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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33:1-25) 드라마틱한 신앙인의 삶
(역대하 33:1-25)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12)
(오늘은 내용이 약간 깁니다. 개인적으로 먼저 본문을 묵상하시고… 주일이기에 편안하게 한번 끝까지 생각하시면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인생관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되는 대로 사는 사람도 ‘무인생관’이라는 인생관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현세주의, 감각적 쾌락만 즐기는 쾌락주의, 그리고 내일과 미래에 대한 생각없이 살아가는 이생주의의 입장일 따름입니다.
생각의 능력을 가진 인간이 아무 생각없이 살아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하는 논리, 추리력, 상상력이 삶의 전부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생각의 한계가 있음 또한 인정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관(view)’을 갖고 살아가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한가지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 즉 인과율에 대한 관점입니다. 원인과 결과의 관련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관점이 ‘우연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삶의 자세에 대해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 줍니다. 과연 우연, 재수, 행운이 있을까요?
한치 앞으로 못 보는 인간에게는 삶의 많은 경우가 우연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행운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불행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시각적 한계 때문에 그런 것임을 분명히 파악하고,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역사 혹은 개인의 인생사를 짧은 단위로 보지 말고, 넓고 긴 관점에서 살펴 볼 때, 인생사는 결코 우연이나 재수에 의해서 이루어 지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역사를 보는 의미이고 유익입니다. 특히 성경을 읽어 보면 성경에 나타난 역사서는 결코 인간의 삶을 우연으로 보지 못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주권과 섭리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적절한 이유(원인)에 의한 그에 따른 합당한 결과가 있음을 역사는 보여 줍니다.
우리가 역사를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분명한 인과율이 적용되는 역사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어떤 이유(원인)들을 오늘 심어 놓음으로, 내일 가장 바른 결과들을 거두게 될 것이기에 믿음과 진리에 의한 씨뿌림과 거둠의 삶을 매일 매일 삶을 통해 살아가는 것이 인생에 대한 바른 이해와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장황한(?) 위의 말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당신은 어떤 인생관(인생철학)을 갖고 계십니까?’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은 한 번 뿐이기에, 그냥 지나가면서 던지는 말로 이렇게 표현한 것이 아님을 기억하면서, 진지하게 인생관을 한번 정리해 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인생관을 가장 잘 정리할 수 있는 성경의 한 장면입니다. 바로 히스기야의 아들인 므낫세 왕의 인생, 그리고 그 아들인 아몬의 인생을 한 장에서 살펴 보면서 우리는 바른 인생관(인생철학)을 정립하게 됩니다. 아래 내용은 본문을 통해 묵상한 내용을 정리한 저의 개인 묵상 정리입니다.
첫째, 인간은 은혜로 태어 났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1). 므낫세 왕은 12살에 왕이 되었습니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히스기야 왕이 병에 걸려서 기도한 뒤 목숨을 15년 연장 받은지 3년째 되던 해에 태어난 자가 바로 므낫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아버지 히스기야의 목숨이 연장 되지 않았다면 므낫세는 태어나지 못한 존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난 자가 므낫세 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난 자들입니다. 정녕 죽으리라는 죄성을 가진 우리들이 생명으로 태어 났다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의 태명은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며 모든 인간은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정당한 인생철학의 첫번째 입니다.
둘째, 영원한 인생은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4). 영원한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임에도 불구하고, 므낫세는 그 영원한 하나님의 전에 자신이 만든 인간 제단을 쌓게 됩니다. 이는 자신이 영원히 살겠다는 그런 의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피라미드를 쌓고, 만리장성을 쌓고, 불로초를 구해 먹으려는 제왕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제왕들도 다 죽었습니다.
영원한 인생은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겸손해 지고, 또 시간제약안에서 삶을 정립하고 적절하게 살게 됩니다.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의 자세를 갖게 됩니다.
