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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트 신경.doc
돌트 신경
공식적인 명칭: 네덜란드에서의 주요 5개 조항 교리 논쟁에 대한 돌트 총회의 결정
서론
개혁교회 교리의 세 번째 표준문서는 돌트 신경으로서, 소위 "항론파에 반대하는 다섯 조항"이라고도 불린다. 이 신경은 1618- 1619년 돌트 개혁총회에서 교회로부터 채택된 교리문서이다. 이 총회는 국제적인 차원의 회의였던 바, 네덜란드 개혁교회들의 대표자들로 구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8개국 27명의 외국 교회 대표자들도 함께 참석하였기 때문이다(총 105명).
돌트 총회는 알미니안주의의 고조와 확산에 의해 촉발된 개혁교회 내부의 심각한 논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소집되었다. 라이덴 대학의 신학 교수였던 야곱 알미니우스(Arminius)는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칼빈파의 다섯 조항의 중요 교리 교육에 있어서 의문을 제기하고, 1610년 항론서에 이 5개 조항에 대한 자기들의 견해를 제시하여, 개혁신앙을 이탈하였다. 이 문서와 후기의 좀더 명확한 자료들에 의하며,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예지된 믿음, 보편적 속죄, 부분적 타락, 저항할 수 있는 은혜 그리고 은혜로부터의 타락 가능성에 근거한 조건적 선택을 가르쳤다. 이와 같은 주장은 그 총회에 의해서 배척을 받고, 이와 반대되는 견해 즉 소위 돌트 신경, 또는 항론파에 반대하는 다섯 조항이라고 불리는 입장으로 체계화된 것이다. 이 돌트 총회 신경에서는 다섯 조항, 즉 무조건적 선택, 제한 속죄, 전적 타락, 불가항력적 은혜, 그리고 성도의 견인을 개혁교리로서 천명했다.
이 신경은 알미니안주의와의 논쟁상 거론된 교리 주제에 대한 법적인 판단이 원래 목적이기 때문에 독특성을 지닌다. 원래 서문은 “전술한 다섯 개 조항 교리에 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는 참된 견해와, 하나님의 말씀에 불일치하여 거부된 잘못된 견해에 대한 판단”이라고 명명되었다. 따라서 돌트 신경은 교리 전 영역을 다 섭렵하는 것이 아니라, 논쟁 중인 다섯 조항 교리에 초점이 맞춰진 제한성이 있다.
각각의 조항마다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있는데, 전자는 그 주제에 관한 개혁 교리를 설명하는 것이요, 후자는 이에 상응하는 알미니안주의의 오류를 지적하여 이를 반박하는 것이다. 원래 거부된 오류는 굵고 붉은 글자체로 되어있다. 비록 그 형태에 있어서는 3장과 4장이 하나로 결합되어 단 4개 장으로 있기는 하지만, 돌트 신경이 1610년 항론서의 다섯 개 조항에 상응하게 구성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다섯 조항의 신경이라고 부르며, 그래서 제3장은 항상 3, 4장으로 명명된다. 라틴 원본상에는 긍정적인 부분에는 없으나, 원래 공부를 원활하게 하도록 하기 위하여 부제와 결론을 추가 수록하였다. 우리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은 벨직신앙고백서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마찬가지로 이 돌트 신경에도 필히 서명을 요한다.
첫째 교리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
총회가 하나님 말씀과 일치되고 지금까지 개혁교회들이 용인한 것으로 선언한 하나님의 예정에 관한 판단은 다음과 같은 조항들로 제시하는 바이다.
제1조 모든 인류를 정죄하는 하나님의 권리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범죄하여 저주 아래 놓여 있으며, 영원한 죽음에 해당하기에(롬5:12), 만일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죄와 저주 아래 버려두시고, 그 죄로 인해 정죄 받도록 하는 것이 그의 뜻이라 해도, 사도의 말과 같이, 어느 누구에게라도 그가 불의를 행하신 것이 아니다.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 3:19)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제2조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의 현현
그러나 여기에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으니(요일 4:9),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제3조 복음 선포
그래서 사람들에게 믿음이 생기도록, 하나님께서는 자비롭게도 가장 복된 소식의 전파자들을 그가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사람에게 보내신다. 그들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부름을 받아 회개하고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14-15).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사 52:7)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3-24)
제4조 복음에 대한 이중 반응
하나님의 진노는 이 복음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 임한다. 그러나 참되고 살아 있는 믿음으로 이 복음을 받고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하나님의 진노와 멸망으로부터 구원을 받고 영생을 받는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 10:9)
제5조 불신앙과 믿음의 근원
다른 모든 죄와 마찬가지로 이 불신앙의 원인이나 그 죄책은 결코 하나님 안에 있지 않고, 오히려 사람 안에 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를 통한 구원은 다음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빌 1:29)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히 4:6)
제6조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하나님께서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믿음의 선물을 수여하시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주시지 않는데, 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서 비롯된다. 과연 "주 하나님께서는 영원부터 자기의 모든 일들을 다 아시는 분이시며,"(행 15:18) 따라서 "모든 일을 자기 뜻의 경륜에 따라 역사하신다."(엡 1:11) 이런 작정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택자들의 마음이 아무리 완고하다 하더라도 은혜롭게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어 믿도록 하신다. 반면에 불택자들은 의로운 심판에 의해 그들 자신의 사악함과 완고함 속에 내버려두신다. 바로 여기에서 똑같이 정죄받기에 마땅한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오묘하고도 자비롭고 동시에 의로우신 구별, 혹은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신 택함과 유기의 작정을 우리에게 드러내신다. 비록 사악하고 불순하고, 변덕스러운 사람들이 이런 작정을 왜곡하여 그들 자신의 멸망을 자초하지만, 거룩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영혼들에게는 말할 수기에는 위로가 된다. “ 말할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벧전 2:8)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엡 1:11)
제7조 제한된 선택
선택이란 하나님의 불변하신 뜻으로서,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자기 자신의 잘못으로 원래의 완전무결한 상태에서 죄와 파멸 속으로 떨어진 모든 인류 중에서, 하나님의 선하고 기쁘신 주권적 뜻에 따라서, 오직 은혜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점이 전혀 없이, 오히려 일반적인 비참 가운데 함께 휩쓸려 있는데도 일부 제한된 특정한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신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영원부터 그리스도를 중보자와 택자의 머리와 구원의 기초가 되도록 임명하셨고, 그래서 구원받을 자들을 그에게 주고, 효과적으로 그들을 부르시고 말씀과 성신을 통하여 그 분의 교제 안으로 이끌어 들이시도록 작정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참 믿음을 주시어,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며, 그 아들과의 교제 안에서 능력 있게 그들을 보존하시고, 결국 하나님의 자비를 증시하고 그의 영광스러운 은혜의 부요함을 찬양하도록, 영화롭게 하시기로 작정하셨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요 17:2)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 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요 17:12)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 17:24)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 6:44)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 1:9)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제8조 선택의 한 작정
이 선택에는 다양한 작정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 하에 구원받을 모든 사람들에 관한 하나의 동일한 작정만 있을 뿐이다. 이 성경에는 하나님의 선하고 기쁘신 목적과 그 뜻의 경륜이 하나라고 선언한다. 이 목적에 따라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에 이르도록, 또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행하지 않을 수 없도록 예비하신 구원의 길과 구원에 이르도록 우리를 선택하신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 7:7)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의로움을 인함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신 9:6)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4-5)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제9조 예지된 믿음에 근거하지 않은 선택
이 선택은, 사람 안에 있는 선택의 요구 조건이나 원인으로서, 예지된 믿음, 믿음의 순종, 거룩함이나 다른 어떤 선한 기질이나 성품에 근거하지 않고, 사람들이 선택을 받아서 믿음, 믿음의 순종, 거룩함 등등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택은, 믿음에서 흘러나온 바, 구원을 이루는 모든 선행과 거룩함과 여타의 구원을 이루는 은사들, 그리고 그 선택의 열매와 효과인 최후의 영원한 생명 그 자체 등의 근원이다. 이것은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하셨다는 사도의 가르침이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제10조 하나님의 선하고 기쁘신 뜻에 근거한 선택
이 은혜로운 선택의 유일한 원인은 하나님의 선하고 기쁘신 뜻이다. 이 선하고 기쁘신 뜻이란, 하나님께서 모든 가능한 조건들 중에서 구원의 조건으로서 사람들의 어떤 자질들이나 행위들을 택하심에 있지 않고, 보편 다수의 죄인들 중에서 얼마를 뽑아서 자기 자신의 소유로 택정하심에 있다. 기록된 바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롬 9:11-13).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창 25:2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였노였노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노였는도다 노 여호와가 말하노였노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노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말 1:2-3)
제11조 불변의 선택
하나님은 스스로 가장 지혜로우시며 불변하시며 전지전능하시듯이, 그의 선택도 취소되거나 고쳐지거나 변하거나 파기되거나 무효화될 수 없다. 또한 택자들이 버림받거나 그 수가 줄어들 수도 없다.
