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노예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좀 심한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자세히 우리의 삶을 살펴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물질욕의 노예, 자존심의 노예, 인기의 노예, 경쟁에서의 승리해야 되겠다는 성취감의 노예 등 등.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사는 400여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총리 요셉이 누렸던 존경대신 파라오 왕의 피라미드 벽돌을 만들어 내는 노예로 전락하였습니다. 신분적 의미 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문화, 종교, 사회 체계 등 삶의 전 영역이 자신도 모르게 노예의 신분으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익숙해진 자신의 삶을 그냥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선조부터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나도 운명으로 여기고 받아 들여야 되겠다고 생각한다면, 이제는 생각마저 노예적 관점을 갖게 된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상황입니다.
현대인도 다를 바가 없다고 봅니다.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합니다. 문명의 이기가 발달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회 네트워크나 사회 체재, 문화 등에 우리는 아무런 반론도 하지 않고, 그냥 무비판적으로 받아 들입니다. 비판력이 약한 우리의 자녀들은 더 심각한 사회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자신은 자유함을 누린다고 생각하지만, 사회 체제, 사회 이념은 생존과 경쟁, 승리주의와 성취주의의 끈으로 우리의 목을 재여 옵니다.
이집트를 떠나는 것이 참된 자유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의 어려움만 있을 따름입니다. 그냥 ‘탈출의 의미로 자유’를 생각한다면 광야의 힘든 상황이 전개될 때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더 노예로 묶이게 될 것입니다.
참된 자유는 인간 형상의 본질 되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입니다. 그 하나님과 인격적, 친밀한 교제와 관계를 가질 때 비로소 인간은 참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바로에게 이렇게 말하게 합니다.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 나셨은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출 5:3)
광야든, 이집트든, 가나안이든, 어디든
혼자 있든, 사회 속에 있든
어떤 상황 속에서라도
어디나 계시는 하나님과 동행/교제할 때
참 자유의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도 삶의 매 순간 예배자가 되심으로
참 자유를 누리는 귀한 삶 사시길 기원합니다.
(매일 성경 새아침 기도회 묵상: 출 5:1-21)
앤아버 소망 교회 ‘줌’
주일 예배 @ 2 PM / 새아침 기도회 @ 6:30 AM / 수요 성경 공부 @ 7:30 PM
https://us02web.zoom.us/j/5616249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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