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매일묵상] 욥기 36:26-37:24 (12/14/23/목) "반쪽만 아는 신앙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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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후는 221의 법칙을 사람에게도 잘 못 적용하고, 하나님께도 잘못 적용합니다. 221의 법칙은 귀 두개, 눈 두개, 그리고 입 하나의 원리를 말합니다. 잘 들어야 하고, 잘 보아야 합니다. 대신 말할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욥과 그의 세 친구들이 나누는 3차례의 논쟁을 제대로 듣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자신의 관점으로만 들었습니다. 그는 '그냥 들었지(hearing)' '새겨 듣지(listening)'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자세였기에 그가 가졌던 하나님관도 221의 원리에서 반대의 입장을 가졌던 것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을 하나님의 전부로 여긴 매우 위험하며, 심지어 공동체를 훼손시키는 무서운 자세를 갖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높고 멀리 계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26-33). 그러니 하나님께 대들지 말고, 그냥 조용히 있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임마누엘 하나님이시기도 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나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하라고만 합니다(1-13). 그러나 그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하지만, 질문이 있을 때 물을 수 있고, 하나님은 그런 질문에 답도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 중심의 자세이죠. 질문하고, 요청하는 모세를 향하여, 예리미야를 향하여 하나님은 답도 주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을 무조건 경외하라고 합니다(14-24). 그러나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맹종의 자세로, 아무런 지정의의 인격적 자세가 없이 행하는 무조건의 경외를 하나님은 오히려 맹신이라고 싫어 하실 수 있으십니다. 물론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따지고, 다 이해되는 답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한 쪽(초월적 하나님, 명령만 하시는 하나님, 경외를 강요하시는 하나님)만 강조하다 보면 하나님의 전인적인 측면(내재하시는 하나님, 질문도 받으시고 답변 주시는 하나님, 마음 다한 경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무시할 수 있고, 그러할 때 우리의 신앙은 남에게 강요하는 자세, 인격성이 없어지는 맹종의 자세, 그로 인해 참된 생명과 사랑이 빠진, 인격성이 빠진 건조한 신앙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럴 때 남을 향하여, 이웃을 향하여 참된 사랑으로도 다가갈 수 없게 됩니다. 반쪽만 아는 신앙의 위험성이 큽니다. 그래서 성경을 전체적으로, 전인적으로 읽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