제12조 선택의 확신
택자들은 때가 되면, 비록 단계별로 다양하고 정도가 상이할지라도, 자기들의 구원에로의 영원불변한 이런 선택을 확신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이런 확신은 하나님의 감춰진 오묘한 일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해서가 아니라, 신령한 기쁨과 거룩한 즐거움으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제시된 바 선택의 확실한 열매를 스스로 계속 잘 맺음으로써 얻는다. 즉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 어린아이와 같은 경외심, 자기들의 죄에 대한 경건한 슬픔,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 등이 그것이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 29:29) “오직 하나님이 성신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신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10-11)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제13조 이런 확신의 가치
이 선택에 대한 인식과 확신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날마다 자신들을 하나님 앞에서 겸비케 하며, 하나님의 깊은 자비를 흠모하고, 자신을 정결케 하며, 먼저 자신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그 큰 사랑으로 인하여 열렬하게 그 분을 사랑하도록 하는, 더 큰 동기를 부여해준다. 그러므로 이 선택의 교리와 이를 심사숙고함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명 준수를 해이케 한다든지 거짓된 안정을 준다고 하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으로, 이런 경우는 종종 경솔하게 선택의 은혜를 받은 자로 추정하는 자들, 혹은 이 교리에 대해 빈정거리고 함부로 지절거리며, 택자다운 길로 행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에게 일어난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제14조 선택의 합당한 교육 방식
하나님의 지극히 지혜로운 경륜에 따른 이 신성한 선택 교리는 선지자들과 그리스도 자신 그리고 사도들에 의해서, 신약과 마찬가지로 구약시대에도 선포된 바, 그래서 성경 안에 분명하게 수록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역시 이 교리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분별의 성신이 더불어 역사하시도록 특별히 적절한 시간과 장소를 배려해서 준비함으로써, 지존하신 분이 내신 길을 호기심으로 엿보지 않고, 경건하고 거룩한 방식으로, 그래서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도록, 그리고 그의 친 백성에게 살아있는 위로를 주도록, 반드시 가르쳐져야 한다.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행 20:27) “누가 그를 위하여 그의 길을 정하였느냐 누가 말하기를 주께서 불의를 행하셨나이다 할 수 있으랴 너는 하나님의 하신 일 찬송하기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 일을 노래하였느니라 그 일을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나니 먼데서도 보느니라 하나님은 크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 연수를 계산할 수 없느니라.”(욥 36:23-26)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고전 4:6)
제15조 유기에 관한 언명
성경은 이렇게 영원히 값없이 주신 은혜인 우리의 선택을 우리에게 예증해주고 권고하는 바, 특히 모든 사람이 선택받지 않고 일부는 선택받지 못했거나,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에서 제외되어버린 점을 일부러 천명하는 경우를 통해서이다. 하나님의 지극히 자유롭고, 의로우며, 일호의 차착이 없는, 불변하신 선하고 기쁘신 뜻으로부터,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보편적 비참에 빠져있는 자들을 버려두사, 그들에게 구원받는 믿음과 회개의 은혜를 주지 않기로 작정하셨다. 그들 자신의 길로 행함으로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 아래 놓여진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신앙 뿐만 아니라 여타의 모든 죄악, 하한 하나님의 공의를 현시하기 위해서, 최후, 영원히 정죄하시고 형벌하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바로 이슃 것유기의 교리로서,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결코 죄의 조성자가 아니요(바로 이런 생각이야말로 신성모독이다!), 오히려 하나님을 두렵고 일호의 차착이 없이 의로운 재판장이시며 보수자로 선언한다.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롬 9:22)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벧전 2:8)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행 14:16)
제16조 유기 교리에 대한 반응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산 믿음, 마음의 확고한 확신, 양심의 평안, 어린아이같이 순종하는 열심,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 안에서의 자랑 등을 스스로 뚜렷하게 분별치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런 은덕들이 우리들 안에 생기도록 하나님이 약속하신 바 그 방도들을 사용한다. 그들은, 유기가 언급될 때 불안해 해서도 안되며, 자신을 유기자들 중의 하나로 간주해서도 안된다. 오히려 이런 방도들을 부지런히 계속 사용하여, 더욱 풍성한 은혜의 때를 열렬히 사모하며, 공손히 겸손으로 그 때를 고대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진정으로 하나님께로 돌이켜서,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고, 사망의 몸에서 건짐받기를 바란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들이 선호했던 경건과 믿음의 행보에서 지향점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들에게는 결코 유기 교리가 두려움의 대상일 수만은 없는데, 이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고 상한 갈대조차 꺾지 아니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여전히 또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를 무시하고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세상의 염려와 육체의 정욕에 넘겨주었다. 그들에게는 이 유기 교리가 그들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돌이키지 않는 한 당연히 가공스러운 것이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후 1:12)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롬 5:11) “하나님의 성신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빌 3:3)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사 42: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마 12:20)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마 13:22)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히 12:29)
제17조 유아로 죽은 신자의 자녀들의 구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에 대해 판단해야 하는 바, 신자의 자녀들은, 그 본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부모와 더불어 자신들도 포함된 은혜 언약 덕분으로, 거룩하다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는, 하나님께서 유아기에 이생에서 불러가신 자기 자녀들의 선택과 구원을 결코 의심해서는 안된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7)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신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 59:21)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행 2:39)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고전 7:14).
제18조 선택과 유기에 대한 합당한 태도는 항의가 아닌 찬양
우리는, 이런 값없이 은혜로운 선택과 의로운 유기의 엄격함에 대해 불평하는 자들에게, 사도의 이 말씀으로 대응한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롬 9:20).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마 20:15).
그러나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신묘막측함에 대해 공손한 찬양과 함께, 사도와 더불어 다음과 같이 탄성을 발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3-36)
한때 네덜란드 개혁교회들을 혼란케 했던 오류에 대한 반박
총회는, 선택과 유기에 대한 참된 정통 교리를 천명하는 바, 다음과 같은 오류를 거부한다.
1. 오류: 믿음과 순종으로 믿고 견인하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전체가 온전히 구원받는 선택의 작정이다. 이런 작정에 관한 것 외에는 그 무엇도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되어 있지 않다.
반박: 이 오류는 속임수이며, 하나님은 믿는 자를 구원할 뿐만 아니라 영원 전부터 특정한 자들을 선택하셨음을 선언하는, 성경과 명백히 상충된다. 때가 이르면 하나님께서는 이 택자들에게, 다른 사람들과는 유독 달리,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견인을 주신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요 17:6).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2. 오류: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선택은 다양하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불특정한 것이요, 또 다른 하나는 특별히 특정한 것이다. 전자는 불완전하고 취소될 수 있으며 미결정적이고 조건적이며, 후자는 완전하고 취소될 수 없으며 결정적이고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믿음에 이르는 선택이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구원에 이르는 선택이 있다. 그러므로 선택은 구원에 결정적이지 않고도, 의롭게 하는 믿음을 가지도록 하는 선택이 있을 수 있다.
반박: 이 모든 주장은 성경의 어떤 근거도 없이 사람의 머리로 고안해 낸 것이다. 선택 교리가 이렇게 부패하고 우리 구원의 황금사슬이 깨어졌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3. 오류: 성경이 선택 교리로 말하는 바 하나님의 선하고 기쁘신 뜻은,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사람들을 택하시고, 나머지 사람들은 택하지 않으셨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모든 가능한 조건들(율법의 행위 등) 중에서, 믿음의 불완전한 순종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을, 믿음의 행위로 선택하시거나 선정하심으로, 구원의 조건이 되도록 하셨다는 데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은혜로 그러한 믿음을 완전한 순종으로 영원한 생명의 상급에 합당하다고 간주하고자 하신다.
반박: 바로 이러한 무례한 오류가 하나님의 선하고 기쁘신 뜻과 가장 유효한 그리스도의 공로를 찬탈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은혜로운 칭의의 사실과 성경의 단순명료함으로부터 떨어지게 한다. 이는 사도의 교훈과 상충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4. 오류: 믿음에 이르는 선택은 사람이 본성의 빛을 합당하게 사용해야 하며, 경건하고 겸비하고 온유하고 영원한 생명을 위한 자격을 갖춰야 하는 조건부이다.
