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정체성에 대한 온전한 이해 없이 온전한 삶 없습니다! –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묵상할 말씀] 눅 12:35-48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눅 12:44)
[묵상]
우리는 정체성의 혼란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 2세들은 자신이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혼돈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언어, 문화, 관계, 공동체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혼란과 혼돈의 모습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생명력과 역량을 잃어 버릴 때가 많습니다.
올바른 정체성을 갖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야 바르게 살게 됩니다. 바르게 살아야 능력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뭔가 이상하고, 부자연스럽고, 부자유스럽듯이, 정체성이 잘못 되면 삶에 능력이 상실됩니다. 옷을 바르게 입으면 멋이 있고, 힘이 생기고, 자유롭습니다.
신앙인이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가져야 할 정체성은 뭘까요?
성경은 분명히 ‘청지기’라고 가르쳐 줍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42).
청지기는 노예와 다릅니다. 노예는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청지기는 주인으로부터 모든 권한을 이전 받았습니다. 이러한 청지기가 갖는 자세 및 임무를 온전히 이해할 때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놀라운 기쁨과 능력, 그리고 귀한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묵상을 하면서 청지기의 몇가지 정체성의 구체적 측면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청지기는 과정에 최선을 다하지 결과에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결과는 주인 몫입니다. 내 인생에 주어진 삶의 모든 영역을 최선 다해서 살아가고, 과정을 섬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를 내가 책임지려고 하는 것은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농사를 짓게 되는 청지기는 씨를 잘 뿌리고, 김을 매고, 비료를 잘 주는 ‘과정’에 최선 다하면 됩니다. 설사 그 해에 비가 많이 오지 않는 가뭄이 들어서 그 해 소출이 많지 않았을 때, 가뭄으로 인한 결과는 결코 농사를 맡은 청지기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습니다. 그 결과는 주인의 몫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면서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려고 하는 때가 많습니다. 결과에 내가 연연한다면 실은 내가 청지기가 아니라, 주인의 자세를 가진 다는 뜻입니다.
나도 모르게 주인이 되면 이는 매우 위험한 상황임을 알아야 합니다. 결과가 좋으면 그 영광을 누가 받을까요? 자신이 받으려 합니다. 내 인생에 하나님은 다른 곳에 계시고, 내가 하나님 자리, 왕좌를 차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왕이 안 될 경우, 그 인생은 하나님이 안 계신 인생, 참으로 어렵고, 힘든 삶이 됩니다.
결과가 나쁘면 어떻게 될까요? 그 또한 위험합니다. 내 인생에 내가 주인이 되고, 그 결과가 안 좋을 때 내가 자책하게 됩니다. 내가 모든 책임을 지려고 하는 그런 잘못된 죄책감을 갖게 됩니다. 청지기는 결과에 책임지지 않습니다. 과정에 대한 책임을 지는 직분일 따름입니다. 자신이 과정에 최선을 다 했다면, 그 결과에 대해서는 주인이 모든 것을 감당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달란트 비유로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십니다. 2달란트 받은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2개 이상을 남기기 어렵습니다. 5 달란트 받은 사람은 노력하지 않아도 2 달란트 받은 사람보다는 좋은 결과를 갖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일하게 두 사람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해 주십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이런 ‘과정에 최선 다하는 청지기’ 의식을 사역에 적용하면서 많은 자유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사역의 결과를 담임 목사로서 내가 책임 져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서 목회자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니, 저 자신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최선과 충성을 다해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사역을 놓고, 청지기로서 최선과 충성을 다 해야 하는 영역이 어떤 영역인지, 그리고 언제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지를 정립하게 되었습니다.
