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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2 12:39
[새벽묵상-누가복음 11] "시험을 이기는 몇가지 방법들..." (눅 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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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이기는 몇가지 방법들...]
(조금은 긴 글입니다... ㅎㅎ)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4:13)
식상한 얘기일 수 있지만, 오늘은 ‘시험을 이기는 몇가지 방법’등과 같은 형식으로 묵상내용을 정리하기를 원합니다. 신앙인이 삶의 현장에서 거룩과 능력의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고, 많이 넘어지고, 크게 넘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도 늘 부족함의 모습이 있음을 솔직하게 함께 고백하며…)
어떻게 하면 삶의 현장에서 시험이 와도 넘어지지 않고 이기고 나아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를 성경을 통해 고민하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우리가 그동안 가져 왔던 구원관에 대해서 조금은 생각을 진지하게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칭의와 성화’는 개혁교리에서 구분은 되지만, 분리되는 영역은 결코 아닙니다. 칭의라는 구원의 시점은 즉시, 성화라는 구원의 진행형의 모습을 동시에 갖고 시작하게 되는 것이 ‘칭의와 성화’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실제 일반 성도님들의 관점은 구원을 ‘칭의-성화-영화’라는 도식적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기에 구원을 하나님 자녀에로의 ‘신분의 회복’,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을 확복한 천국 시민이라는 ‘지위 확보’ 차원으로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칭의’라는 구원의 단계 다음에 ‘성화’라는 ‘거룩하게 되어가는 단계’를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칭의와 성화’를 분리의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한 예가 구원을 가장 잘 대표하고, 설명하는 유월절이 무교절과 동시에 시작하는 것을 구약에서 보게 됩니다. 유월절은 하루 절기이지만, 무교절은 유월절과 동시에 시작하면서 7일동안 계속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출 12장). 유월절은 구원을 의미하지만, 누룩을 제거한, 즉 거룩한 삶 또한 구원과 동시에 계속 되어야 함을 ‘무교절’을 통해 이해하게 됩니다.
구원은 분명히 신분과 지위의 획득 혹은 변화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새출발을 하는 실제 새롭고,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얘기한 것입니다.
그러나 ‘칭의’가 곧’구원’이라고만 생각하게 되면, ‘구원’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고, 그렇게 여겨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성화’ 혹은 ‘거룩한 삶의 능력적 모습’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여겨지고, 그에 따라 삶의 변화된 모습에 대해서 약하게 보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점에서 김세윤 교수님께서 많이 강조한 부분이 이러한 칭의와 성화의 관계입니다. 설사 정통개혁 주의 신학에서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고, 바르게 가르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성도님들의 의식 속에는 그렇게 칭의와 성화를 구분이 아닌, 분리의 단계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결과 한국 교회 신앙인들이 ‘말’에는 강한데, ‘삶’에는 약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신앙인은 삶의 현재적 삶 속에서 ‘거룩과 성결’의 삶을 유지하며, 능력있게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가야 합니다. 즉, 시험이 와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기는 삶의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서론이 길어졌지만, 이런 관점에서 오늘 본문을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의 관점을 보며, 어떻게 시험을 이길 수 있는가를 성도의 입장에서 정리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오신 이유는 인간이 받는 유혹과 고난도 함께 받으시는 의미도 있지만, 또한 유혹과 고난을 이기시는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것은 성도 또한 유혹과 고난을 이길 수 있음을 보여 주심이라 믿습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는 분’(히 2:18),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기에 성도는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기본적 자세를 갖고 유혹 혹은 고난, 혹은 시험에 당당하게 맞서야 합니다.
조금은 식상한(?) 방법이지만, 시험을 이기는 몇가지 방법 혹은 원리들을 본문을 통해서 함께 정리하기를 원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몇가지 방법’이 교과서적인 제시로만 나눠 질 때 크게 능력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묵상하고, 자신이 스스로의 삶의 현장에 적용하는 ‘자기 삶에 스며드는 말씀 생활’이 될 때 비로소 능력있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생각하시며, 스스로 더 묵상과 적용을 해야 함을 말씀 드립니다.
첫째는, ‘예방책’이 최고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기 전에(2절), 먼저 성령으로 충만하게 인도함 받으시고, 공생애 사역 출발을 위한 세례식과 위임식을 먼저 받으셨으며, 전 인류가 구원의 대상임을 확인하는 의미의 족보를 통해서도 자신의 삶의 목표를 정확하게 하셨습니다.
마귀의 시험이 먼저가 아니었습니다. 시험 전에 예수님은 충분한 준비와 예방책을 먼저 가지셨던 것입니다.
