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13 07:16

기쁜 회개?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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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회개?  어떻게?

기쁜 회개?  제목이 좀 이상하지 않나요?  회개라는 말 자체가 부담되고, 고통스러운 단어인데, 그 회개가 기쁘다니…  그러나 진실한 회개는 죄를 깨끗이 씻는 것이기에 기쁜 것입니다.  샤워하면서 콧노래를 부르듯이, 영혼의 더러움을 씻는 것은 참된 기쁨을 우리에게 줍니다.

저는 요즈음 느헤미야서를 매일 새벽마다 교회에서 강론하고, 매일 묵상하면서 느헤미야가 이룩한 성벽 건축의 진정한 의미를 한번 더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벽 건축의 오늘날의 의미는 하나님의 성전이라 할 수 있는 성도의 삶, 성도의 마음에 진정한 하나님 나라가 건설되는 것입니다.  특히 거룩한 하나님 나라가 건설되기 위해서는 진정한, 참된 회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오늘 매일 성경 본문(느헤미야서 9장)을 보면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묵상을 중심으로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참된 회개를 행하게 되었을 때 찬양이 입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느 9:5).  참된 회개는 이스라엘의 달력으로 7월 1일부터 시작된 부흥 사경회가 나팔절, 초막절을 거쳐 무려 22일동안 진행되었는데도, 하루 지난 24일에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회개를 자복하는 모습으로 나아가게 됩니다(느 9:1).  참된 회개는 자발적으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는 간절하게 진행됩니다.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쓰게 됩니다(느 9:1).  마음의 회개가 있을 때, 금식을 결정하게 됩니다.  금식은 억지로, 부담을 갖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보았을 때 하게 되는 영적 자세입니다.  그렇게 행하게 되는 금식은 주께서 기뻐하는 금식, 기쁜 회개가 됩니다.

참된 회개는 삶의 변화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사람과 절교했습니다(느 9:2).  이는 죄악된 문화와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참된 회개는 삭개오처럼 물질을 숭배하는 자가 물질을 제대로 사용하는 삶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참된 회개는 열조의 허물을 자복하는 넓은 시각, 포용하는 시각이 됩니다(느 9:2).  회개의 기쁨과 능력을 맛보기에, 자신만의 회개를 넘어서 가족, 공동체, 조상들의 죄악까지 같이 끌어 안고 나아가게 됩니다.  인간의 이기적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에 의한 참 사랑에 굴복한 자는 ‘올리 사랑’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참된 회개는 기쁜 회개일 수 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느헤미야, 에스라에 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참된 회개, 기쁜 회개가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 하나, 말씀 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더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라 합니다.  거울을 보면 자신의 실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말씀을 보면 자신의 영혼을 보게 됩니다.  죄로 더러워진 영혼을 보게 되는 자 만이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합니다(에스라 7:10).  에스라 한 사람의 결단이 전 이스라엘을 회개하는 공동체로 만드는 출발이 됩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완성 되었을 때 에스라는 백성들을 향하여 계속 말씀을 가르칩니다.  백성들은 말씀을 듣는 순간 웁니다(느 8:9).  말씀이 주는 능력입니다.  나팔절과 초막절을 지난 뒤에도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말씀 앞으로 나옵니다(느 9:1).  이 또한 말씀이 주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에스라를 통해 이스라엘 전체 역사를 다시 돌아 보게 됩니다.  그것이 느헤미야서 9:6-38까지의 말씀입니다.  이 부분은 시편처럼 성경에서 가장 아름답게 하나님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역사’(History 는 His Story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를 담은 책입닏다.  성경을 읽을 때, 역사를 대할 때 우리는 바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느헤미야서 9장 6절부터 38절까지는 구구 절절이 하나님의 위대하심, 다양하심, 풍성하심에 대한 표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도 같으며, 신앙고백과도 같으며, 간증과도 같으며, 선포와도 같습니다.  에스라가 광야에서 이끌어 주신 하나님(느 9:6-22), 가나안에서 이끌어 주신 하나님(느 9;23-31), 바벨론 포로 시기에도 이끌어 주신 하나님(느 9:32-38) 등을 상세하게 하나님에 대해서 선포했을 때, 그 내용을 이미 선조와 함께 가슴으로 체험한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된 자신들의 더러움을 보게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내와 사랑과 자비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되었을 때 갖게 된 감사와 감격!  이러한 모습들이 벅찬 가슴으로 대하지 않으면 안되는 장면들입니다. 

제가 가슴 벅차다고 하는 이유는 느헤미야 9장 6절부터 전개되는 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단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6), 보존하시는 하나님(6), 경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6), 선택하시는 하나님(7), 인도하시는 하나님(7), 이름을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7),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보시는 하나님(8), 언약을 세워 주시는 하나님(8), 의로우신 하나님(8)…. 휴!  제가 짧은 세 절을 살펴 보았는데도 그 가운데 기록된 하나님에 대한 선포와 고백은 무려 9개나 됩니다.  이러한 고백들이 다 아무런 생각없이, 무감각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온 마음으로, 온 가슴으로, 신앙으로 한 고백들입니다.  그러니 6절부터 38절까지 무려 33절을 다 살펴 보려고 하니 그 얼마나 광대하신 하나님을 깨닫게 되겠습니까? 

이번 주말에 이 구절들을 시간을 내서 하나 하나 깊게 묵상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광대하신 하나님을 보는 순간!  무엇을, 누구를 보게 될까요?  바로 나 자신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볼 때, 내가 어떤 존재인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앞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가 저절로 나왔고, 금식이 저절로 나왔고, 그 결과 깨끗이 씻음과 기쁨의 찬양을 올려 드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참된 회개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기쁜 회개가 일어납니다.

성도는 이러한 감격을 가슴에 안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나누고,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용서받은 용서자(forgiven forgiver)가 기쁜 회개를 통과한
성도의 귀한 모습입니다.

이번 주말에 느헤미야서 9장을 깊게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 배헌석 / pastorbae@gmail.com / www.aahope.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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