셋째, 눈에 보이는 것 근원에 있는 본질(아르케)을 보아야 합니다(5). 므낫세는 일월성신 우상을 만듭니다. 인간의 눈에는 해와 달, 별들이 가장 강력하게 보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 자체를 있게 만드는 더 근원적인 존재, 더 본질적인 것을 우리는 추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바른 자세, 바른 행동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인간’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외모나 배경 등으로만 보며 그렇게 인간관계, 결혼 등을 행하면 본질적 행동에 의한 관계가 안 되기에 그 결혼 생활은 문제가 많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인간에 대한 본질적 이해를 하지 못한 결혼 관계는 당연히 비본질적인 것에 집중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참된 만족을 못하게 마련이니까요…
인간의 본질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 본질을 이해할 때, 인격적으로 대하게 되고, 영적 관계 또한 함께 갖게 되는 자세를 가질 때 바른 인간 관계, 결혼 생활, 공동체 생활로 나아가게 됩니다.
보이는 것을 있게 하는 더 근본적 존재를 보려고 하는 영적 시력을 높이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늘, 모든 상황 보시면서…
넷째, 상황과 시간 따라 사람도 정책도 다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입니다(8). 그래서 참된 인생은 변치 않는 진리의 말씀만을 붙잡고 살아가는 자세에 있습니다.
말씀은 언약이라고도 합니다. 즉, 약속이기에 성취 또한 반드시 됨을 기억하며, 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는 말씀이 선포되는 곳입니다. 성도는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자를 말합니다.
다섯째, 가장 늦은 때가 가장 빠른 때입니다(13). 므낫세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그 때는 언제입니까? 깨닫는 때 입니다. 그리고 깨닫는 것은 늦은 때가 없습니다. 깨닫는 그 순간이 가장 빠른 때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은 ‘지금’ ‘오늘’ ‘현재’ 이 깨달음의 연속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깨달음을 통한 하나님께로의 방향 전환을 ‘메타노이아’ 즉 회개라고 합니다.
회개는 잘 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회개는 삶의 매 순간, 매일, 오늘, 지금 되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께로 향하고 계십니까?
여섯째, 우상 제거는 완전히 행해야 합니다(15). 므낫세가 회개하고 자기가 의지했던 우상들을 그냥 성 밖으로 버렸다고 합니다. 불에 태우든지 가루로 만들던지 해야 하는데, 그가 한 것은 그냥 버렸던 것입니다(원어적 의미가 그러함).
이 우상들을 그의 아들 아몬이 다시 거두어서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만든 아로 새긴 모든 우상에게’ 제사하여 섬김으로 다시 사용합니다. 역사는 불행이 반복되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당대에 제거해야 할 것을 완전히 제거해야 합니다.
영적 유산은 뭔가 물려 주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려 주지 말아야 할 것을 완전히 물려 주지 않는 것 또한 영적 유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일곱째, 역사의 주관자, 즉 인생 드라마의 작가요 감독은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25). 아몬이 2년 만에 신하들의 쿠데타로 왕좌에서 물러 나지만, 하나님은 요시야를 통해 다시 왕권이 이어지도록 하십시다.
유다는 한 왕조로 계속 나아가다 메시야 참된 왕으로 오시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역사입니다. 그 역사는 하나님에 의해서 쓰여 집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좌절하지 않습니다. 순간 어려움이 와도 그것이 끝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늘 소망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신앙 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조연이나, 엑스트라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신앙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주연으로 등용하십니다. 그리고 그 신앙 인생 드라마의 감독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만을 믿고, 따르고, 순종할 때… 드라마틱한 재미있는 시청률 최고의 드라마가 만들어 집니다.
드라마의 가장 멋진 의미는 ‘드라마틱’하다는 것입니다. 결론은 신나는 것입니다. 중간에 위기도 있고, 갈등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드라마틱한 결론이 있습니다.
신앙인은 그런 드라마틱한 드라마의 주연입니다. 그 인생 드라마는 주님 앞에 다시 서는 그 순간이 최종회임을 기억하시고… 매일 드라마틱한 멋진 삶을 살아가실 기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 수 있는 이유는… 이 드라마틱한 드라마의 제작자/작가/감독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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