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새벽묵상-눅7장] 더 넓게, 더 길게, 더 높게, 더 깊게 나아가시는 예수님(The Truth) (눅 7:1-17)
더 넓게, 더 길게, 더 높게, 더 깊게 나아가시는 예수님(The Truth)
앤아버 소망 교회 새아침 기도회(2021년 1월 19일, 화요일 @ 6:30 AM)
눅 7:1-17
배헌석 목사
더 넓게, 더 길게, 더 높게, 더 깊게 나아가시는 예수님(The Truth)
의사 누가는 수리아 안디옥에서 태어난 이방인으로 보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직접 대하면서 따랐던 12제자에 속하지 않지만, 예수님의 부활/승천 이후에도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의 광대한 능력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성령 하나님에 의해서 가능하며, 예수님 부활/승천 이후 약 20-30년후에 이러한 예수님의 능력을 ‘누가복음’을 통해 의사 누가가 기록했듯이, 동일한 성령님의 능력은 2천년 후인 우리들에게도 강력하게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묵상하면서 누가가 깨달았던 예수님의 능력의 더 넓고, 더 길고, 더 높고, 더 깊은 역사하심을 함께 나누며 주님의 그 능력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함께 하시기를 소망하며 나누기를 원합니다. 이 ‘더 넓고, 길고, 높고 깊은’이라는 표현은 에베소서 3:18-19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력하기에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더 깨닫기를 원하는 사도 바울의 표현’을 빌어서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풍성함과 능력이 강력하기에 더 넓고(지역적, 인종적), 더 길고(시간적, 역사적), 더 높고(권능과 지혜의 측면), 더 깊게(마음 깊숙한 내면과 가장 낮은 영역까지) 역사함을 믿습니다.
첫째, [더 높게]-누가는 예수님의 말씀이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말씀 자체가 실천적 능력까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1)라고 표현된 ‘말씀을 마치심’은 ‘에플레로센’으로서 ‘충만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충만하신’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이론과 실천’이 함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저 사람은 말만 한다’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살았고, 운동력이 있기에 진리의 말씀, 주님의 말씀을 우리가 믿음으로 겸손히 들을 때, 우리의 심령이 쪼개지고, 변화되고, 가치관과 삶의 주인이 바뀌는 역동성이 있는 것이 주님 말씀의 충족성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말씀의 실천으로 가버나움과 나인 성에서 놀라운 역사를 행하십니다.
주님 말씀만으로 족합니다. 그 말씀이 우리의 생각과 삶을 변혁시킵니다. 사람의 말은 이해차원에 머무르고 이론에만 그치기 쉽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전인격을 변화시킵니다. 이런 면에서 누가는 주님의 모든 말씀의 충족성을 표현하는 차원에서 ‘마치시고…’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둘째, [더 넓게]-누가는 백부장이 자신의 종(2, 둘로스, 즉 노예를 뜻함)을 하인(7, 파이스, 즉 사랑과 인격적 자세를 담은 표현)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이 들어가면 이방인인 백부장에게까지 복음의 능력이 역사하고, 그 백부장의 인격까지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표현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이 우리 속에 역사하면 나의 자기 중심적인 가치관, 제약적 시각을 뛰어 넘게 합니다. 복음은 유대인만의 복음이 아니라, 이방인을 넘어 원수에게까지 다가가게 되는 지경을 넘는 역동성을 갖습니다.
셋째, [더 높게]-누가는 백부장이 예수님께 자신의 하인에게 갈 필요가 없이 ‘말씀만 하자’(7)라고 표현한 것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의사의 차원을 넘어, 말씀으로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자세를 백부장이 가졌던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를 넘어,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는 인간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능력과 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능력과 지혜는 그 어떤 인간도 풀 수 없는 죄의 문제, 악의 문제를 해결한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의지할 때, 세상 사람들이 이해 못하는 하나님의 능력, 권위, 풍성한 사랑,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결코 법이나 도덕적 노력으로 풀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습니다. 은혜 받은 자의 비밀이 있습니다. 최고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교회’라는 공동체를 이런 면에서 신비한 공동체라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익이 남아야 그 회사나 기업이 살아 남는데, 교회라는 공동체는 자신의 이익 대신에 헌금, 헌신 등 더 많이 바치는 단체 임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에 가장 오래 생존하는 기업(?)임을 보면서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안에 구성원인 성도님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라는 비교할 수 없는 무한한 능력의 ‘이익’을 피터 드러커가 이해했다면 경영학적으로도 더 영적 차원의 이론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넷째, [더 깊게]-예수님께서 나인성 과부를 보시며 불쌍히 여기시고(13), 그 아들의 시체가 있는 관에 손을 대셨습니다(14). 의사 누가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기록한 것은 예수님의 사랑의 깊이를 그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불쌍히 여기는’ 그 표현은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 불쌍한 과부의 가장 깊은 아픔을 자신이 함께 체험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그렇게 깊은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는 그렇게 진실한 것입니다. 당시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는 것은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의 죽은 시체를 직접 만지시는 주님을 보면서 나인성 과부는 정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로와 격려를 받았을 것입니다. 가족외에는 할 수 없는 그런 일을 예수님께서는 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의 깊이 입니다.
다섯째, [더 길게]-죽었던 청년이 다시 살아났습니다(16). 이 청년은 죽음을 뛰어 넘은 당사자입니다.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의 아픔을, 절망을 예수님에 의해서 직접 체험하며, 살아난 자입니다. 이 청년의 남은 평생은 어땠을까요? 그는 어떤 절망이 와도, 어떤 고통이 와도 위로받고, 산 소망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단순히 한 순간의 사역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평생이 바뀌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영생이 성취 되는 사역입니다. 그래서 그냥 ‘긴’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입니다.
누가는 의사로서 이러한 ‘더 넓고, 길고, 높고, 길게’ 역사하는 주님의 능력을 기억하면서, 복음서를 썼습니다. 의사로서 더 자세하게, 더 실제성과 의미를 담아 기록하였습니다.
이 모든 역사는 어디서 시작되었습니까? 주님,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만을 바라 보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물고기 2배 가득한 놀라운 상황을 주시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 하신 다음 ‘이제 세상으로 사람 낚으러 가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능력의 원천이 주님으로부터’만’ 오기 때문입니다.
더 넓게, 더 길게, 더 높게, 더 깊게 역동적 삶을 살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삶의 매 순간,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만을 따라야 합니다!!!
풍랑 가운데에서도…
주님 바라 보며 물위를 걷게 된 상황에서도…
잠시 실수하여 물 속으로 빠지게 된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어떤 상황속에서도 우리는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만을 따라야 합니다.
I have decided to follow Jesus…
No turning back, no turning back!!!
(매일 성경 새아침 기도회 묵상: 눅 7:1-17)
앤아버 소망 교회 ‘줌’
주일 예배 @ 2 PM / 새아침 기도회 @ 6:30 AM / 수요 성경 공부 @ 7:30 PM
새벽 Q.T.
Dawn Q.T.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