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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9:18-29) 무지개 증표를 자주 보고 있나요?
(창세기 9:18-29)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26-27)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과 언약을 맺으실 때 그 증표를 사용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창조의 마지막 날, 즉 사람에게 첫 날로 주신 안식일도 일종의 증표의 의미도 있으며, 가인에게 표를 주시면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고, 노아에게는 다시 홍수 심판을 하지 않으신다는 의미로 무지개를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언약의 증표로 할례를 행해 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증표를 계속 기억하고, 보면서 확인함으로써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홍수 심판 후 노아는 포도주로 인해 취하고, 그 결과 하나님의 증표인 무지개의 언약을 잊어 버렸던 것입니다(21). 석회질이 많은 지역에서 포도주로 증류해서 음료로 마실 필요가 있었겠지만, ‘취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떤 피조물, 즉 음식 혹은 상황에 맡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의미로 무지개를 증표로 주셨던 것입니다. 홍수 심판을 다시 하지 않겠다는 무지개의 의미도 있지만, 그 홍수 심판을 주셨던 하나님을 잊어 버리지 말고, 홍수 심판의 무서운 결과 마저 잊어버려서는 안되었던 것입니다.
즉,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과 높음을 이해하고, 늘 기억하면서 살아 가야 하는 것이 무지개 증표의 의미라면 사람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 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불만과 불평과 비교와 타협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무지개 증표를 보지 않거나, 그 의미를 잊어 버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벌거벗은 아버지를 보면서 아버지를 지켜 주지 않고, 형들에게 알린 함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인 아버지를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 존중해야 하는 자신의 자세를 잊어 버렸던 것입니다(22).
그러나 셈과 야벳은 아버지를 존중하면서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고 뒷걸음으로 가서 옷으로 덮어 드리는 자세를 가짐(23)으로써 하나님의 구원 역사 계보의 도구가 됩니다(26-27).
홍수 심판과 불 심판 사이에서 우리는 늘 영적 긴장감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무지개를 ‘자주’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예 안 보거나, ‘너무 가끔씩만’ 보게 되면 재창조의 은혜와 의미를 잊어 버리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사람과의 관계속에서도 다시 죄성에 의해 살아가게 됩니다.
나의 삶에 신앙의 잠을 깨워줄, 나태하지 않게 해 줄 ‘무지개’ 증표와 같은 것은 어떤 것일까요?
나는 그 증표를 자주, 깨어서 보고 있나요?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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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10일 기간 동안 홍수 심판/구원을 겪고 방주의 문을 열고 나오는 그 순간, 노아와 가족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여러가지 심정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매우 결연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가족 외에 모든 사람이 다 생존하지 않은 상황에서 노아가 가졌던 마음은 방주에 들어갔을 때 보다 더 단단한 결연의 마음이었을 것 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제일 먼저 번제단을 쌓으면서, 그리고 무지개를 보면서 그의 마음은 재창조의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헌신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포도나무가 자라고, 포도 열매를 거두고, 포도주를 담그는 그 일정의 기간을 지내면서… 어쩌면 채 1년이 되지 않는 기간을 지나면서 노아는 심령의 느슨함… 포도주에 취하게 되는 심령이 됩니다.
나의 삶에서 무지개와 같은 증표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할까… 를 묵상하면서 저는 더 자주, 더 많이 무지개 증표를 자주 보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양의 문’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모든 문을 통과할 때 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방주의 문을 들어가면서, 방주의 문을 열고 나오면서, 무지개를 보면서 노아가 가졌던 하나님의 은혜를 저 또한 기억하는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매 순간 모든 문을 열고 통과하는 순간, 방주의 문을 열고 처음 홍수후의 세상으로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하루를 살아가면서 많은 상황을 겪었지만, 예수 그리스도 은혜의 심정으로 모든 상황을 바라보는 영적 훈련을 하였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모든 문을 지날 때 마다 방주의 문, 양의 문을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쉽게 ‘포도주에 취할 수 있는’ 저 자신의 연약함과 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