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도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흔히 구약의 종교를 제사 종교라고 말합니다. 언젠가 수요성경공부를 통해서 레위기를 공부하고 있는데, 거기에 보면 구약의 제사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제사의 형식이 아니라,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물의 좋고 나쁨을 따지지 않으시고, 그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마음을 보십니다. 구약의 수많은 예언자들은 바로 형식에 치우쳐서 올바른 제사를 드리지 않는 것을 비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69편 시인도 이러한 예언자들의 정신을 마음 속에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30절과 31절에서 시인은 노래로 찬양하는 것이 황소를 드리는 제사보다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한다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황소는 아무나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에는 황소 한 마리 키워서 자식을 대학까지 보냈다고 합니다. 구약의 시대에 황소를 제사로 드릴 정도라면 얼마나 부자여야 하는지 짐작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거의 집한채를 바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황소를 드리는 제사가 결코 하나님을 기뻐하시게 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황소를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황소를 바칠 정도라면 상당한 신앙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물의 가치로 사람들에게 복을 주는 싸구려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헌금을 많이 하면 하나님이 복을 많이 주실 것이고, 헌금을 적게 하면 복을 적게 주시는 분을 생각한다면 돈을 많이 주면 큰 복을 빌어주는 무당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시편 69편의 시인은 황소를 드리는 제사보다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하는 것이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시인이 어떠한 상황에서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시편 69편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십자가에서 부르짖었던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시편 22편 다음으로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나게 하는 시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절부터 4절까지만 읽어보아도 시인은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절망의 상태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난에 대한 묘사는 29절까지 계속됩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시인은 30절에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게 말은 쉽지만 막상 우리가 이 시인처럼 고난의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우리의 입에서 찬송이 흘러나올 수 있을까요? 지금 당장 죽게 생겼는데 우리 입에서 감사가 흘러나올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감사하는 경우의 대부분은 우리의 일이 우리 생각대로 잘 풀리고 있을 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시인처럼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무엇을 했습니까? 그들을 감옥 속에서 하나님께 찬송을 드렸습니다. 이런 점에서 바울과 실라는 시편 69편을 노래한 시인의 마음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고난에 직면해서 신앙을 지켜낸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의 신앙고백을 바울과 실라는 자신들의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흔히 사람의 신앙이 어떠한 단계인지는 그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 순간에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하나님의 사람들의 신앙을 더욱 굳세게 하려고 고난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한 고난의 순간은 오히려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기회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당하고 있는 고난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 앞에 허물이 많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오늘 시편 69편의 시인이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열심히 그 원인이 되었다고 9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바로 이 구절은 신약의 요한복음 2장 17절에서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는 장면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시편 69편의 시인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는 열정 때문에 고난을 당한 것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금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기 위한 열정 때문에 핍박을 받으셨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시인의 고난이 더욱 참기 힘든 고통으로 다가온 것은,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려는 행동이 오히려 그를 위험 속에 빠뜨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열심히 믿고 따르려고 노력하지만, 오히려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심한 좌절에 빠지기도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복받고 잘 살게 된다고 생각했는데,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오히려 손해보는 상황이 생깁니다. 이러한 시련의 순간을 이기기 위해서 여러분은 무엇을 하십니까? 오늘 시편 69편의 시인은 하나님께 기도하겠다고 13절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기도에 응답해 달라는 시인의 요청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13절, 16절, 17절에 반복적으로 응답해 달라고 부르짖었겠습니까? 우리도 이러한 시인의 끈질긴 자세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한두번 기도하고 응답이 없어서 쉽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시기를 바라는 기도를 끈질기게 해야 할 것입니다. 얍복강가에서 야곱이 끈질기게 매달려서 결국에는 복을 받아낸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시편 69편은 고통을 호소하는 시인의 부르짖음으로 시작하지만 그 부르짖음은 점차 기도로, 그리고 찬양과 감사로 바뀌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며 예배드리기를 기뻐했던 시인은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시인의 상황 가운데 함께하고 계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인의 무고한 고통을 잘 알고 계시다는 사실 속에서 시인은 커다란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시인은 비록 자신은 ‘가난하고 슬프지만’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신뢰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며 나아가 온 천하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시편 69편을 통해서 고난 속에서 오히려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이러한 시인의 믿음은 커다란 결실을 맺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온 천하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온 천하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모든 것이 회복되는 순간은, 고난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믿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시인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함으로 구원이 회복되고 온 천하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출발점이 된 것처럼, 오늘 이 시간 우리가 고난 속에서 드리는 기도가 이 세상이 모든 왜곡된 상황을 올바르게 회복시키고 온 천하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출발점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믿음의 자리를 굳게 지켜나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매일 성경-새벽 묵상 / 시편 69:19-36)
앤아버 소망 교회 ‘줌’
주일 예배 @ 2 PM / 새아침 기도회 @ 6:30 AM / 수요 성경 공부 @ 7:3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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