반박: 만일 이것이 참이라면, 선택은 사람에게 의존하게 된다. 펠라기우스(Pelagius)의 가르침에서 이러한 낌새가 있으며, 다음의 사도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충돌된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3-9).
5. 오류: 어떤 특정한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 불완전하고 미결정적인 선택이란, 이미 시작했거나 얼마 동안은 지속되는, 예지된 믿음과 회심, 거룩함, 경건함 등에 근거해서 되어진다. 그러나 완전하고 결정적인 선택은 끝까지 예지된 믿음의 견인, 회심 그리고 거룩함과 경건함으로 인해서 일어난다. 바로 이것이 은혜롭고 복음적인 가치인데, 이로 인하여 택함 받은 자가 택함 받지 못한 자보다 훨씬 더 가치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믿음과 이 믿음에의 순종, 거룩함과 경건함, 성도의 견인 등은 영광에 이르는 불변의 선택의 열매가 아니다. 오히려 필수적인 선행(先行) 조건들이며, 온전히 택함 받아야 하는 자들에게서의 성취를 예견하고 요구하는 요인들이다.
반박: 이러한 오류는 모든 성경의 교훈에 악영향을 미치는 바, 성경은 끊임없이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강조한다.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하사"(롬 9:11).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롬 11:6).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요일 4:10).
6. 오류: 구원에 이르는 온갖 선택이 다 불변한 것은 아니다. 택자 중의 얼마는 하나님의 어떤 작정에도 불구하고, 멸망 받을 수 있으며 또 실제로 그러하다.
반박: 이 엄청난 오류는 하나님을 변덕스러운 분이 되게 하며, 신자들이 그들의 선택에 대한 확신으로 얻는 위로를 파괴하고, 성경과 상충된다.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4).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요 6:39).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7. 오류: 이생에서는 영광에 이르도록 불변적 선택의 열매나 자의식이나 확실성이 없고, 다만 가변적이며 불명확한 조건에 근거할 있을 따름이다.
반박: 불확실한 확실성이라고 말하는 자체도 불합리할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경험과도 상반된다. 신자들은 자기들의 선택에 대한 분명한 의식을 가지게 되면, 엡1장에서, 이런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사도와 더불어 찬미한다. 또한 눅 10:20에서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더불어 자기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한다. 과연 그들은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롬 8:33)라고 천명할 때, 마귀가 쏘아자치는 화전에 대항하여 자기들의 선택을 자각한다.
8. 오류: 하나님은 단지 그의 의로우신 뜻에 따른 행동에 의해서 그 어떤 사람이라도, 아담 안에서 타락하여, 죄와 저주의 보편적 상태에 버려두시기로 결정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또한 어느 누구에게라도 믿음과 회심에 꼭 필요한 그런 은혜를 받는 일에 누락되도록 결정하지 않으신다.
반박: 그러나 성경 말씀은 다음과 같다.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롬9:18).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마 13:11).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 11:25-26).
9. 오류: 하나님께서 여타의 다른 민족에게라기보다는 어느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주신 것은 오직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쁘신 뜻 때문이 아니라, 복음이 선포되지 않은 여타의 다른 민족보다 그 한 민족이 훨씬 더 선하고 더 가치 있기 때문이다.
반박: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때 바로 이 점을 부인한다.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여호와께서 오직 네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신 10:14-15). 또한 그리스도께서도 말씀하신다.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마 11:21).
둘째 교리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로 인한 사람의 구속
제1조 하나님의 공의에 따른 형벌
하나님은 지극히 자비로우실 뿐만 아니라 지극히 공의로우시다. 그래서 그의 공의로우심은, 그의 말씀으로 친히 계시하셨듯이, 그의 무한한 엄위를 거스린 우리의 죄가, 이생에서만이 아니라 장차 오는 세상에서도, 몸과 영혼에 공히, 형벌 받아야 할 것을 요구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케 되지 않는 한 이런 형벌들을 피할 수 없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Ä많은 하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출 34:6-7)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롬 5:16)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
제2조 그리스도에 의해 이뤄진 공의의 만족
그러나 우리 자신들은 이런 만족을 이룰 수 없고,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자유롭게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무한하신 자비로 그의 독생자를 우리의 보증으로 주신 것이다. 우리를 위해서 또는 우리를 대신해서 그는 십자가 위에서 죄와 저주를 담당하심으로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제3조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무한한 가치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은 유일하고 가장 완전한 희생제물이며 죄에 대한 보속이요, 온 세상의 죄를 충분히 속하고도 넘칠 만큼, 무한한 가치와 값어치가 있다.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6, 28)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4)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제4조 그리스도 죽으심이 무한한 가치가 있는 이유
이 죽음이 그렇게 위대한 가치와 값어치가 있는 이유는 죽음에 자기 자신을 내놓으신 그 분은 참되고 완전히 거룩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성부와 성신과 함께 동일하게 영원하며 무한한 동일본질을 지니신 분이신데. 바로 이런 본질이 우리 구세주로서의 필수적인 자격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 죽음이 그렇게 위대한 가치와 값어치가 있는 이유는 우리 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해ù자격을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의 의미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필수적인 자격을 가 아니요 모든 구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ù자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히 7:26)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요일 4:9)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6)
제5조 복음의 보편적 선포 명령
복음의 약속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것이다. 이 약속은 회개하고 믿으라는 명령과 함께,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하고 기쁘신 뜻으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모든 민족과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아무 차별없이 알리고 선포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전 1:23)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신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행 16:31)
제6조 불신자의 책임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에 의하여 부름을 받고도 회개도 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며 불신앙 가운데에서 멸망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드려진 그리스도의 희생제물에 무슨 흠이 있거나 불충분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들 자신들의 잘못 때문이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시 95:11)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히 4:6)
제7조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믿음
그러나 참으로 믿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의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고 파멸로부터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는, 이 은덕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 전부터 그들에게 주어진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온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이 은혜를 신세지지 아니하신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고후 5:1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제8조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공효
과연 하나님의 아들의 가장 보배로운 죽음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구원받게 하는 공효는 모든 택자들에게 미쳐야 한다는 이 사실은 지극히 자유로운 하나님의 경륜이다. 그들에게만 칭의를 주시고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틀림없이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지극히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뜻과 의도이다. 이 의미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새 언약을 확증하셔서) 모든 민족, 족속, 나라, 방언들로부터 아버지께서 영원 전부터 구원받도록 택하시고 아들에게 주신 자들은 모두, 그리고 오직 그들만을 효과적으로 구속하도록 뜻하셨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성신의 여타의 구원의 선물들과 더불어, 자신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위해 획득한 믿음을 그들에게 주시도록 의도하셨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그들의 모든 죄, 원죄와 자범죄, 믿고 난 후에 범한 죄든지 그 이전에 지은 죄든지를 다 정결케 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세상 끝날까지 신실하게 보호 보존하셔서 최후에는 티나 주름잡힌 것이 영광 중에 그들을 자신 앞에 드러내시도록 뜻하신 것이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요 17:9)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5-27)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히 8:6)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계 5:9)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7)
제9조 하나님의 경륜의 성취
택자들에게 베푸신 영원한 사랑에서 비롯된 이 경륜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능력있게 성취되어 왔으며, 또한 아무리 음부의 권세가 그 경륜을 좌절시키려고 헛되이 노력할지라도 여전히 계속 성취될 것이다. 때가 차면 택자들은 다함께 하나로 모이게 될 것이며, 그래서 그리스도의 피를 기초로 설립된 신자들의 교회는 항상 있을 것이다. 이 교회는 (그 교회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으신 신랑되신 분의 신부로서)교회의 구주인 그 분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신실하게 섬기며, 지금과 영원무궁토록 그 분의 찬송을 송축할 것이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요 11:52)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8)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 5:25)
오류에 대한 반박
총회는, 그리스도 죽음과 이 죽음에 의한 사람의 구속에 관한 참된 정통 교리를 천명한 바, 다음과 같은 오류를 거부한다.
1. 오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어떤 자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특별하고 분명한 작정없이, 그 아들을 십자가에 죽도록 정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죽음으로 인해서 획득하신 것은, 심지어 그가 얻으신 구속이 실제로 어떤 사람에게도 결코 적용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필수적이며, 유익하고, 가치있으며, 그 모든 면에서 완전무결하며 본연 그대로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반박: 이런 교리는 성부의 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경멸하는 것이요 성경과 정반대 입장이다. 우리 구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나는 저희를 알며"(요 10:15, 27). 또한 이사야 선지자도 구세주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사 53:10). 결국, 이런 오류는 보편적 그리스도 교회가 믿는 신앙의 조항과 상충된다.
