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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시편46편] 삶에서 큰 ‘환난’과 ‘고통’을 당할 때… (시 46:1-11)
삶에서 큰 ‘환난’과 ‘고통’을 당할 때…
“너희는 가만히 있어(be still)…” (46:10)
살면서 감당하기 쉽지 않은 고난과 환난을 당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공 소식을 접하기도 하였고, 자신에게 큰 병이 걸려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상황을 접하기도 하였습니다.
환난과 고난은 외적인 측면이고, 고통은 내가 내면적으로 겪는 측면입니다. 실은 이 두가지 측면을 모두 살펴 볼 때, 환난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피조물)를 잘 아시기에 이렇게 두 단계로 말씀하십니다.
1) 먼저는 ‘가만히 있어(be still…)’라고 말씀하십니다(10). 흔히 고난과 환난을 맞게 되면 내 마음에 고통이 커지게 됩니다. 그 고통은 보통 나의 감정을 흔들어 놓습니다. 불안과 걱정, 염려와 괴로움을 나에게 퍼붓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고통은 나의 감정이 건드려지고, 어렵게 되는 상황입니다. 이는 심리학자들이나 정신과 의사들도 함께 동의하며 분석하는 관점입니다.
외적상황은 분명히 고난의 상황이지만, 그 상황을 직면하는 나의 내면은 먼저 ‘감정’에 큰 동요가 있게 되고, 그로 인해 ‘고통’은 더 강력해 지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가만히 있어라..(be still…)’라고 말씀 하십니다.
저도 종종 이런 경험을 많이 합니다. 예기치 못한 외적 고난의 상황을 겪을 때 제 마음도 몹시 흔들리고, 힘들어 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때 당장 제가 반응하지 않고, 그냥 하루 정도 조금 힘이 들어도 ‘가만히’ 있어 봅니다. 잠을 잔다거나, 생각없이 산책을 한다거나, 잊어 버릴 수 있는 영화를 본다거나, 재미있는 수필집을 읽는다거나… 가능하면 그 상황에 ‘즉각 반응’ 대신에 조금은 시간의 흐름을 가질 수 있도록 다른 일들에 신경을 쏟아 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하루 정도 지나면 어제 느꼈던 그런 고통보다는 훨씬 절감된 고통의 통증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고난 상황에 제일 먼저 나의 ‘감정’에 큰 영향이 미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첫 단계로 ‘가만히 있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릴 때 저희 집에 걸린 액자에 ‘괴로우면 주를 보라, 외로우면 찬송하라, 고요하면 기도하라’는 문구를 저는 늘 기억합니다(제가 커서 찾아 보니 이 문구는 제가 조금 순서와 내용을 바꿔서 기억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를 보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도 저에게는 중요했지만, 어쩌면 더 먼저 와 닿았던 것은 ‘괴로우면… 외로우면… 고요하면…’이라는 문구 였습니다.
괴로움은 어쩌면 관계 면에서 외롭게 저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게 됩니다. 그런데 그 다음 문구인 ‘고요하면…’이라는 문구가 늘 제일 마지막으로 저에게 기억된 것은 ‘고요함이 주는 두가지 의미’ 때문이었습니다.
고요함의 단계는 내가 붙잡고 있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마지막 희망도,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다 놓게 되는 단계입니다. 그리고 그 단계는 더 깊게 격분하거나 걱정하는 감정도 다 내려 놓게 되는 고요함의 최저의 단계로 저를 이끌어 줍니다. 그 최저의 고요함의 단계, 감정도 다 내려 놓게 되는 그 단계가 바로 진심의 기도가 시작되는 단계임을 저는 삶의 고난 속에서 저 자신도 모르게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물론 이렇게 분석적으로 어릴 때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런 과정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삶에서 고난을 당하던, 그렇지 않던, 이런 ‘가만히 있어…’의 단계를 갖는 것은 참으로 필요하다고 봅니다. 너무나 ‘감정적(emotional)’이 되기에, 나도, 남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감정적이 되면 ‘엎질러진 물’의 상황을 겪기 쉽습니다. 물은 한번 엎지르면 다시 담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고난의 상황이 되어도 ‘가만히 있는…(be still…)’ 자세로 나아감을 다시 한번 더 다짐해 봅니다. ‘감정’에 속아 넘어가서, 내 영혼도, 남의 영혼도 해꼬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2) 그런데 성경은 그 다음 단계도 반드시 필요함을 말씀합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know that I am God)’의 단계입니다(10).
많은 교육학자들은 세상과 삶을 보는 프레임이 바뀔 때 고난에 대한 우리의 반응도 바뀐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아기가 태어나서 엄마, 아빠를 인지할 때 그 인지도는 매우 자기 중심적입니다. 엄마의 숨결과 손길, 눈에 보이는 상황이 될 때는 안심하고 안정이 되지만, 안 보이고, 안 안아줄 때 아기는 불안해 하고, 울고, 짜증내게 됩니다.
그러나 아기가 자라면서 보고 느끼는 인지도가 발전하게 되면, 당장 엄마의 존재가 자신의 눈 앞에 보이지 않아도, 엄마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거나, 거실에서 청소한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안심하고 자신 혼자서도 잘 놀게 됩니다.
이는 보는, 느끼는 프레임이 바뀐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보는 프레임이 바뀌면 똑같은 상황이라도 고난으로 느끼지 않고, 오히려 더 안심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적군이 쳐 들어와도, 눈 앞에 적군의 대군이 보여도, 하나님은 그 위에 계시고, 천군천사를 이끄시고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이시고(1-3), 환난 중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4-7), 전쟁을 그치게 하시는 분(8-9)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보는 내 눈의 프레임이 있으면 우리는 눈앞의 고난 상황 속에서도 평안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무리 먹구름, 천둥 번개의 상황이라도 그 구름 위에는 찬란한 태양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비행기 타 보면 압니다. 구름만 보는 프레임(보는 시각)과 구름 위를 보는 프레임은 고난을 대하는 큰 차이를 우리에게 제공해 줍니다.
오늘 10절의 말씀은 참으로 큰 지혜와 힘을 줍니다.
감당하기 힘든 외적, 내적, 관계적 고난의 상황을 맞이하시더라도…
Be still… 가만히 있어 보시고…
Know that God is there… 상황 위에 계시는 하나님 보시기를…
바랍니다…
(매일 성경-새벽 묵상 / 시편 46:1-11)
앤아버 소망 교회 ‘줌’
주일 예배 @ 2 PM / 새아침 기도회 @ 6:30 AM / 수요 성경 공부 @ 7:30 PM
https://us02web.zoom.us/j/5616249763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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