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225.142) 조회 수 730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어느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동해안의 외로운 섬 울릉도에서 태어났습니다.

거기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경찰관이신 아버지, 평범한 가정주부이신 어머니,

그리고 저보다 3살 많은 형과 생활했습니다.

아버지는 교회에 나가지 않으셨고, 어머니와 저희 형제는 교회는 매주 나갔지만 깊은 거듭남의

체험이 없고,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어린시절부터, 식구들과 화목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부모님께서 원하시던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하신 한과 경제적 어려움들이

가정에 많이 드리워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히, 어린시절 공부를 곧잘 하셨던 어머니께서 가난으로 꺽이신 학업의 꿈이

당신의 마음에 깊은 상처와 한으로 남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어린시절을 되돌아 보면 좋았던 기억보다

부모님께서 형님에 대한 과다한 기대를 가지시고

형님을 항상 야단치시는 험악한 분위기를 많이 기억합니다.

어린시절 이러한 상황을 뒤에서 지켜본 저의 마음에는 어느 샌가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위해서 내가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에서 입학 후부터 내성적이지만, 성실하게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었습니다.

이런 생활이 지속되었고, 저희 가족은 5학년 때 대구로 이사오게 되었습니다.

시골에서 도시로 오게 되어 경제적인 압박이 가중되었고, 아버지는 경제적 돌파구를 마련하시려고,

경찰에서 가장 힘든 자리인 고속도록 순찰대를 지원하셨습니다.

형과 저는 중고등학생이라 잘 몰랐지만,

밤샘근무를 하시고, 고속도로 상에서 차를 세우시고 주무시는 혹독한 생활을 수개월 간

계속 하셨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것을 알고 저의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습니다.

그런데 제가 중3이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쓰러지셨습니다.

과로로 인하여 간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했습니다.

그나마 어머니께서 저희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셔서, 저희를 병원에 오지말라 하셨는데,

아버지께서 입원하신 몇달 후, 어머니께서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뵈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입원실에 들어갔을 때, 아버지께서는 이미 저를 인식할 수 있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아버지의 배와 온몸이 부어있었고, 이미 거의 의식을 잃은 상태였습니다.ㅜㅜ

그 날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서는 형과 저를 앉혀놓으시고 장례를 준비하자고 하셨습니다.

어린 형과 저는 어머니의 그 말에 그냥 말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다니던 교회에서 목사님과 권사님, 집사님들이 찾아오셔서

간절한 기도와 많은 섬김의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몇 일 뒤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간 수치가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 갑자기 회복

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일은 좀처럼 드문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긍휼히 여기셔서 아버지를 기적적으로 살려주셨던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조금씩 회복되시고, 아버지로 인한 가정과 제 마음에 드리워진 어두움이 조금씩 옅어져 갈 즈음 저는 어느샌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집에서는 교회에서 주신 부흥회 찬양 테입들이 계속 흘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온 식구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완전한 회심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마음이 없는 채로, 저는 다시 과거의 저의 인간적 열심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고 2 어느날 이번에는 어머니께서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당시 군 복무 중이던 형이 긴급휴가를 나와 어머니를 들춰업고 응급실로 갔습니다.

어머니의 다리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깊은 염증이 생기셔서 어머니는 수개월을 병원에서 고통 가운데 보내셨습니다.

간병할 사람이 없어서 제가 어머니의 옆에 있으면서

잘 걸으시지도 못하셨던 어머니의 병 수발을 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토록 열심히 하고자 했던 학업에는 시간을 거의 보내지 못하였고,

결국 원하던 서울 소재의 대학이 아닌 집 근처의 대학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의 적성을 고려하여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지원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행정고시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도 열심히 경제적으로 마음적으로 늘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나름 열심히 하여

장학금을 받으면서 생활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린시절부터 늘 있던 마음 속의 이해할 수 없고 채워지지 않는 처절한 공허함이 끊임없이

밀려왔고, 이것이 저를 채우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였습니다.

하루 15시간에 달하는 시간을 악착같이 채우며 공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할 수 있는 내에서 정말 최선을 다 했지만 2차시험에서 번번히 실패하였습니다.

어느 샌가 제 능력의 한계라는 선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마음 속이 힘들고 너무나 답답하여 실제로 호흡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저의 마음에 깊은 캄캄함이 몰려왔습니다.

큰 세상에서 혼자 어두운 골방에 고립된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태생부터 울릉도라는 시골이었고,

나는 최선을 다해도 무엇을 해도 실패 밖에 할 수 없다는 현실을

힘겹지만, 너무나 힘겹지만...

직면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의지했던 제 자아라는 산이 한 순간에 다 허물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 비로소, 아버지 어머니도 이제는 이러한 저를 위로할 수 없고

저의 길을 인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일을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서 그냥 보냈습니다.

아무것도 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사람을 만나서 어떤 것을 할 자신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제가 23세이던 2000넌 어느 날, 당시 군대 졸업 후 복학을 했던

형이 IVF라는 기독동아리 활동을 했고, 형이 갖고 있던 찬양 테입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당신에게 허락된 모든 일들을 이루기까지 주님은 당신을 놓지 않으시네~

라는 가사가 제 마음에 번쩍이며 다가왔습니다.

그 일 후, 형이 방학이라 경기도에서 일주일 동안 여름수련회가 있다고 하여,

소심한 저였지만 저도 가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저의 마음을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답이 하나님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야말로 물로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집회에 갔습니다.