2. 오류: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새 언약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목적이 아니라, 은혜 언약이든지 행위 언약이든지 그 분이 기뻐하시는 대로의 언약을 사람과 한 번 더 세우기 위한 그 권리만을 아버지를 위하여 얻도록 하는 그것뿐이다.
반박: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성경의 가르침에 악영향을 준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히 7:22, 9:15, 17).
3. 오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케 하심은 실제로 어떤 사람을 위한 구원의 공로나, 그 만족케 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결과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삼는 믿음을 얻도록 하는 공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부를 위하여 사람과 다시 상대하여, 그리스도께서 바라신 대로의 새 조건을 제시해주는 권위나 완전한 의지만을 얻으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것도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이 조건들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이 전혀 없을 수도 있고, 모든 사람이 다 충족시킬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반박: 이런 오류를 가르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여지없이 멸시하는 자들로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얻게 되는 가장 중요한 열매나 유익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바, 펠라기우스의 망령이 지옥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4. 오류: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중보를 통하여 인간과 맺은 새로운 은혜 언약이란, 우리가 그리스도의 공로를 받아들임으로써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칭의와 구원을 얻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의 요구를 철회하시고, 믿음을 율법의 완전한 순종으로 간주하시고, 믿음의 순종이 불완전할지라도 율법의 완전한 순종으로 여기시는 그 사실에 있다. 그 분은 은혜롭게 그 믿음과 순종을 영원한 생명으로 보상할 가치가 있다고 간주하신다.
반박: 이 주장은 성경과 상충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4-25). 따라서 이러한 오류를 가르치는 자들이 선포하는 바는, 불경건한 소시누스(Socinus)처럼, 하나님 앞에서의 사람의 칭의에 대해 전체 교회가 동의하는 입장과 상반된, 전혀 괴상한 칭의론이다.
5. 오류: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과의 화해의 상태로 그리고 은혜 언약 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으로, 그 결과 어느 누구도 원죄로 인한 죄책을 지지 않아도 되며, 어느 누구도 원죄 때문에 정죄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은 원죄의 죄책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반박: 이 주장도 "본질상 진노의 자식"(엡 2:3)이라는 성경의 가르침과 상충된다.
6. 오류: 하나님의 편에서는, 모든 민족에게 똑같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얻으신 유익들을 수여하시고자 하신 것이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사죄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또 다른 사람들은 얻지 못한다. 이런 차이는 차별없이 제공되는 은혜 그 자체를 자신들에게 적용시키는 각자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는 것이지, 그들 안에 아주 능력있게 역사하여 이 은혜를 다른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에게 적용하도록 한 특별한 자비의 은사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반박: 이런 교훈을 하는 자들은 구원의 획득과 적용 사이의 차이점을 오용하여, 경솔하고 미숙한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케 합니다. 그들은 이런 차이를 건전한 의미에서 제시하는 체하지만, 사람들의 마음 속에 펠라기우스주의의 치명적인 독을 주입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7. 오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사, 영원한 생명으로 선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죽으실 수도 없고, 죽으실 필요도 없으며, 죽으시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이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박: 이 교리는 사도의 가르침과 상충된다.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 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롬8:33-34). 또한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5).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사랑이 없나니"(요 15:12-13).
셋째와 넷째 교리
사람의 타락과 하나님께로의 회심과 그 방식
제1조 사람 본성상 타락의 결과
태초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그는 창조주와 모든 영적인 존재들에 대한 참되고 온전한 지식을 마음에 구비하였다. 즉 그의 의지와 마음은 의롭고, 그의 모든 감정은 순수했으며, 따라서 사람은 완전히 거룩했다. 그러나 사람은 사단의 선동과 자기의 자유 의지로 인하여 하나님께 반역하여, 스스로 이 탁월한 은사들을 상실하고, 대신 스스로 그의 지성에 암매, 지독한 흑암, 허탄함과 왜곡된 판단이 초래한 바, 그의 의지와 마음은 사악하고 패역하고 완고하게 되었고, 그의 모든 감정은 불순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6-27)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창 3: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도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엡 4:17-19)
제2조 부패의 확산
사람이 타락 후 부패한 이래, 부패한 부모로서 부패한 자녀를 낳았다. 따라서 부패는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아담으로부터 그의 모든 후손들에게 확산되었다. 이는 예로부터 옹호해온 펠라기우스 주장처럼, 결코 모방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에 따르면, 왜곡된 본성이 유전된 것이다.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욥 14:4)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 51:7)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제3조 사람의 전적 무능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죄 안에 잉태되어 본질상 진노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어떤 구원의 선행을 할 수 없고, 악으로 기울어져서, 죄 가운데 죽은, 죄의 노예가 되었다. 그래서 성신의 중생케 하는 은혜가 없이는,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자기들의 타락한 본성을 개혁하거나, 스스로 그 본성을 개혁하고자 준비하려고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1,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 8:34)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롬 6: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신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신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3-6)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신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
제4조 본성의 빛의 불충분성
확신하는 바, 사람에게는 타락한 후에도 희미한 본성의 빛이 남아 있어서, 이로써 하나님과 자연 만물에 관하여 그리고 영광과 수치의 차이에 관한 식견을 어느 정도 보유하며, 도덕과 외적 질서에 대하여 약간 존중하는 태도가 있다. 그러나 이 본성의 빛은 하나님의 구원의 지식과 참된 회개에는 도무지 도달하지 못하게 하는 바, 사람은 자연적인 문제들이나 사회적인 문제들이 있을 때도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더욱이 이 빛이 무엇이든지, 사람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 빛을 온전히 오염시키고, 자기의 사악함으로 그것을 억제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핑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 1:19-20)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행 2:14-15)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 1:18,20)
제5조 율법의 불충분성
본성의 빛을 고수하는 입장은 하나님이 특별히 모세를 통해서 유대인들에게 주신 십계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비록 이 십계명이 죄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더더욱 사람에게 자기 죄책에 대한 정죄를 선고할지라도, 그런데도 그 십계명은 치유책을 제시하지 못하며, 죄로 말미암은 이 비참으로부터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을 그에게 주지 못한다. 오히려 육신에 의한 연약해진 범죄자로 하여금 저주 아래 남아있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율법을 통해서는 도저히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없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19-2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함이니라.”(롬 7:10,1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롬 8:3)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고후 3:6-7)
제6조 복음의 구원 능력
그러므로 본성의 빛이나 율법으로 할 수 없는 그 일을, 하나님께서는, 옛 언약시대나 새 경륜의 시대 하에서든지, 믿는 자들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라는, 메시야의 복음, 곧 화목의 말씀 또는 화목의 사역을 통하여 성신의 능력으로 수행하신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 5:18-19)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제7조 복음 계시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자유
옛 경륜 하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신비로운 그의 뜻을 극소수에게만 계시하셨다. 그러나 새 경륜 하에서, 하나님께서는 여러 민족들 간의 차별을 제거하셔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계시하셨다. 바로 이런 복음의 분포의 요인은 어느 한 민족이 여타의 다른 민족들보다 더 가치가 있거나, 이 본성의 빛을 더 잘 사용한 것에 기인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쁘신 주권적인 뜻과 무조건적인 사랑 덕분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과는 상관없이 그리고 정반대로, 우리는 그 무한하신 은혜를 받은 자들이기에,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 은혜가 주어지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 관해서는, 우리는 사도와 더불어 하나님의 심판의 엄위와 공의를 존중해야 하며, 결코 호기심으로 그들에게 파고들어서는 안된다.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엡 1:9)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엡 2:14)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골 3: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롬 2:11)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 11:26)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롬 11:22-23)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계 16:7)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 29:29)
제8조 복음의 진정한 부름
그러나 복음에 의해 부름받은 모든 자는 진정으로 부름받는 것이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그가 기뻐하시는 바, 곧 부름받은 자들이 그에게 필연코 나오도록 그의 말씀 안에서 진정과 성실을 다하여 계시하신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나아와 그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그들의 영혼의 안식과 영원한 생명을 진정으로 약속하신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마 22:4) “성신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 22:1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8-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빌 1:29)
제9조 복음을 거절한 자의 책임
