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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동행하는 영적 순례 40일 / 3일째

 

[묵상할 말씀]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 교사여!” (눅 11:46)

 

 

[짧은 묵상] 오늘은 짧지 않네요…. ^ ^

 

예수님께서 ‘화’를 내시면 얼마나 무서울까요?  만약 우리가 예수님 앞에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화를 내신다면 정말로 무서웠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눅 11장 마지막 10구절 정도에 예수님께서는 ‘화’를 크게 내십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여섯번이나 마구 화를 내십니다.  

 

‘화 있을진저!’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토록 크게 화를 내시는 것일까요?  

 

자유와 기쁨을 누려야 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짐’을 지우는 것을 보니 예수님께서 화가 안 나시겠습니까?  왜 예수님께서는 로마 군인들이나, 정치가들에게는 화를 내시지 않으시고, 이렇게 ‘바리새인들이나 율법사’들에게 유독 화를 많이 내셨던 것일까요?

 

그것은 진리의 말씀을 가진 자들이, 말씀을 연구하는 자들이 제대로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사람들에게 주셨는데, ‘복음’을 주셨는데, ‘생명’을 주셨는데, ‘자유’를 주셨는데…

엉뚱하게 가짜 진리를, 복음 대신 힘든 소식을, 생명대신에 죽음을, 자유대신에 속박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니 예수님께서 화가 나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가짜 복음, 가짜 말씀을 예수님은 아벨부터 구약의 역사적 마지막 순간이라 할 수 있는 사가랴 선지자에 이르기까지 그 가짜가 진짜를 핍박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51).

 

그리고 또한 그 가짜가 예수님 당시까지 성행하고, 오히려 더 종교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사람들의 마음에 자유 대신 속박을 주고 있으니… 예수님의 이 거룩한, 정당한 분노는 극에 달하게 된 것입니다.

 

구약 전체가 그렇게 복음을 변질시켰고,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인들과 성경을 많이 연구하고 가르치는 율법 학자들이 그렇게 복음을 변질시켰다면…  오늘날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장담컨대 예수님께서 현대 교회를 방문하신다면, 아마 동일한, 아니 어쩌면 더 크게 화를 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복음의 본질을 이해하면, 교회 외적 사이즈에 관계없이, 교회 외적 직분에 관계없이, 삶의 세상적 성공에 관계없이, 세상에서 말하는 명품의 소유 여부에 관계없이, 세상에서 이류 혹은 삼류 혹은 이러한 분류대상조차 안되는 사회의 소외 계층이든지에 관계없이 모든 상황 속에서, 모든 사람 앞에서 기뻐하고, 기뻐하는 것이 복음을 이해한 삶, 복음에 합당한 삶 아닐까요?

 

복음은 생명입니다.  그 자체가 능력입니다.  그래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 자체가 ‘증거’요, ‘전도’요, ‘선교’입니다.  생명은 생명을 낳습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참된, 진정한 전파와 성장을 하는 것이 복음의 진정한 능력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진정한 생명이기에, 오히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 더 능력을 발휘합니다.  사회적으로 분명히 약자이거나, 주도권을 못 가졌거나, 실패자이거나, 연약자이거나, 나약자인 처지라 하더라도, 오히려 복음 때문에 그러한 상황 속에서 기쁨을 보여 줄 수 있다면, 진정으로 복음은 그 자체가 능력임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어려운 상황속에서 더 살아계신 하나님을 선포할 수 있기에 더 감사하고, 더 삶에 대한 열려있는 적극적 자세를 갖게 됩니다.  상황에 얽매이기 보다는 상황을 초월하는 신앙인이 됩니다.

 

신앙인이 자신의 처한 삶을 바꾸고, 외적으로 좋게 만들려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삶이 어떤 모습이든간에, 자신이 금수저를 못 갖고 나온 상황이라 할찌라도 내가 처한 상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상황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생명력있는 삶을 나누고 선포하는 삶을 신앙인의 목표로 하고 살아간다면 그것이 전도요, 그것이 선교적 삶이 아닐까요?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과연 그런 모습을 보여 주고 있나요?  더 크게 외적 성장에 혈안이 되어 있지는 않나요?  목사인 저 자신이 스스로를 볼 때도 그런 모습이 많음을 솔직하게 보게 됩니다.

 

우리는 바르지 못한 것에 대해 예수님처럼 분노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이 오히려 속박 때문에 분노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보면서 솔직하게 보기를 원합니다.  외형이 중요시 되고, 외적 경쟁에 가치를 두고, 비교에 의한 기쁨을 누리는 모습이 있다면 예수님은 오늘날의 교회를 향해서도 ‘분노’하실 것입니다.

 

교회는 복음으로만 인도함 받아야 합니다.

 

복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을 때, 모든 상황 가운데, 상황으로 인해 기뻐하거나, 좌절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복음으로 인해 ‘모든 상황 가운데에서’ 기뻐합니다.

