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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약1장] 언어 생활을 바르게 하는 길 (약 1:19-27)
언어 생활을 바르게 하는 길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1:25)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서가 말하는 열매(실천의 영역)는 ‘말’이다. 말 때문에 상처입고, 말 때문에 천냥 빚을 갚게 된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 것이라’(26) 했다.
말의 중요성은 더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삶의 영역에서 쉽게 말을 내뱉기가 쉽다. 건성으로 남의 말을 듣기 쉽다. 말 한 것을 지키지 않기가 쉽다. 함부로 말하기 쉽다.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아서 너무 심한 말로 사람을 몽둥이나 돌로 때리는 것보다 더 크게 상해를 입힐 수 있다. 댓글로 인해 심지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언어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계속해서 야고보서는 열매를 얘기하지만, 동시에 뿌리를 얘기한다. 19-20절은 언어 생활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며 얘기한다.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20). 그리고 본문의 끝 단락인 26절에서도 한번 더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26). 끝부분에서는 매우 강력하게 언어의 중요성을 경고와 함께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처음과 끝의 중간에 있는 단락은 실은 이러한 말, 언어 생활의 뿌리가 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언어라는 열매의 뿌리는 어떤 것일까? 아래 구절을 읽어보면 답이 나온다. 이 구절(21절)은 19-20절, 즉 언어에 대한 서론 부분 이후 바로 등장하는 구절이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21)
이 구절은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 즉 내 마음의 내면을 깨끗이 한 다음에 말씀을 받으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NASB에서는”Therefore, putting aside all filthiness and all that remains of wickedness, in humility receive the word implanted, which is able to save your souls.”로 표현을 하면서, 말씀을 온유하게 받는 것에 대해서 더럽고 악한 것이 마음에서 몰아내 지는 상황을 분사적 형태로 사용한 것을 보면서 원문의 의미(NASB는 원문에 더 가깝게 직역)가 말씀을 받을 때 악한 내면이 깨끗하게 되어지는 상황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 언어라는 열매는 말씀이라는 뿌리에서 나온다. 나쁜 언어는 말씀 대신에 죄성으로 가득찬 내면이라는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고, 좋은 언어는 죄성 대신에 내 안에 있는 말씀에 의해서 나오는 것이다. 열매가 중요하지만, 실은 뿌리가 더 중요하다.
말씀은 영혼을 능히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21). 말씀은 자유를 주는 온전한 율법이다(25). 그래서 말씀으로 채워지면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이 나의 마음에서 저절로 떠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영적 삼투압 현상이라 한다. 말씀의 농도는 분명히 죄의 농도보다 진하고 무게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한다. 무거운 액체가 들어오면 가벼운 액체는 위로 올라가다가 더 무거운 액체로 다 채워지게 되면, 가벼운 액체는 바깥으로 밀려 나듯이, 가장 무게가 있는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면, ‘모든 더러운 것과 악’은 아무리 많아도 바깥으로 밀려나게 된다.
나의 삶에서 올바른 언어 생활을 하는 길은 이 길 밖에 없다. 말씀이 내 안에 가득차게 하라. 말씀으로 가득 채움받아라! 그러면 내 안에 있는 것이 나온다. 향나무가 도끼로 찍혀도 향기를 발하듯이, 내 안에 가득찬 그것이 바로 나의 입을 통하여 나올 것이다. 그 상황이 저주받고, 조롱받고, 멸시받고, 천대받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눈에 불이 뿜어지고, 피가 나올 것 같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할찌라도… 실은 그러한 상황에서 오히려 말씀이 주는 사랑과 위로의 표현이 나올 때 성도는 반응적 존재(reactive)가 아니라, 책임적 존재(responsive)가 된다.
야고보서는 이러한 언어의 신앙적 삶을 나의 개인 내면적 삶으로 그치지 않는다. 바로 다음 구절을 주의해서 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27)
내면이 진정으로 풍성하면, 내면이 참된 진리로 가득차면 그 진리는 자유함이 있고, 생명이 있기에 결코 자신의 내면의 세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진짜 풍성함은 ‘자아 완성’을 넘어, ‘타자 섬김’으로 나아간다. 참된 자유는 눌림과 매임으로 부터 자유(freedom from)의 모습도 있지만, 사회를 향하여, 약자를 향하여 사랑으로 다가가고 실제로 나누고 섬기는 자유(freedom for)의 모습도 갖는 것이다.
이 두가지 열매, 즉 상처입지 않는 강력한 내면에 의한 상처 주지 않는 아름다운 언어 생활의 열매와 함께 죽어가는 자에게 참된 위로와 격려를 줌으로 사람을 살리는 적극적 언어 생활의 열매를 함께 살아내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두 열매는 이 사회를 살리는 초석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두 열매는 단 하나의 뿌리, ‘말씀’으로부터만 온다!
(매일 성경 새아침 기도회 묵상: 약 1:19-27)
앤아버 소망 교회 ‘줌’
주일 예배 @ 2 PM / 새아침 기도회 @ 6:30 AM / 수요 성경 공부 @ 7:30 PM
https://us02web.zoom.us/j/5616249763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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