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이 없어도 글을 읽어 줄 수 있는 아버지 [퍼온 글]

by 소망인 posted Nov 2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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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기사를 읽으면서
이 분들의 성공담보다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삶의 자세에 감동을 받아서
글을 싣습니다. (글의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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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우(姜永祐) 박사는 65번째 생일을 맞은 지난 1월 16일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이날은 그가 7년 동안 재직한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 자리에서 물러나는 날이었다. 그는 시각장애인이다. 또 그날, 어둠 속에서 그가 점자로 읽어주는 동화를 들으며 성장한 아들이 화려하게 세상에 등장한 날이기도 했다.

오바마 정권의 입법 특별보좌관에 임명된 차남 진영(眞永)씨가 백악관 무대에 등장하는 날이다. 한국계 부자가 공화당과 민주당 정부에서 연속으로 백악관 고위직에 오르는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강 박사 내외와 두 아들 부부, 손자들까지 3대가 모인 이날 밤의 생일 파티는 워싱턴 주재 외신 특파원들이 몰려와 졸지에 기자회견장으로 변했다. 시각장애인인 강 박사는 당시의 감격을 “내 생애 가장 ‘빛나는’ 밤이었다"고 회고했다. 월간조선 12월호는 시각장애인으로 백악관 정책차관보를 지낸 강영우 박사와 그의 뒤를 이어 미국의 젊은 리더로 성장한 두 아들의 성공 스토리를 취재했다.

◆맹인 소년 가장,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에 발탁되다

강 박사는 가난과 장애의 벽을 딛고 미국 주류사회에서 성공한 한인 1세대다. 1944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었고, 덕수중 1학년 때 축구공에 맞아 두 눈이 실명됐다.

뒤이어 어머니와 누나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소년 가장이 됐다. 그를 구원한 것은 서울맹학교 1학년 때 만난 부인 석은옥(石銀玉)씨였다. 당시 숙명여대에 재학 중이던 석씨는 걸스카우트 단원으로 맹학교를 방문했다가 평생 반려자가 됐다.

그는 석씨의 헌신적인 사랑과 내조로 1972년 연세대 교육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했다. 이 해에 국제로터리재단의 장학금을 받고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3년8개월 만에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노스이스턴 일리노이대 교수와 인디애나주정부 특수교육국장으로 근무하는 한편 유엔 세계장애위원회 부의장으로 활동했다. 2001년에는 부시 정권 출범과 함께 미국 백악관 국가 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에 발탁돼 5400만 미국 장애인들의 인권과 복지 향상을 위해 공헌했다.

강 박사가 백악관에 입성한 것은 강 박사의 삶에 감동 받은 아버지 부시와의 인연이 토대가 됐다. 아버지 부시는 강 박사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저서 ‘빛은 내 가슴에'에 감동해 편지를 보내왔다. 그는 이 책을 드라마로 만든 ’눈 먼 새의 노래‘에도 직접 출연해 강 박사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다.  

강 박사는  백악관에서 나온 이후 더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현재 국제교육재활교류재단 회장과 유엔 세계장애인위원회 부위원장, 루스벨트재단 고문 등으로 활동하며 세계 각지에서 들어오는 초청강연을 소화하고 있다.


▲ 재미 한국인 강영우 박사와 아들들.


◆안과전문의가 된 장남, 최연소 백악관 특별보좌관이 된 차남

이런 강 박사에게는 미국의 젊은 리더로 성장한 두 아들이 있다. 장남 진석(眞石)씨는 명문 필립스아카데미(엑서터)와 하버드의대를 졸업한 뒤 조지타운대 교수 겸 안과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현지 언론이 꼽은 2008년도 최고 의사에 선정됐으며 내년에는 최연소 워싱턴 수도권 안과 학회장에 취임할 예정이다.

차남 진영씨는 필립스아카데미(앤도버)와 시카고대를 졸업한 뒤 듀크대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와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후 7년 동안 연방 상원 본회의장 수석 법률 보좌관으로 일했고 3년 연속 미 의회 신문이 뽑은 최우수 보좌관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가장 어린 나이에 백악관 특별보좌관에 임명됐다.

강 박사는 두 아들의 성공비결을 묻자 ”어렸을 때부터 인생의 비전과 목표를 세우도록 했고 긍정적인 태도를 갖도록 애썼다"고 했다.

그는 장남 진석씨가 “아빠는 다른 아빠들처럼 야구도 못하고 자전거 타는 법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며 불평을 털어 놓자 ”의학이 계속 발전하고 있으니까 네가 어른이 되면 고칠 수 있을 거야. 네가 의사가 돼서 한 번 고쳐볼래?“라고 말했다. 또 ”눈뜬 엄마는 밤에 불을 끄고 동화책을 못 읽어 주지만 아빠는 읽어 줄 수 있잖아"라고 말했다.

아빠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안 진석씨는 고개를 끄덕였고 결국 하버드 의대에 진학하게 됐다. 진석씨가 하버드대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아버지의 이야기를 쓴 에세이의 영향이 컸다. ’내 생애 가장 의미 있었던 사건이나 경험을 서술하라'는 문제에 진석씨는 어린 시절 동화책을 읽어 주던 아버지 이야기를 썼다. 어둠 속에서도 글을 읽을 수 있는 아버지의 남다른 능력 덕분에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었고,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인생의 진리를 배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에세이는 하버드대 교수들을 감동시켰다.

차남 진영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쓴 자서전을 계기로 자신의 비전과 목표를 정했다. 바로 동양계 최초의 연방 대법관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이 로드맵에 따라 시카고대에 진학했다. 이 학교에서 지역사회 봉사센터를 만들어 활동했다. 이 센터의 지도교수가 바로 미셸 오바마였다. 이 활동으로 그는 클린턴 정부로부터 차세대 지도자상을 받았다. 이후 듀크대 로스쿨로 진학한 진영씨는 연봉 3만5000달러의 로펌을 마다하고 장학금 2000달러를 받고 상원의원 사무실에서 일했다. 

진영씨는 백악관에 입성한 후 쓴 ‘나의 가족, 나의 영웅'이란 글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와 즐겨했다는 ’거스름돈 만들기 놀이‘를 소개했다. 강 박사가 “87센트의 거스름 돈은?”이라고 물으면 진영씨가 “25센트짜리 3개, 10센트짜리 1개, 1센트짜리 2개"라고 답하는 식이었다. 진영씨는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어떤 문제에도 꼭 한 가지 답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길이 막혔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또 자신이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늘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주시고 이웃을 향한 아름다운 마음으로 헌신과 열정의 본이 되어 주신 어머니 때문"이라고 썼다.

강 박사 부부와 두 아들 내외는 모두 워싱턴에 살고 있다. 바쁘다보니 한 달에 겨우 1번씩 가족 모임을 갖고 있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커 늘 함께 있는 거나 다름이 없다고 한다. 강 박사는 “나의 실명이 집안 식구들에게 긍정적인 도구와 자산으로 쓰였으니 하나님께 감사 드릴 일"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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