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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동행하는 영적 순례 40일 / 7일째

 

[때로는 묵상하면서 처절하게 좌절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묵상할 말씀] 눅 12:49-5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눅 12:57)

 

 

[묵상] 

 

오늘은 본문을 묵상하면서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이 너무나 무겁고, 엄중하고, 무섭고, 단호하고, 깊은 한탄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이 표현들이 다양하지만, 하나 같이 그 무게감과 엄중함이 크기에 이를 제대로 같은 무게로 깨닫기 위해 우리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기를 원합니다.

 

1.  심판의 무서움

불을 땅에 던지러 오셨다고 하십니다(49).  이는 심판의 무서움을 표현하신 말씀입니다.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49)라는 표현 속에는 주님께서 심판이 반드시 행해져야 함을 원하시는 표현입니다.  

 

거룩하신 주님, 진리의 주님께서 세상을 보실 때 이 세상은 반드시, 하루 속히, 빨리 심판이 이루어져야 하는 세상으로 보이신 것입니다.

 

2. 구원을 위한 조바심

심판은 잘못을 멸하기 위함도 있지만, 구원을 위한 것임 또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마치 노아의 방주가 심판의 도구이기도 했지만, 구원의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받을 세례(이는 십자가의 구원 사역을 의미, 참조: 롬 6:4)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심판의 또 다른 측면을 말씀하시는 것인데, 예수님은 이 심판(구원) 사역이 이루어 지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표현을 이렇게 하십니다…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50).  

 

예수님께서 답답하시다고 하시는 표현을 보면서 우리가 받아야 할 구원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더 깨닫습니다.

 

3. 심판 기준의 엄중함

심판의 기준이 되는 진리는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님을 엄중하게 설명하십니다.  가족에게는 어느 정도 용납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심판의 기준은 결코 타협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한 가정 안에서 엄청난 대립과 분쟁이 있게 됨을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향하여 야단도 치고, 꾸지람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에 관한 한 나이에 관계없이, 지위와 신분에 관계없이 쌍방향으로 주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들 또한 아버지를 향하여 진리 만큼은 물러서지 않고, 자기 관점을 주장하게 됩니다.  이는 어머니가 딸을 향하여 주장할 뿐만 아니라, 딸이 어머니를, 또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향하여 주장할 뿐만 아니라,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향하여 주장하게 되는… 그만큼 진리의 타협 불가의 관점, 엄중함을 말씀하십니다.

 

4. 진리에 대한 분별의 중요성

사람들은 자연 현상을 보면서 날씨를 예견해야 합니다.  어업과 농업을 제대로 하려면 이러한 자세는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기상을 통한 날씨 예견에 민감할 뿐만 아니라, 비교적 쉽게 예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에 관하여, 무엇이 잘못이고,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것은 영적 무지함의 소치임을 예수님께서는 강력한 반어법적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어찌’ ‘어찌하여’ 등의 표현은 예수님의 한탄스러운 마음도 들어가 있지만, 옳고 그름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분노의 마음도 들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화를 내셔도 아주 크게 화를 내신 것을 말합니다.  

 

5. 진리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다급함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 가는 것은 마지막 심판의 때를 향하여 나아가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이 심판은 영원/영벌 심판입니다.  한번 감옥에 갇히면 더 이상 나올 수 없습니다.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58)는 표현은 그 길의 끝에 가서 재판관을 만나면 더 이상 판결을 위해서 노력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재판을 받으러 가는 길이기에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 더 이상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다급한 상황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언제 이 세상을 떠나게 될 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 죽음과 같은 개인 종말이든,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과 같은 인류의 종말이든 그 시점이 언제인지 아는 사람이 없다면, 준비는 ‘다음에’ 할 것이 아니라, ‘지금’ 해야 합니다.  정말로 구원에 관한 문제는 ‘다급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6.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적 사역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한다’(59)라는 표현 속에는 구원을 위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음을 말합니다.  ‘한 푼’에 해당하는 원어 ‘렙톤’은 당시 사회에서 사용하던 화폐 중에서 가장 작은 단위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1원이나 1페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1원이나 1페니는 아무런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길에 떨어진 것을 보며 주워 가지도 않는 그런 최소의 단위, 보잘것 없는 그런 양입니다.  그러나 보석금 혹은 배상금을 치룸에 있어서 ‘한 푼’까지라도 남김없이 갚지 않으면 나오지 못한다는 말은 구원은 엄밀하게, 완벽한 기준을 갖고 행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은 값을 깎아서 사거나, 세일할 때 사거나, 하나 사면 덤으로 하나를 더 주는 것이거나, 덤핑으로 대량으로 헐 값에 판매하는 그런 품목이 아닙니다.  1원, 1전이라도 지불하지 못하면 사지 못하게 되는 엄중한 값을 가진 품목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1원을 값지 못했을 때 너무나도 쉽게, 심지어는 땅에서도 주울 수 있는 그 1원을 감옥안에서는 결코 못 갖게 되는 것이 감옥 안의 현실입니다.  감옥 안에서는 아무 소유도, 소득도 가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쉽게 보이는 그 1원도 결코 죄인의 힘으로는 만들 수 없는,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공로는 단 1퍼센트, 아니 0.00001퍼센트도 들어 갈 수 없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구원을 은혜라고 합니다.  인간이 결코, 조금도, 하나도 할 수 없는 것이 구원이기에, 그래서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구원이기에, 그것을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측면에서 ‘은혜’라고 합니다.