이는 매우 영적으로 중요한 원리입니다. 일주일의 첫 날은 월요일이 아닙니다. 주일입니다. 주일 예배와 주일 삶에 참된 영적 풍성함을 힘입을때 일주일 내내 그 풍성함이 실은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유혹과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예방책이 됩니다.
하루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벽 혹은 하루의 첫시간을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따라서 하루 영적 전쟁의 승패는 실은 좌우됩니다.
예방책(preventative approach)이 문제가 터졌을 때 해결하려는 노력(problem solving)에 드는 에너지보다 75퍼센트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들을 경영학에서는 많이 얘기합니다. 영적 영역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영적 삶에서도 첫 단추를 잘 꿸때,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둘째는, ‘그럴듯한 명분’에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마귀는 40일 금식하신 예수님을 향하여 ‘돌을 떡덩이로 만들어 먹으라’ 합니다. 40일을 금식하셨고, 그 기간을 마치셨기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돌을 떡덩이로 만들어 먹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지난 토요일 평생 공부반을 통하여 성기혁 목사님께서 이 표현, 즉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에서 ‘이어든’ 이라는 헬라어 표현이 if 라는 의미도 되고, since 라는 의미도 되는데, 여기서는 since의 의미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즉, 마귀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큰 능력을 갖고 있는데 돌을 떡덩이로 만들어 먹는다 한들 아무 문제가 없지 않느냐’라고 한 것입니다.
정말로 ‘그럴듯한 명분’입니다. 마귀는 이러한 그럴듯한 명분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넘어지게 합니다. ‘너가 그동안 사역하느라 고생 많이 했으니까 이제는 조금 쉬어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지 않는가?’라고 유혹합니다. 물론, 육체적 정신적 쉼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명분속에는 나의 사역의 본질까지 넘어가게 하는 그런 유혹이 담겨져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역자들이 사역 과정 중에는 고난도 이기고, 끝까지 최선, 충성 다하지만, 막상 하나의 사역을 마쳤을 때, 사역의 본질적 자세까지 무너 뜨리는 그런 넘어짐의 모습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그럴듯한 명분’에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본질적인 명분’에 자신의 정체성을 늘 갖고 계셨고, 확인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님은 당장 광야의 모든 돌을 떡으로 만들어 드실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통한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자신의 본질적 명분을 잊지 않으심으로 마귀의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신앙인의 본질적 명분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소명’입니다. 신앙인이 갖는 소명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본질적 대의 명분입니다. 소명은 계산적인 것이 아닙니다. 목숨을 잃을 지언정 바꿀 수 없는 것이 소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본질적 소명을 이해한 제자들은 모두 순교적 삶을 살았습니다.
셋째는, 예배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두번째 시험을 향하여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셨습니다(8).
이 말 한마디에 마귀는 아무 말도 못합니다. 예배는 신앙인의 본질이고, 삶의 목적입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 43:7)
사람의 본질인 예배자의 삶을 살 때, 삶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입니다. 목적이 달성되면 삶의 의미가 충만합니다. 만족합니다. 아쉬운 것이 없습니다. 참된 풍성함이 있습니다. 그럴 때 유혹이 더 이상 유혹이 아닙니다. 유혹은 내가 아쉽고, 빈약하고, 뭔가 부족할 때 생기는 내 내면의 변화입니다.
술 중독자는 술만 보면 마시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술중독가 우유로 자신의 배가 가득 채워 졌을 때, 술 마시고 싶은 충동이 사라진다고 합니다(물론 근본적인 삶의 만족으로 인한 채움이 있어야 되겠지요).
신앙인에게 유일한 만족은 어거스틴의 고백처럼 ‘자신 속에 하나님으로 채워지기 전까지는 참된 만족이 없는’것입니다. 삶의 모든 순간을 예배자로 살기를 원합니다. 세상은 달인을 찾고 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달인의 경지는 어떤 것일까요? 저는 ‘삶의 매 순간을 하나님을 기억하고 경배하는 삶의 예배자’가 되는 것이 신앙의 달인이라 생각합니다. 물 한방울, 빗방울 소리 한가락, 떨어지는 낙엽, 높고 푸른 하늘, 소리없이 떨어지는 눈 한 송이, 고통의 깊은 자락 자락, 신음 소리 등 등 삶의 모든 상황을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되면, 그 상황 속에서 ‘예배자’가 됩니다.
그러면 마귀가 들어올 틈이 없게 됩니다.
…
오늘의 본문을 보면 잠시 살펴본 세가지 보다 더 많은 ‘시험을 이기는 전략과 방법’이 등장합니다. 그러한 부분들은 우리 각자의 몫으로,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묵상하고, 적용하는 것을 통해서 첨가, 발전 시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마귀가.. 얼마 동안 떠나니라…’(13).
왜냐하면 시험은 계속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새벽 묵상] 눅 4:1-13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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