 

그 복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현대의 바리새인들이요, 현대의 율법학사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핵심을 캔 데이비스는 3 nothings 로 매우 간결하지만 잘 표현했기에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Nothing to hide! (가리울 것도 없고…)

Nothing to prove! (증명할 것도 없고…)

Nothing to lose! (잃어 버릴 것도 없는…)

 

그렇습니다!

 

탕자가 다시 아버지 품으로 돌아 올 때, 자신의 더러운 것을 가리우고 왔을까요?  돼지 우리에 있었던 더러운 냄새 나는 자신을 조금이라도 씻고 와야지 아버지가 받아 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왔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는 아직 아버지 품에 온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아들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십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가릴 것이 없는…(nothing to hide)’ 것이 참된 신앙인이 갖는 자유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내 모습 이대로 받아들임 받은 경험’이 있는 모임이 신앙인들의 모임입니다.  그렇기에 신앙인들의 공동체 안에서는 ‘자신의 속에 있는 어려운 얘기를 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됩니다.  또한 ‘그러한 속에 있는 얘기를 아버지의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공동체가 됩니다.  이런 공동체가 진정으로 은혜를 이해한 사랑의 공동체 입니다.

 

또한 구원 받았다는 것은 ‘증명할 필요가 없는’ 상태임을 우리가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더 훌륭하고, 능력많고, 잘 난 사람이라고 증명하면서 평생을 보냅니다.  그래서 대학을 무리해서라도 일류로 가기를 원하고, 성형외과가 성행하고, 기를 써서 무리를 해서라도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모두가 증명하기 위한 삶입니다.  그러나 그 증명의 삶은 늘 피곤하고, 늘 불안하고, 늘 걱정하는 삶입니다.

 

자녀는 부모님 앞에서 증명하지 않습니다.  이미 증명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종들은 증명하려고 합니다.  자신이 한 일을 주인이 알아주지 않으면 불안하고, 손해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인 눈만 보고, 눈치를 많이 봅니다.  주인의 평가에 모든 마음을 쏟습니다.

 

그러나 자녀는 다릅니다.  자신이 잘 못하면 부모님께 혼도 날 수 있습니다.  야단도 맞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녀를 호적에서 빼지는 않습니다.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녀는 어떻게 해도 자녀입니다.  이것을 ‘nothing to prove’라고 합니다.

 

그런데 죄인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기에, 엄청난 죄값을 대신 치루어 주셨기에, 그 큰 은혜를 받았기에 ‘증명’하는 것 대신에, ‘감사’의 표시를 하며, 감격 속에서 살게 됩니다.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감사해서 흘러 나오는 감사로, 기쁨으로,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져 섬기며 살게 됩니다.  이 삶은 남들과 비교하는 삶이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  이 얼마나 자유한 삶입니까?

 

구원의 삶은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는 nothing to lose 의 삶입니다.  영생의 삶이기에, 죽음을 넘어가는 삶이기에, 그 어떤 상황도, 그 어떤 사람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담대합니다.  또한 모든 것을 정확하게 계산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믿음의 행동 하나 하나, 기도의 한 소절 한 소절을 다 놓지 않고, 떨어 뜨리지 않고 반드시 들으시고, 갚아 주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신앙인의 삶의 매 순간은 소망과 진지함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다윗은 먼저 하나님 품으로 간 솔로몬의 형을 생각하면서 소망을 가질 수 있었기에, 그는 금식을 풀고, 삶의 일상으로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이라 할 수 있는 먼저 떠나 보낸 자식, 가슴에 묻게 되는 그 자식 잃은 슬픔도 참 소망으로 넉넉하게 이기게 되는 것이 nothing to lose의 구원의 의미입니다.

 

이런 복음을 바리새인들이, 율법학자들이 가리고, 못 보게 만들고, 못 듣게 만들고, 못 이해하게 만드니 예수님께서 ‘화’를 내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화는 참된 이해를 위한 가르침의 화입니다.  우리들이 깨닫고, 복음을 복음으로, 생명의 복음을 생명으로 이해할 때… 비로소 이 예수님의 禍(재앙을 가져 오게 될 분노의 화, anger)가 화(和, 화합과 화목의 의미)로 될 것입니다.  

 

 

[오늘의 적용] 사순절 기간 동안, 진리에 의한 가장 왕성한 섬김의 삶 살기를 바랍니다.

 

* 생명은 생명을 낳습니다.  내가 복음이 갖고 있는 생명을 체험하게 되면, 실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생명을 선포하고, 나누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 합당한 삶’, 즉 ‘생명력있는 삶’을 복음을 묵상하면서 살아가도록 하십시다.  가장 강력한 실천은 바로 ‘내’가 복음으로 살아가는 나의 삶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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