한 예로, 수련회 준비를 행할 때 저는 수련회 시작하는 첫 집회때까지는 수련회 준비를 위해서 최선을 다 합니다. 그리고 수련회 첫 집회가 시작되는 그 순간, 수련회의 결과는 모두 하나님께 의지하고, 저는 수련회를 즐깁니다(?). 네. 정말로 즐깁니다. 왜냐하면 그 수련회를 잘 준비하는 것은 청지기로서 목회자가 해야 할 일이지만, 그 다음 수련회의 결과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므로 저는 즐겁게(?) 수련회에 참석합니다. 이런 자세를 갖고 난 다음 부터, 저는 충성 다하되, 즐겁게 목회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청지기 의식을 삶의 전 영역에서 가지려고 할 때, 결코 쉽지 않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학생들은 성적과 학위에 자칫 주인 의식을 가지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사업가들은 사업으로 인한 이익을 향해서 자신이 주인이 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목회자는 외적 성장을 위해서 자신이 목회의 주인공이 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향해서 자신이 주인이 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모든 직분에서 아킬레스 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내 손에서 놓으면서 이 영역 또한 ‘주님이 주인이십니다!’라고 고백하게 될 때, 우리는 참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둘째, 그러나 이러한 청지기 의식으로 늘 깨어 있어야 함 또한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인생의 주인이 될 때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했지만, 나중에는 열심이 욕심으로 변하는 때가 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인은 영적 잠이 깊게 들기 쉬운 이경이나 삼경에 올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38). 이경, 삼경은 오늘날로 하면 가장 잠이 많이 오는 깊은 새벽을 의미합니다. 마귀는 이 때를 공격하려고 할 것입니다.
큰 일을 치루고 난 뒤, 아니면 어려운 고비를 넘긴 뒤 등 등의 시간때에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인생의 주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할 때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늘 깨어 있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금’ 깨어 있어야 합니다. 진행형으로 살아야 합니다.
셋째, 내가 진정으로 좋은 청지기라는 의미는 주인이 돌아와서 문을 두드릴때 기쁨으로 맞이하려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주인은 주님입니다. 주인이 다시 오신다는 것은 주님의 재림을 의미합니다. 과연 주님이 지금 오신다면 기쁘게 맞이하겠습니까?
아마 내 인생에서 내가 주인된 사람은 주님 지금 오시는 것을 덜 반길 것입니다.
청지기에게 중요한 것은 일이 아닙니다. 일을 통해서 기뻐하실 주인(주님)을 늘 생각하는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청지기라는 직분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부려 먹으려고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인생의 청지기임을 깨닫기를 원하심으로 우리 인생의 참 주인으로, 참 왕으로 우리와의 관계를 바르게 갖기를 원하십니다.
내 인생에 내가 청지기가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은 나의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주인되심, 주님되심을 내가 늘 기억할 때, 나는 삶의 매 순간 예배자가 됩니다. 그리고 나의 삶 자체가 예배가 될 때, 하나님은 나의 삶에서 영광으로 임재하십니다. 영적으로 늘 충만한 자가 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가 됩니다.
예배의 기쁨을 날마다 누리도록 하심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청지기 삼으신 이유입니다.
이 예배를 현재적으로 늘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과 늘 친밀한 관계(intimacy)를 갖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합니다. 그런 사람이 정작 주님이 재림하신다고 할 때, 평소에 가장 가깝게 임재를 체험한 사람이기에, 실재로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게 될 것이고, 어색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청지기의 자세입니다.
이런 청지기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갈 때… 주님 오시는 날이 가장 큰 기쁜 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청지기로 평생 살아갈 때… 기대하십시오. 주님께서 이렇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37)
과연 이것이 실제로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신실한, 충성다한, 최선 다한, 왕의 자리를 자기가 차지 하지 아니한, 그런 청지기들을 위해서 주님께서 수종 들어 주신다고 합니다….
송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영광 스러울 것입니다.
그 날까지, 참된 청지기는 결코, 절대로 자신과 남을, 그리고 일에 대해서 결론적 자세, 판단적 자세를 갖지 않습니다. 과정인줄 알고, 현재형으로 최선 다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청지기에게 세상이 결코 알수도 없고, 줄수도 없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기대감이 있습니다.
임재함이 있습니다.
겸손함이 있습니다.
[오늘의 적용] 사순절 기간 동안, 진리에 의한 가장 왕성한 섬김의 삶 살기를 바랍니다.
* 내가 청지기라면… 그리고 그 청지기 의식을 매 순간, 현재형으로 가져야 하는 것이 맞다면… 이에 동의가 되신다면… 지금 이 순간 ‘예배자’로 살아가심이 가장 맞습니다! 오늘, 매 순간, 삶으로 ‘산 제사’를 올려 드리는 ‘삶의 현재 진행형적 예배자’로 살아가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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