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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시편36편] 기도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시편 36:1-12)
[새아침 기도회/배헌석 목사] (시편 36:1-12)
[새벽묵상-시편36편] 기도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시편 36:1-12)
https://www.youtube.com/watch?v=Qba70_kHEnI
#기도 #시편 #응답
목사님들께 성도님들이 신앙 상담하러 가면 자주 이런 말을 듣습니다. '기도하면 돼...'
맞는 말씀이긴 하지만, 항상 동일한 답변이고, 의례적인 답변이라 생각되어 난감할 때가 많다고 말씀들을 하십니다. '기도하면 돼!'라고 말씀하시는 목사님들의 마음과 의도는 분명히 알 것 같습니다.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는 분들은 그것이 정답이라는 것을 정말로 가슴으로 확신하기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왜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삶의 우선이 되어야 할 지'를 함께 나눈다면 기도라는 정답이, 자신의 삶과 마음으로, 실제로, 자발적으로 행하게 되는,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도 '기도해야 돼!'라고 격려할 수 있게 되는 '삶의 해답'이 될 것입니다.
시편 저자는 그 기도의 이유를 시편 36편에 설명합니다. 실로 시편 36편은 기도 교과서 중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일단 '기도에 대한 명령적 표현' 대신에 일반적인 삶의 모습을 시편 저자는 말합니다.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설득력있는 접근을 합니다. 일반적인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내버려 두면 어떻게 될까요?
절대적인 존재에 대해서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1). 이는 삶을 완전함으로 이끈다든지, 잘못에 대해 벌을 내리는 공의적 존재에 대한 부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자신의 죄가 죄로 여겨지지도 않고, 또 그로 인해 사회적 질타도 없게 됨을 그대로 말합니다(2).
인간 사회에 아무런 규제나, 아무런 법적 기준이 없으면 사회는 통제 불능의 사회가 될 것입니다. 착하게 사는 사람은 그런 사회 속에서 일정 기간 윤리적 생활을 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생존 본능에 위협을 받게 되면 돌변하게 됩니다. 인간의 본성이 연약하고, 자기 중심적이고, 생존 지향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에 대해서 의미를 두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모습은 반사회적 모습이 되거나, 삶의 무의미를 붙잡게 되는 허무주의자가 되거나, 반대로 현세적 퇴폐주의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인간 사회를 인간 그대로 두게 되면 총체적 난국에 처하게 됩니다(3-4). 사람은 무엇을, 어떤 것을 찾아야 할까요? 인자(mercy), 진실, 공의, 기준에 의한 평가와 실행(심판 등이 있어야 함을 깨닫고, 구하게 됩니다(5-6).
자비, 진실, 정의, 심판을 바르게 행하는 존재가 있을까요? 그 어떤 인간 속에서 이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절대자를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어떤 종교가 앞의 네가지를 다 갖고 있는 신을 소개하나요? 인간이 추구하고 만든 신은 결코 앞의 네가지를 다 가질 수 없습니다. 인간의 염원과 머리에서 나오는 신은 제약적, 한계적 신, 즉 진정한 신이 아니고, 인간의 염원의 결과물을 따름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이 다 한계가 있는 것은 인간이 만든 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자비, 진실, 정의, 심판을 다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이런 영역이 필요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존재 자체가 완벽하고 절대적인 분이시기에, 그 분의 존재에 의해서 삶의 정황에 완벽하게 대처하시는 것입니다.
필요에 의한 신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의한 신의 사역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신에 대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네. 기도 입니다.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7),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8),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9)... 자연스럽게 기도가 행해집니다.
인간의 처절한 연약함, 사악함을 진실하게 깨달았을 때, 인간은 자연스럽게 절대주 삼위일체 하나님께 의지하게 됩니다. 그 삼위일체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알려 집니다. 그래서 성경에 입각하지 않은 기도는 올바른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말씀 생활이 된 사람은 반드시 진실한 기도자가 됩니다. 인간 실존의 한계와 한계 극복의 길을 정확하게 알게 되기에, 가장 절실한 심정으로 기도자가 됩니다.
시편 기자의 간절한 기도는 10-11절에 절정을 이룹니다.
"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 베푸시며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공의를 베푸소서
교만한 자의 발이내게 이르지 못하게 하시며
악인들의 손이 나를 쫓아내지 못하게 하소서"
이러한 기도에 대한 과정과 기도 이유에 대한 설명은 협박이나, 무미 건조한 막무가내 상담이 아닙니다. 진지한 존재와 실존에 대한 고민자가 갖게 된 기도의 이유와 기도의 결과를 체험했기에 자신의 설명, 간증으로 나누는 것이 바로 '기도하면 돼'라는 표현입니다.
그는 이렇게 간증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이 거기서 넘어졌으니..."(12)
결국 악을 이긴 하나님의 능력을 기도 응답으로 체험하였던 것입니다. 어쩌면 실제 응답 전에 하나님만이 주시는 평안의 응답을 먼저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고백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빌 4:6-7). 그만큼 기도는 실제적인 것이고, 능력이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실제적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갖고 계십니까?
지금 '기도하시고 계신다면' 진정으로 기도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해답을 갖고 계신 분이십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자(의 삶)'가 기도의 진정한 이유입니다!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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