복음의 사역을 통하여 부름을 받은 많은 자들이 나아와서 회개치 않는 것은, 복음이나 그 복음에 의해서 제공된 그리스도나, 그 복음을 통하여 부르시고 더욱 그들 위에 다양한 은사가 베푸시는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다. 그 잘못은 그들 자신들에게 있다. 그들 중의 일부는 도무지 생명의 말씀에 무관심하여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 다른 사람들은 복음을 받으나, 그들의 마음 속에 영접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현세적인 믿음의 기쁨이 사라지면, 그들은 떠나버린다. 또 어떤 이들은 이생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일락에 말씀의 씨가 질식하여 결실치 못하는 것이다. 바로 이 교훈을 구주께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가르치신다. “그 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섰더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마 13:1-9)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마 11:20-24)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마 22:1-8)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마 23:3)
제10조 하나님의 사역으로서의 회심
복음 사역에 의하여 부름받은 여타의 사람들은 나아와서 회개한다. 이는 사람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그는 믿고 회심한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된 똑같은 혹은 충분한 은혜 이상으로 (펠라기우스 추종자들의 교만한 이단사설처럼) 스스로 자기의 자유의지를 내세우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소유로 택정하셔서 정한 때가 되매 그들을 효력있게 부르신 것이다. 그 분은 그들에게 믿음과 회개를 주신다. 즉 그는 흑암의 권세에서 그들을 건지셔서 그의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신 것이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신 바,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을 흑암으로부터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의 경이로운 행사들을 선포하도록, 그리고 성경의 여러 곳에서 사도들이 증거한 대로, 자기 자신들이 아니라 주님을 자랑하도록 하신 것이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6)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3)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갈 1:4)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전 1:31)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고후 10:17)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제11조 회심에 있어서의 성신의 사역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택자들 안에서 자기의 선하고 기쁘신 뜻을 이루시며 그들 안에 참된 회개를 일으키신다. 그 분은 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도록 배려하시며, 그들의 마음에 성신으로 능력있게 빛을 비추시사, 그들이 하나님의 영에 속한 일들을 바르게 깨닫고 분별토록 하신다. 또한 중생케 하시는 동일한 성신의 효력있는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 분은 사람의 마음 깊은 속에까지 통찰하셔서, 닫힌 마음을 열게 하시고,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며, 할례받지 아니한 마음에 할례하시며, 그의 의지에 새로운 자질들을 주입하신다. 그 분은 죽은 의지를 소생케 하신 바, 악한 것은 선하게, 억지를 기꺼이 하는 마음으로, 완고함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만드신다. 그 분은 그 마음을 감동하시고 힘있게 하사, 좋은 나무처럼, 선행의 열매들이 맺어질 수 있게 하신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신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히 6:4-5) “오직 하나님이 성신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신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신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신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0-14)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행 16:1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신 30:6)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겔 11:19)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26)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 7:18)
제12조 하나님의 초자연적 단독 사역으로서의 중생
이런 회개는 중생이며, 새 창조요,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며, 살리는 것으로서, 성경에서 강조하여 말하는 바, 하나님께서 우리 없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 중생은 결코 교육 자체로나, 도덕적 설득으로나, 또는 하나님께서 그의 역할을 다 하신 후에 중생 여부나 회심 여부를 사람의 능력 발휘에 두는 그런 식의 작용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분명히 초자연적이고, 초능력으로, 동시에 환희에 차고, 기이하고, 신비하고, 형언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사역의 주재에 의해 영감된 성경에 따르면, 이 중생은 창조나 죽은 자의 부활 능력에 못지않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 경이로운 방식으로 그 마음에 역사하시는 모든 사람들은, 확실하고, 틀림없이, 효과적으로 중생케 되고, 실제로 믿게 된다. 그래서 다시 새로워진 의지는 하나님에 의해서 행해지고 움직여질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에 의해 행해진 이 의지는 자신이 스스로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 자신은 그가 받은 은혜로 말미암아 믿고 회개한다고 말하는 것이 합당하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 4:6)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엡 5:14)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5:25)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롬 4:17)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제13조 불가해한 중생
이생에서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이 사역을 행하시는 방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반면에, 하나님의 이런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이 마음으로 자기들의 구주를 믿고 사랑하는 것을 충분히 알고 경험할 수 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신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 3:8)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 10:9)
제14조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인 이유
그러므로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은, 단지 하나님에 의해 사람의 자유의지에 제공된 정도이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에게 수여해주시고, 그 속에 스며들도록 주입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믿을 능력만 수여하셔서 사람의 자유의지로부터 믿는데 동의하거나 믿는 그 행위를 기다린다는 의미에서의 선물이 아니다. 오히려 이 믿음은 의지나 행위 양면에 역사하시고, 참으로 만물 만사를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믿을 의지도 주시고 믿는 행위 역시 주신다는 의미에서의 선물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제15조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에 합당한 태도
이런 은혜는 하나님께서 어느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아니다. 도대체 그 분이 사람에게 무엇 때문에 빚을 질 수 있겠는가?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죄와 거짓 외에 아무 것도 없는 그런 자에게 하나님께서 무슨 빚을 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런 은혜를 받는 자는 오직 하나님께만 빚을 지고 영원히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은혜를 받지 않은 자는, 이런 영적인 일들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이 자기가 가진 소유로 만족하거나, 혹은 거짓된 안정 속에 자기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양 헛되이 자랑한다. 더 나아가 자기들의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하며 자기 생활을 개선하는 자들에 관하여, 우리는 사도들의 본을 받아서 가장 우호적인 태도로 그들을 판단하고 그들에 대해 말해야 하는 바, 마음 속 깊은 곳은 우리에게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부르심을 받지 못한 자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들을 위해,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우리 스스로 남다른 유별난 존재인 것처럼 교만하게 행하면 안된다.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롬 11:35)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열국 중 우승하여 유명하므로 이스라엘 족속이 따르는 자들이여.”(암 6:1)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렘 7:4)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 14:10)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롬 4:17)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고전 4:7)
제16조 제거되지 않고 소생한 사람의 의지(중생의 효과)
사람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지성과 의지를 부여받은 사람됨이 끝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전 인류에게 퍼진 죄악이 인간의 본성조차 빼앗아간 것은 아니고, 부패와 영적 죽음을 초래한 것이다. 그래서 중생의 신성한 은혜도 마치 사람들이 벽돌이나 돌들처럼 작용하지 않고, 또 의지와 그 특성을 제거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오히려 의지를 영적으로 소생시키고, 치료하며, 교정하고, 흔쾌히 동시에 강력하게 의지를 굴복시킨다. 결과적으로, 전에는 육체의 반역과 반항으로 완전히 지배 당한 곳에, 이제는 영의 신속하고 신실한 순종이 우세하기 시작하는 바, 우리의 참되고 신령한 의지의 회복과 자유가 있게 된다. 또 만일 모든 선의 기이한 조성자께서 이런 방식으로 우리를 다루지 않는다면, 사람은 자신의 자유 의지로는 이 타락으로부터 일어설 아무런 소망도 얻지 못하고, 그가 여전히 서 있다 할 때, 그 자유의지로 말미암아 스스로 멸망에 빠져 들어갈 뿐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신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 51:12)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제17조 중생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방도들 사용
우리의 이런 자연적인 생명을 생기게 하시고 지탱하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그의 무한하신 지혜와 선하심을 따라 그의 능력을 실현하도록 의도하신, 방도의 사용을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요구한다. 이처럼, 전술한 대로, 우리를 중생케 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도 결코 복음의 사용을 배제하거나 취소시키지 않는 바, 가장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이 복음을 중생의 씨와 영혼의 양식으로 정하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사도들과 그들을 계승한 교사들이 하나님의 이 은혜에 관하여 백성들을 공손하게 교훈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인간의 모든 교만을 버리도록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은, 거룩한 복음의 훈계로 말미암아, 말씀과 성례와 권징의 시행 하에서, 자기들을 지키는데 태만하지 않았다. 오늘날도 교회에서 가르침을 주거나 받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선하고 기쁘신 뜻으로 함께 친밀히 연합하도록 의도하신 바를 분리함으로써, 감히 하나님을 시험하려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은혜란 훈계를 통해 수여되며, 우리가 우리의 당위를 기꺼이 수행하면 할수록,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이런 호혜는 그 광채를 더욱 현저히 드러내서, 그 분의 사역이 최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과연 방도들과 그들의 구원의 열매와 효과로 인하여, 모든 영광은 영원무궁토록 오직 하나님께만 있을지어다. 아멘.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 55:10-1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 1:18) “너희가 거듭으셨느니라썩어질 씨로 된셨느니라.”요라썩지 아니할 씨로 된셨느니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니라곧 이 말씀니니라.”(벧전 1:23,25) “갓으셨아니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롴고 자기의 뜻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 뜻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를 인하여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을 대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11-21)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4-17)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유 24,25)
오류에 대한 반박
총회는, 사람의 부패와 하나님께로의 회심에 대한 참된 정통 교리를 천명한 바, 다음과 같은 오류를 거부한다.
1. 오류: 적절하게 말하면, 원죄 그것만으로 온 인류를 정죄하고 현세적이며 영원한 형벌을 받기에 족하다고 말할 수 없다.