 

==

 

조금은 길게 구원과 관련된 진리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요약하면 무서움, 진지함, 다급함, 엄중함, 절대적, 중요함 등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장한 마음, 단호한 마음, 결의에 찬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본문을 묵상하면서 답답하고, 무거웠던 것은…  우리가 주님의 마음처럼 그렇게 진리에 대하여, 구원에 대하여 진지한 마음과 자세를 갖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만이 행하시는 사역이기에(상대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는 차원에서) 어쩌면 쉬운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안하기에 쉽다는 말이지, 구원 자체가 쉽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 하시기에 하나님의 엄청난 수고가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 구원의 엄중함을 진지하게 이해한다면…  신앙인의 삶은 어때야 하겠습니까?  가벼워야 하겠습니까?  구원을 값싼 것으로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구원 받은 자가 자신의 공로를 함부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교만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주신 구원인데, 구원받은 자가 은혜를 떠날 수 있겠습니까?  구원이 그렇게 하나님의 값을 치룬 것인데, 어떻게 인간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구원을 아예 모르는 믿지 않는 사람을 향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님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그 분들은 사랑과 섬김, 전도의 대상들입니다.  

 

주님께서 이토록 화를 내시고, 분노하신 대상은 신앙을 가진 것 같지만, 종교성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잘 못 표현하고, 잘 못 전달하고, 오히려 왜곡시키는 자들… 바리새인들을 향한 엄중한, 토해 낼 것과 같은 분노의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을 인도해야 할 교회와 성도들이 소경이 되었으니…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님은 피눈물나는 절규를 행하신 것입니다.

 

그런 주님의 피눈물 나는 절규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묵상을 해 보니, 저 자신이었습니다.  남을 향하여 손가락질 잘하고, 외형만 좋으면 그것이 성공인 줄 알고 나 자신을 높였던… 은혜를 가렸던 저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현대 교회를 방문하시면 아마 예루살렘 성전에서 채찍을 휘둘렀던 모습을 한 번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이 행하시지 않으실까 해서…. 교회의 본질을 벗어나도 너무나 벗어난 외형 중심의, 이기적 공동체가 되어버린, 맘몬을 더 의지하는, 화합 보다는 경쟁과 시기와 질투로 첨예화된, 은혜 대신 인간의 노력과 능력을 자랑하는, 십자가는 장식품이 되어 버렸고, 십자가의 능력은 악세사리처럼 발휘되는, 성경의 진리 대신 감정과 체험과 인간의 이성적 능력으로만 진리를 난도질하는, 하나님의 자리에 교권과 직분자가 자리잡는… 도무지 옳은 것을 이다지도 분간하지 못하는 바보천치같은 목회자들과 교회들을 보시면서…. 주님은 현대 교회를(그리고 저를) 보시면서 뭐라고 하실까요…

 

저는 묵상을 무겁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찌하여’ ‘어찌하여’ ‘어찌하여’…. 라는

주님의 한탄의 소리가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 할 수록 더 강하게 귓가에 울립니다…

 

저의 가슴에 주님의 이 한탄 소리를 강력하게, 계속해서 새기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의 적용] 사순절 기간 동안, 진리에 의한 가장 왕성한 섬김의 삶 살기를 바랍니다.

 

* 오늘은 주님의 이 한탄 소리를 저의 가슴에 깊게 새기며 하루를 보내기를 원합니다.  ‘처절하게 좌절하는 쓰라린 가슴을 안고 하루를 사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실은 ‘처절한 좌절감’이 주님의 마음임을 기억하며, 같은 마음으로 살아갈 때 비로소 ‘주님은 구원자’ ‘구원의 전적인 은혜적 측면’ ‘예수님을 주님(Lord)으로 고백하는 그 고백의 진정성’ 등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삶으로 진실하게 살아가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주님의 처절한 절규의 부르짖음이 저의 귓가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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