 것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질문을 던지는 것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적극적 자세이다.
인간은 질문함으로 존재의의를 갖고,
하나님은 답을 주심으로 그 존재의의를 가지신다.
끝까지 질문해야 한다. 언제까지? 정답이 올 때까지!
(정답은? 짧은 3장으로 된 하박국서 3장에 있지 않을까…
그러나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는 자 만이, 정답을 넘어 해답을 갖게 될 것이다.)
(새벽 묵상: 하박국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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