반박: 이는 사도가 다음과 같이 선포하는 말씀들과 상충된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다"(롬 5:16).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2. 오류: 선(善)과 거룩, 의(義)와 같은 영적인 은사들이나 선한 성품들이나 덕성들은, 인간이 처음 지음을 받았을 때에 인간의 의지에 속할 수도 없고, 그러므로 사람이 타락했을 때, 그의 의지로부터 떨어져나갈 수도 없다.
반박: 이 오류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4:24에서 묘사한 하나님의 형상과 정반대이다. 거기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형상을 의와 거룩으로 결부시키는 바, 이는 의심할 여지없이 의지에 속한 것이다.
3. 오류: 영적인 사망에 있어서 영적 은사들은 사람의 의지에서 분리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의지(意志)는 그 자체로는 결코 부패된 것이 아니요 다만 마음의 암매와 정욕의 무절제에 의해서 방해를 받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 장애물들이 제거된다면, 의지는 그 내재된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다. 의지 그 자체로서, 그 앞에 제시되어 있는 모든 종류의 선을, 원하면 선택하고, 원치 않으면 버릴 수 있다.
반박: 이 주장은 혁신적이지만 오류로서, 자유 의지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렘 17:9에서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기술한 것과 정반대이다. 또한 사도 바울도 엡 2:3에서 "우리도 다 그(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한다"고 기록한다.
4. 오류: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실제로나 전적으로 죄 가운데서 죽은 것이라거나, 영적인 선행을 할 모든 능력을 상실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의와 생명에 주리고 목말라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의 제사를 드릴 수 있다.
반박: 이런 것들은 성경에 나타난 명백한 증거들과 충돌된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엡 2:1). "허물로 죽은 우리를"(엡 2:5),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 8:21). 더 나아가, 오직 중생자와 복된 자로 부름 받은 자들만이 비참으로부터 건짐을 받고 생명을 얻은 후에 주림과 갈증을 느끼며, 상한 심령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시 51: 19)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5. 오류: 부패한 자연인(自然人)은 일반 은혜(알미니우스자들 용어로는 자연의 빛), 또는 타락 이후에도 여전히 그에게 남아있는 은사들을 아주 잘 사용할 수 있으므로, 그 은사들을 선용함으로써 점진적으로 더 큰 은사, 곧 복음이나 구원의 은혜 또는 구원 자체를 얻을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입장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계시할 준비를 친히 보이시는 바,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믿음과 회개를 위해 필요한 방도들을 아주 충분히 그리고 효과 있게 모두에게 베풀어주신다.
반박: 모든 세대의 경험 뿐만 아니라 성경도 역시 이런 주장이 참이 아니라고 증거한다.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아무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치 아니하셨나니 저희는 그 규례를 알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시 147:19-20)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행 14:16) "성신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행 16:6-7).
6. 오류: 사람이 참 회심을 하는 데에는, 그 어떤 새로운 성품들이나 능력들이나 은사들이 하나님에 의해 의지 속으로 주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처음으로 변개하여 신자라고 불리게 된, 이 믿음이란 하나님에 의하여 주입된 성품이나 은사가 아니라, 다만 인간의 행위일 뿐이다. 이 믿음에 도달하는 능력에 관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 믿음이란 은사라고 부를 수 없다.
반박: 이런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속에 믿음과 순종, 하나님 사랑에 대한 의식 등의 새로운 품성들을 주입한다고 선언하는 성경과 상충된다. 즉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렘 31:33).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사 44:3).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5). 또한 이런 주장은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렘 31:18)라고 외친 선지자의 입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교회의 일관된 관행과도 어긋난다.
7. 오류: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한 이 은혜란 다만 온화한 충고에 불과하다. 충고하는 이런 방식의 사역은 사람의 회심에 있어서의 가장 고상한 태도요, 사람의 본성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다. 유독 이러한 충고의 은혜가 자연인을 영적인 존재로 만들기에 충분치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도덕적 설득을 통하는 것 이외에는 의지와의 일치를 일으키지 않으신다. 사단이 현세적인 유익들만을 약속하는 반면, 하나님은 영원한 것을 약속하신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사역의 능력은 사단의 역사를 능가한다.
반박: 이것은 전적으로 펠라기우스파의 주장이요, 도덕적인 설득을 넘어선 전혀 별도의 것, 곧 사람의 회심에 있어서 훨씬 더 강력하고 신성한 성신의 사역 방식을 가르치는 성경 전체와 정반대 입장이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26).
8. 오류: 사람의 중생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의지를 강제적으로 틀림없이 믿음과 회심에로 굴복시키기 위해 그의 전능한 능력을 사용하시지 않는다. 비록 하나님께서 회개한 사람에게 사용하는 이 모든 은혜 사역들을 다 성취했다 할지라도, 또 하나님께서 그의 중생을 의도하고 그를 중생하도록 뜻하실지라도, 사람은 하나님과 성신에 저항할 수도 있고, 과연 종종 그렇게 저항하기도 해서, 자기의 중생을 철저하게 방해한다. 그러므로 중생 여부는 사람의 능력에 달려 있다.
반박: 이는 인간의 회심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모든 충족성을 부인하는 것이요, 전능한 하나님의 사역을 사람의 의지에 종속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다음과 같이 선언하는 사도들의 가르침과 정반대이다.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엡 1:19) "우리 하나님이…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살후 1:11)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벧후 1:3)
9. 오류: 은혜와 자유 의지는 함께 회심의 시작을 일으키는 부분적인 요소들이다. 이러한 요소들의 질서상, 은혜는 의지의 사역을 앞서지 않는다. 사람의 의지가 스스로 움직여서 이 회심을 결정할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결과적으로 회심으로 나아오도록 사람의 의지를 돕지 않으신다.
반박: 초대 교회는 오래 전 다음과 같은 사도의 말씀을 좇아서 이런 펠라기우스의 교리를 정죄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6).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고전 4:7).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다섯 번째 교리
성도의 견인
제1조 내주하는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중생자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 안으로 부름받고, 성신으로 새롭게 된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죄의 지배와 노예 상태로부터 확실히 자유롭게 하였으나, 이생에서는 죄된 육신과 죄의 몸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 8:34)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롬 6:17)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1-24)
제2조 매일 범하는 연약함의 죄에 대한 신자의 반응
그러므로 사람이 날마다 범하는 연약함의 죄는 준동하고 성도의 가장 선한 행위라도 오염되어 있다. 이러한 죄와 오염은 성도들로 하여금,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들을 겸비하게 하며,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게로 피하고, 더욱 더 간구하는 성신과 경건의 거룩한 연습을 통하여 자기 육신을 죽이고, 마침내 이 사망의 몸으로부터 건짐을 받아, 하늘에서 하나님의 어린 양과 함께 다스릴 때까지, 완전함에 이르기를 열망하고 분투해야 하는, 일관된 이유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딤전 4:7)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 3:12,14)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하더라.”(계 5:6,10)
제3조 회심자 곧 자기 소유를 보존하시는 하나님
이런 내재하는 죄의 잔재들 때문에 또한 세상과 사단의 유혹 때문에, 회심한 자들은, 만일 자기 자신들의 힘을 의지하면, 그 은혜 안에 서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자비롭게도 한번 그들에게 주신 그 은혜 안에서 그들을 견고케 하시고, 끝까지 그 은혜 안에서 그들을 능력있게 보존하신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20)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벧전 1:5)
제4조 심각한 죄로 타락하는 참 신자들의 위험성
하나님께서 참된 신자들을 은혜 안에 견고케 하시고 보존하시는 그 능력이 아주 커서 육신에 의해 압도당할 수 없다 할지라도, 그런데도 회심한 자들은 항상 하나님에 의해 인도를 받고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니라서, 어떤 특별한 행위들에서 자기 자신들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은혜의 인도로부터 벗어나서, 육신의 정욕에 의해 미혹을 받고 굴복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늘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 그들이 깨어 기도하지 않을 때, 육신과 세상과 사탄에 의해 심각하고 극악한 죄 속으로 빠질 수 있으며, 오히려 의로우신 하나님의 허용으로 가끔씩 실제로 이런 죄에 빠지기도 한다. 성경에 기술된, 다윗과 베드로와 그 외의 다른 성도들의 통탄할 타락은 바로 이런 사실을 증시한다.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9)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마 26:41)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6,17) 롬2장, 삼하11장, 마26장.
