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6:1-22) 나는 방주를 소개하는 자인가?

by AAHC posted Jan 1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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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1-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22)

 

노아는 어떤 인물이었기에 홍수 심판을 면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은 언제나 창세기 6-9장을 읽으면서 가졌던 질문입니다.

 

노아도 여호와께 은혜를 입지 않으면 안되는 죄인입니다(8).  노아가 잘 나서가 아닙니다.  노아도 방주에 들어가지 않으면 홍수심판을 받고 죽게 된 존재입니다.  그래서 노아가 잘 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노아도 죄성을 갖고 살아간 죄인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9절을 오해하면 안된다고 봅니다.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의인이라는 말은 하나님에 의해서 의롭게 된 존재라는 의미이고, 당대에 완전한 자라는 말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온전케 되었다는 의미이고,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의미로 이해함이 

더 맞겠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노아의 의는 전혀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능력이 역할을 합니다.  그것이 방주입니다.  노아도, 식구들도 방주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절대로 안되는 심판의 대상이라는 사실입니다.

 

본문에서 노아가 주인공이 아니라, 방주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그 방주를 만들게 해 주신 하나님이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그 방주는 유일한 구원의 길 되시고, 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노아의 날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베드로전서 3:20–21).

 

그런 관점에서 22절에 노아가 하나님께서 말씀 하신대로 다 준행했다는 것은 결코 노아의 자랑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심판의 무서움 앞에서 순종한 것은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를 철저하게 인정한 믿음의 자세이고, 그 믿음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만을 높이고, 자랑해야 합니다.  

 

방주를 통해서 우리는 노아의 의를 봐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죄악 속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 자 만이 방주 안에 들어가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 만이 방주를 만들라고 하실 때, 겸손과 두려움과 담대함으로 방주를 만드는 자가 됩니다.  

 

나는 이 방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입니까?

나는 이 방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에게 안내하는 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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