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 수 144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사람에게 변화는 가능할까?]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주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2:24)

 

 

 

 

 

사람에게 변화는 가능한가?  일반 교육학에서는 변화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중고등 학생 시절이나, 청년까지는 어쩌면 자라는 과정이기에 변화가 어느 정도 가능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성인이 된 다음 변화 되기는 정말로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성경은 변화의 실제를 보여 준다.  여리고성을 정탐하러 간 자들이 돌아와서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보고 한다.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24)라고 한다.

 

 

 

40년 전에 가나안을 정탐했던 12명 중의 10명은 가나안 정복이 불가능하다고 불신앙의 모습을 보여 줬다.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20세 이상 된 자들이 가나안을 들어가지 못했다.  이 말은 이스라엘 전체적으로 불신앙의 모습이 팽배했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그러나40년이 지난 오늘 본문에서는 ‘가나안 정복이 가능하다’는 보고를 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한 것일까?

 

 

 

먼저 40년 전이나, 40년 후에나 하나님은 동일하게 우리 보다 먼저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정탐꾼이 여리고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라합’을 예비해 두셨다.  라합은 정탐꾼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인물이 아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선 역사하심에 의해 준비된 인물이었다.  

 

 

 

40년 전에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이미 가나안 에서도 역사하셨다.  그 하나님은 40년 동안 변함없이 광야에서도, 이집트에서도, 가나안에서도, 그리고 온 세상에서도 동일하게 어디서나 역사하신 분이시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나의 개인 삶에서,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인간이 인간 스스로의 영역을 보면 결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인간은 피조물이고, 죄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 밖에서 스스로 계시고, 거기서 침묵하지 않으시고, 역사하시는 존재, 즉 절대적이며, 창조하시는 그 존재에 대한 인식과 의지가 있는 한, 인간은 스스로의 한계 속에 머물지 않게 된다.  자신의 제한된 공간을 벗어나야 비로소 변화와 발전의 가능성에로 나아가게 된다.  그래야 변화는 가능하다.  보지 못하지만 역사하는 것, 바라지만 단순히 희망 사항으로 끝나지 않는 것.  이 단계가 될 때 변화는 시작된다.  그래서 믿음은 변화의 출발이기도 하다.

 

 

 

또 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시각의 대상점이 바뀌어야 한다.  40년 전의 정탐꾼들(10명)은 가나안 주민들을 보았다.  그들의 강력함이 그들이 보았던 대상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포자기 했다.  그러나 40년 후의 정탐꾼들은 그 강력한 가나안(인들)을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주셨으므로…’(24). 

 

 

 

그들은 약속의 말씀을 먼저 보았다.  그 약속의 눈으로 가나안을 보자, 가나안 땅의 주민들이 떨고 있는 실체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24).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고 골리앗을 보면 골리앗의 쓰러짐을 보며 소망과 용기로 골리앗 앞으로 다가간다.  

 

그러나 골리앗의 소리에만 집중하게 되면 골리앗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강력하게 보인다.

 

 

 

시각의 차이가 이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 앞에서, 말씀 앞에서, 기도의 무릎으로 시작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하루 삶에서 중요 삶의 순간들의 연결고리를 말씀과 기도로 계속 대할 때 삶의 매 연결고리는 승리의 연결 고리가 될 것이다.

 

 

 

존재를 인지하는 믿음의 시각!

 

실존의 상황 속에서 세상과 상황 위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는 믿음의 시각!

 

 

 

다윗에게 골리앗의 이마는 ‘too big to miss’(너무 커서 빗나갈 수 없는)였던 것이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승리와 패배가 좌우된다.

 

즉, 영적 시력에 따라 변화(승리)는 가능하다!

 

 

 

주여, 저에게 영적 눈을 뜨게 하여 주소서!

 

주를 보게 하소서!

 

 

 

 

 

(매일 성경-새벽 묵상 / 여호수아서 2:15-24) 

 


새벽 Q.T.

Dawn Q.T.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898 [매일성경 2025/20/수 13:1-14] "성도의 기업" 2025.01.22 2080
1897 [매일성경 2025/19/수 12:1-24] "끝까지..." 2025.01.18 2070
1896 [매일성경 2025/18/수 11:1-23] "시대를 초월하는 공동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2025.01.18 1132
1895 [매일성경 2025/17/수 10:29-43] "믿음으로 끝까지, 다같이!" 2025.01.17 1402
1894 [매일성경 2025/16/수 10:16-28] "명품은 디테일에 강하다!" 2025.01.16 1200
1893 [매일성경 2025/15/수 10:1-15] "나는 기도자인가?" 2025.01.15 1183
1892 [매일성경 2025/14/수 9:1-27]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기둥" 2025.01.14 1564
1891 [매일성경 2025/13/수 8:18-35] "나는 지금 예배자인가?" 2025.01.13 1265
1890 [매일성경 2025/12/수 8:18-35] "끝까지..." 2025.01.13 1240
1889 [매일성경 2025/11/수 8:1-17] "승리의 비결" 2025.01.11 1826
1888 [매일성경 2025/10/수 7:16-26] "당신의 여리고성은 완전히 무너졌는가?" 2025.01.10 1077
1887 [매일성경 2025/9/수7:1-15] "All or Nothing" 2025.01.09 2098
1886 [매일성경 2025/8/수 5:13-6:7] "가나안의 의미" 2025.01.08 2599
1885 [매일성경 2025/7/수 5:13-6:7] "하나님 보다 앞서 가지 마라!" 2025.01.07 1672
1884 [매일성경 2025/6/수 5:1-12]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 앞에서!" 2025.01.06 1284
1883 [매일성경 2025/5-2/수 4:15-24] "왜 유월절은 왜 첫째 달 십일 일까?" 2025.01.05 1140
1882 [매일성경 2025/5-1/수 4:1-14]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기념비는?" 2025.01.05 1207
1881 [매일성경 2025/4/수 3:1-17] "가나안 '바른' 정복방법!" 2025.01.04 2466
» [매일성경 2025/3-2/수 2:15-24] "사람에게 변화는 가능할까?" 2025.01.03 1442
1879 [매일성경 2025/3-1/수 2:1-14] "역사 속에서 가장 강력한 반전의 삶을 산 사람은?" 2025.01.03 1378
Board Pagination ‹ Prev 1 ...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111 Next ›
/ 111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