제5조 그런 심각한 죄의 결과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엄청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분노를 심각하게 촉발하고, 죽음의 죄책을 지고, 성신을 근심하게 만들고, 믿음의 실천을 중단하고, 그들의 양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고, 때로는 잠시나마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각마저 상실한다. 과연 그들이 신실한 회개를 통하여 바른 길로 돌이켜서 하나님의 부성어린 얼굴 빛을 다시 그들을 향해 비칠 때까지 그러하다. 롬2, 삼하12장,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시 32:3-5)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민 6:25)
제6조 자기 택자들의 상실을 허용치 않고 구원에 관여하시는 하나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은, 그의 변함없는 선택의 뜻에 따라서, 그들의 통탄스러운 타락의 와중에서도, 그의 성신을 자기 소유로부터 완전히 거둬들이시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너무 죄에 깊이 잠겨, 양자됨의 은혜와 칭의의 상태로부터 떨어지거나, 혹은 사망에 이르는 죄나 성신을 거역하는 죄를 범하여, 성신에 의해 전적으로 버림받아, 스스로 영원한 파멸에 빠지도록, 결코 허용하지 않으신다.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엡 1:11)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엡 2:4)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시 51:13)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5)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6-18)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1,32)
제7조 자기 택자들의 갱신과 회개를 이루시는 하나님
과연 무엇보다도, 그들의 타락시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썩지 아니하는 중생의 씨를 그들 안에 보존하시사, 그것이 썩지 않고, 내던져지지 않게 하신다. 더욱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성신을 통하여 확실하고 효과적으로 그들을 갱신하여 회개케 하신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자기들이 범한 죄에 대한 경건한 슬픔을 가지고 마음으로 탄식한다. 즉 그들은 통회하는 마음과 더불어 믿음으로 말미암아 중보자의 보혈로 죄사함을 구하고 얻는다. 다시금 그들은 화해하게 된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여 그의 자비와 신실하심을 찬양한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부터 계속해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더욱 부지런히 자기 자신들의 구원을 이루어간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시 32:5)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시 51:19)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제8조 삼위 하나님의 이런 보존의 은혜와 확실성
그렇게 그들이 믿음과 은혜에서 전적으로 떨어져 나가지 않고, 그들의 타락상에 머물러 결국 버림을 당하지 않은 것은, 그들 자신의 공로나 힘에 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한량없는 자비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들 자신의 입장에서 이런 상황은 여차하면 일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틀림없이 발생하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이런 일은 발생가능성이 없는 바, 그의 경륜이 변할 수 없고, 그의 약속이 실패될 수 없으며, 그의 뜻에 따른 부르심이 취소될 수 없고, 또한 그리스도의 공로와 그 도고의 기도와 보존하심이 무효화될 수 없으며, 성신의 인치심이 결코 좌절되거나 소실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시 33:11)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히 6:17)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0, 34)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롬 9:11)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2)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 1:13)
제9조 이런 보존에 대한 확신
신자들은 스스로 택자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이렇게 보존하심과 참 신자들의 믿음의 견인을 확신할 수 있다. 과연 그들은 자기 믿음의 분수에 따라서 확신하는 바, 그들은 지금 그리고 항상 하나님의 교회의 참되고 살아있는 지체로 자임하고, 죄사함과 영원한 생명의 소유를 확고하게 믿는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1-39)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 4:8, 18)
제10조 이런 확신의 근원
이 확신은 하나님의 말씀 그 이상으로 또는 그 이외의 별다른 사적인 계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위로를 위해 가장 풍성하게 계시하신 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만 생기는 것이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상속자임을 성신이 우리 영과 더불어 증거함으로, 결국 깨끗한 양심과 선행을 진지하고 거룩하게 추구함으로 생긴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의 택자들이 이 세상에서 최후의 승리를 얻는 것과 틀림없는 영원한 영광에 대한 견고한 위로를 갖지 못한다면, 그들은 모든 사람들 중의 가장 불쌍한 자가 되고 만다. “성신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6)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 3:1,2)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행 24:16)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9)
제11조 항상 감지할 수 없는 이 확신에 대한 의구심
반면에, 성경은, 신자들이 이생에서 육신의 각양각색의 의구심과 싸워야 하며, 또 가혹한 시험 하에 놓여있을 때는 이런 믿음의 충만한 확신과 견인의 확실성을 항상 느끼지 못한다고 증거한다. 그러나 모든 위로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시지 않고 다만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시며, 성신에 의해서 다시금 그들 그러나견인의 확실성이 회복되게 하신다. “찬송하리로다 그는끼지 못한다다.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고후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든 위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제12조 경건의 촉진제인 이 확신
그러나, 이런 견인의 확실성은, 참 신자를 교만과 자기만족 가운데 빠지게하기는 커녕, 오히려 겸손과 어린아이와 같은 공경심, 진실한 경건과 온갖 갈등 중에서의 인내, 열정적인 기도와 고난 중에서도 진리 고백의 견지,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의 일관된 기쁨을 가지게 한다. 더 나아가 이런 유익들을 상고하는 것은, 성경의 증거들과 성도들의 실례들로부터 현저하듯이, 신자들에게 감사와 선행을 진지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하도록 촉구하는 자극제가 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지 않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시 56:12-13)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 116:12)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딛 2:11-14)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제13조 소홀함을 야기하지 않는 이 확신
이렇게 갱신된 자기 확신은, 타락 이후 회복된 자들로 하여금 경건에 태만하거나 소홀하도록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에 주님이 예비하신 그 주님의 도를, 그들이 정성을 다해서 지키는데 훨씬 더 큰 관심을 쏟도록 한다. 그들이 이 도로 행함으로써 자기들의 견인의 확실성을 견지할 수 있도록 이 도를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부성어린 선하심을 오용함으로, 심령의 곤고함이 더 극심한 상황에 떨어진 결과, 그들의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얼굴빛이 그들로부터 떠나지 않도록 한다.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얼굴빛을 비추시는 것이 생명보다 더 달콤하며, 하나님의 그 얼굴을 돌리심이 죽음보다 더 쓰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시 63:3)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우리로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사 64:7)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와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 시체로 이 성에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을 인하여 나의 얼굴을 가리워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니라.”(렘 33:5)
제14조 견인에서의 하나님의 방도들 사용
복음의 선포로써 우리 안에서 시작된 이 은혜 사역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인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듣고, 읽고, 그에 대해 묵상하며, 또한 이 말씀으로 권면하고, 책망하며, 약속하고, 그리고 성례를 행함으로, 이 은혜 사역을 유지하고, 지속하시고, 완성하신다.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증거와 말씀과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뇨 하거든 너는 네 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옛적에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니 곧 여호와께서 우리의 목전에서 크고 두려운 이적과 기사를 애굽과 바로와 그 온 집에 베푸시고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우리에게 주어 들어가게 하시려고 우리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시고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로 오늘날과 같이 생활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그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신 6:20-25)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제15조 사탄의 증오와 교회의 사랑이라는 이 교리에 대한 상반된 반응
참 신자들과 성도의 견인과 그들의 확신에 관한 이 교리를,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안에서 그의 이름의 영광과 경건한 자들의 위로를 위하여 가장 풍부하게 계시하셨고, 그것을 신자들의 마음 속에 새겨주신 것이다. 그러나 이 교리는 육신에 속한 사람은 깨닫지 못하고, 사탄은 증오하며, 세상은 어리석다고 하고, 무지한 자와 위선자는 오용하며, 이단자는 공격하는 어떤 것이다. 다른 한편, 그리스도의 신부는 항상 가장 온화한 마음으로 이 교리를 사랑하며, 헤아릴 수 없는 가치가 있는 보배로서 확고부동하게 옹호한다. 과연 어떤 모사로도 어떤 능력으로도 대항하여 이길 수 없는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계속 그리하도록 해주실 것이다. 오직 성부, 성자, 성신께만 영원토록 존귀와 영광이 있을지어다. 아멘.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2)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시 33:10-11)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권력이 세세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벧전 5:10-11)
오류에 대한 반박
총회는, 성도의 견인에 대한 참된 정통 교리를 천명하고, 다음과 같은 오류를 반박하는 바이다.
1. 오류: 침 신자들의 견인은 선택의 열매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획득한 하나님의 선물도 아니고, 다만 새 언약의 조건으로서, 하나님의 소위 결정적인 선택과 칭의 이전에, 사람은 그의 자유의지를 통하여 그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반박: 성경은, 성도의 견인은 선택으로부터 비롯되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리고 그의 중보 덕분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증거한다.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롬 11:7).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 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 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2-35).
2. 오류: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신자들로 하여금 견인하기에 충분한 힘을 공급해 주시고, 만일 그가 자기 의무를 행하고자 한다면 그 안에서 이것도 견뎌내도록 준비하신다. 그러나 믿음의 견인에 필요하고 하나님께서 믿음을 견인하는데 사용하실 모든 것들이 다 갖춰져있다고 해도, 여전히 견인 여부는 사람의 의지의 결단에 항상 달려있다.
반박: 이런 생각은 철저히 펠라기우스주의적 발상이다. 이런 주장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자 하지만, 반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탈취하는 자들로 만드는 것이다. 이는 사람으로부터 모든 교만의 소지들을 다 제거하고, 이런 유익으로 인한 모든 찬송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돌리게 하는, 복음의 일관된 가르침과 상충된다. 이는 또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고전 1:8) 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사도의 증거와도 상반된다.
3. 오류: 참으로 중생한 신자들일지라도 완전히 그리고 확실히 칭의의 믿음과 은혜와 구원으로부터 타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종종 실제로 그렇게 타락한 자들이 있고 영원히 버림받기도 한다.
반박: 이 견해는 그리스도에 의한 칭의와 중생의 은혜와 지속적인 보존하심을 무효화하는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명백한 말씀과 상반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8-9). 또한 사도 요한의 다음의 말과도 모순되는 것이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8-29).
4. 오류: 참으로 중생한 신자들일지라도 사망에 이르는 죄나 성신을 거스르는 죄를 범할 수 있다.
반박: 사도 요한은 요한 일서 5:16-17에서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한 자들에 대하여 말하면서 그들을 위한 기도를 금지한 후에, 곧바로 이렇게 덧붙인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
5. 오류: 우리는 특별한 계시가 없이는 이생에서 미래의 견인에 대한 어떤 확실성도 가질 수 없다.
반박: 바로 이런 교리로써 이생에서 참 신자들이 가지는 확실한 위로를 빼앗아버리며, 교황 추종자들의 의심행위가 또다시 교회 안으로 도입되도록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확신을, 아주 특별하고 비상한 계시로부터가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에게 속한 독특한 표지들로부터, 그리고 하나님의 일관된 약속에서, 항상 도출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특별히 이렇게 선언한다.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9). 또 요한도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신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4)고 기록한다.
6. 오류: 성도의 견인이나 구원에 관한 확실성에 관한 교리는, 그 자체의 성격상, 거짓된 안정을 초래하고, 경건과 선한 품행과 기도와 여타의 거룩한 활동에 해로운 것이다. 역으로, 의심하도록 권장해야 한다.
반박: 이 오류는 하나님의 은혜의 현저한 능력과 우리 안에 내재하는 성신의 역사를 무시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다음과 같은 분명한 말씀으로 그 반대 입장을 가르치는, 사도 요한과도 상충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은 인줄을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2-3). 더욱이 이는 구약과 신약의 성도들의 실례에 의해서도 반박되는 바, 그들은 자기들의 견인과 구원을 확신했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으며 여타의 경건한 생활을 계속 영위하였던 것이다.
7. 오류: 잠시 동안 믿은 자들의 믿음은 칭의와 구원의 믿음과 별로 다르지 않고, 다만 그 기간의 차이뿐이다.
반박: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마태복음 13:20-23과 누가복음 8:13-15에서, 잠시 동안 믿은 사람과 참 신자와의 차이를, 이 기간의 차이 말고, 세 가지 면으로 분명히 제시하신다. 즉 전자는 돌 위에 떨어진 씨앗이며 후자는 좋은 땅 혹은 좋은 마음 밭에 떨어진 씨앗이고, 또한 전자(前者)는 뿌리가 없으나 후자(後者)는 견고한 뿌리가 있으며, 그리고 전자는 열매가 없으나 후자는 지속적으로 확고부동하여 엄청나게 많은 결실을 맺는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8. 오류: 첫 번째 중생함을 상실한 사람이, 또 다시 중생한다든지 또는 몇 번씩 다시 난다는 말은 불합리하지 않다.
반박: 이러한 주장은, 우리가 하나님의 썩지 아니할 씨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사도 베드로의 증언과 상반된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9. 오류: 그리스도께서는 신자들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고 지속되도록 그 어디에서도 기도하신 적이 없다.
반박: 이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내가 너를(베드로)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눅 22:32)라는 말씀과 상충된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뿐만 아니라 그의 말씀을 통하여 믿고자 하는 모든 자들을 위하여도 기도하셨다고 선언하는, 사도 요한의 말씀과도 어긋나는 것이다.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나이다…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요 17:11,15,20).
결론
잘못된 비난에 대한 반박
돌트 신경은 네덜란드 교회에서 논쟁했던 다섯 조항에 관한 정통 교리를, 한동안 교회를 혼란케 했던 오류들에 대한 반박을 겸해서, 간단명료하게 그리고 올바르게 천명한 것이다. 총회는 이런 해명과 반박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인용한 것이며 개혁교회의 신앙고백과 일치한다고 판단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이 돌트 신경에서, 일부 사람들이 대중을 현혹하고자 매우 부적절하게 그리고 모든 진리와 공평과 사랑을 거스려 처신하는, 다음과 같은 소위가 명백히 드러난다.
예정과 그 관련 주제들에 관한 개혁교회 교리는, 그 자체의 특성과 경향상, 사람들의 마음을 모든 경건과 종교를 외면하게 한다.
그 교리는 마귀의 사주를 받은 육신의 마취제요, 사탄이 만인을 잡으려고 잠복하여, 상당수에게 상처를 입혀서, 많은 사람들에게 절망과 거짓 안정의 화살로 치명타를 가하는, 사탄의 본거지이다.
그 교리는,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요, 불의한 폭군과 위선자로 만든다. 즉 스토아학파, 마니교, 도덕폐기론 및 마호멧과 다를 바 없다.
이 교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지 상관없이, 택자들의 구원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고 믿게 하고, 그래서 극악한 범죄들을 편하게 자행하도록 함으로, 죄악된 몰염치로 유도하는 한편, 유기된 자들이 아무리 성인들의 모든 선행을 실행하더라도, 그들의 구원에 최소한의 보탬도 되지를 못한다고 가르친다.
이와 같은 교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죄를 지어도 개의치 않고, 오직 자기의 임의적인 의지에 의해서, 영원한 저주를 내리기 위해 세계의 가장 위대한 부분을 예정하고 창조하셨다고 가르친다.
선택이야말로 믿음과 선행의 근거요 원인이라는 동일한 논리 방식으로, 유기는 불신과 불경건의 원인이다.
신자들의 순진한 많은 자녀들을 그들의 어머니 품으로부터 나꿔채서 포악하게 지옥으로 던져짐으로, 그리스도의 보혈이나 그들의 세례나 세례시의 교회의 기도 등이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개혁 교회들이 고백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진정으로 혐오하기도 하는 이런 종류의 가르침은 훨씬 더 많다.
그러므로, 이 돌트 총회는,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경건하게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개혁교회의 신앙을 처처에서 수집된 비방에 의해서 판단하지 않도록, 탄원하는 바이다. 또한 고대나 근대의 일부 몇몇 교사들이 종종 불신앙으로 본문을 본래의 의미와는 정반대로 인용하거나 설명한 사사로운 글들에 의해서 판단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개혁 교회들 자체의 공적(公的)인 신앙고백과 총회의 전체 회원들의 만장일치로 확정한 바, 정통 교리로 지금 천명한 것으로만 판단해야 한다.
더 나아가, 총회는, 그렇게 많은 개혁 교회들과 그들의 신앙고백을 거스려 거짓 증거를 하고, 연약한 자의 양심을 괴롭히고, 신자들의 공동체에 의심거리를 양산하는 자들에게, 얼마나 가혹한 하나님의 심판이 대기하고 있는지를 염두에 두도록 비방자들 자신들에게 경고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본 총회는 모든 동료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자들에게, 이 교리를 학교나 교회에서 다룰 경우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존중하는 태도로 스스로 잘 처신하도록 권고하는 바이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경우는 물론, 가르치는 경우에,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과 거룩한 생활과 고난받는 영혼들의 위로를 구해야 한다. 이 교리에 관한 사고와 언행은 믿음의 분수(사도적 전통)에 따라 성경과 일치해야 한다. 또한 성경의 참 의미로 규정된 한계를 넘어서서, 후안무치한 궤변론자들이 개혁 교회의 교리에 대해 비소하거나 비방할 수 있는 호기를 제공하는, 모든 표현들을 자제해야 한다.
성부의 오른편에 좌정하시사, 사람들에게 은사들을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시여, 우리를 진리로 거룩케 하시며, 곁길로 간 자들을 진리로 인도하시고, 건전한 교리를 비방하는 자들을 침묵케 하시며, 그의 신실한 말씀사역자들에게 지혜와 분별의 영으로 채워주셔서, 그들의 모든 말이 하나님의 영광과 그들에게 듣는 자들을 세우는 일에 이바지하게 하시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