저녁 기도회 시간이 되었습니다.

찬양리더분이 찬양과 기도를 인도했습니다.

모인 사람들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기도를 잘 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의 마음 깊은 곳의 고백만 수 시간을 계속 반복했습니다.

하나님이 없이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 저의 노력으로 최선을 다 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호흡하기도 힘이 듭니다.

수시간을 바닥에 납작 엎드려 계속 이 기도만 반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저의 마음에 갑자기 뭉클함이 임했고,

제가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깊고 깊은 통곡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제 안에서 터져나오는 깊은 울음에 저의 입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때 눈물 콧물이 연결되어 실제로 뒤범벅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제가 앉은 바닥이 마치 작은 호수를 이루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주님께서 저를 이렇게 많이 불렀는데, 주님 제가 이제야 왔습니다.”

라는 한 번도 생각지 못한 제 입의 낯선 고백이 저의 귀로 들려왔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성령님께서 저의 영 가운데 들어오셔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이었습니다.

그 고백을 한 순간 눈물이 더 깊어졌고, 제 마음이 완전히 무너짐을 깊이 체험하며 수 시간을 울었습니다.

그러던 중 2시간 이상의 하나님과의 깊은 임재에 들어갔습니다.

그 때,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던 제 뒤로 반투명한 흰 옷을 입은 분이 저에게 다가오셔서 뒤에서 무릎을 꿇으시고 제 어깨에 손을 대시며 울고 있는 저에게 부드러운 마음의 소리로 그래~ 그래~그래~하시며, 위로해 주셨습니다.

별 말씀을 하지 않으셨지만, 그 분이 저의 마음을 다 알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짧은 말씀이 저의 마음을 완전히 만지셨습니다.

저의 마음 속에 이전에는 알지도 듣지도 못했던 깊은 하늘의 평강이 임했고,

제 안의 모든 상처와 고통이 모두 치유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 순간이 멈추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 마음만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이렇게 어떤 것도 필요없는 깊은 심령의 만족이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처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밤 기도회에 눈을 떠 보자 거의 새벽 1시정도였고 사람들이 다 숙소로 돌아간 상태였습니다.

그 집회 첫날밤 난생 처음으로 신기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가 어느 골목 어귀를 시장바구니가 앞에 달려있는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장바구니 안에는 어떤 쌀자루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제 마음속에 그 자루 안에 있는 것의 상태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다가 자전거를 멈춰 세웠습니다.

그리고, 쌀 자루를 들고 내려 밑둥을 잡고 내용물을 나오게 하는 순간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얼굴 입가에 피를 흘리며 얼굴부터 바닥에 꼬꾸라져 있었습니다.

저는 순간 이것이 저의 인생이며, 제 안에 호랑이 같은 강한 자아를 주님께서 죽여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집회를 통해서 과거에 저의 맘속에서 늘 압박해 오던 어두움의 그림자들이 서서히 물러가고 저의 마음 속에 그 동안 알지 못했던 깊은 평강이 임한 사실에 마냥 뛸 듯이 좋았습니다.

그러던 집회 둘째 날, 집회의 일정사이 비는 시간에 집회 장소를 그냥 걷고 있는데, 난생 처음 주님께서 저의 심령에 들리는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경철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저는 그냥 편하게 마음속으로 대답하였습니다.

주님, 당연하지요, 주님을 사랑하니까 경기도 이 먼 곳까지 와서 있잖아요.

그리고, 제가 주님의 그 음성을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날 즈음에 주님께서 또 저의 심령 속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경철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저는 약간 짜증스런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주님 왜 또 물으세요, 주님을 사랑하니깐 이 먼 곳까지 와서 울고 기도하잖아요.

역시나, 주님의 음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찰나,

주님께서 저에게 다시 한 번 물으셨습니다.

경철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저는 하나님께서 하신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이 뭔가 잘못되었구나 하고 순간 직감하였습니다. 저의 마음이 주님의 세 번째로 질문하셨을 때, 뭔가 모를 근심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그 때 저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경철이 너의 가장 귀한 것을 포기할 수 있느냐?

하나님의 이같은 저를 향한 질문에 순간 저는 굉장히 놀랐습니다.

경철이 네가 하나님을 정말 사랑한다면 너의 가장 귀한 것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순간 저의 마음에서 나의 가장 귀한 것이 뭐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이 오래지 않아 제 삶의 가장 귀한 것은 바로, 저의 마음 속에 저의 공부를 통한 제 미래의 계획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주님께서 이 공부를 통한 나의 미래를 포기하란 것인가?

여태껏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기쁨이 되려고, 마음 속에 희망으로 늘 함께 살아 온 것인데 이것을 버리고 과연 내가 나의 삶을 지탱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깊고 두려운 고민이 저를 엄습했습니다.

그래서 순간, 제가 주님께 “주님, 저는 나름 나라를 위한 목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라고 마음으로 하소연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하늘에서 실재로 불꽃같이 저의 동기를 살피시는 주님의 눈을 영으로 보았고, 아무 음성으로 말씀하시지 않으셨지만 “너의 불순한 동기를 네가 잘 알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의 마음 속에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 왔던 내 모든 삶을 부정하고 포기할 때, 과연 내가 앞으로의 삶을 정상적으로 살 수 있을까? 하는 난생처럼 접하는 심각한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나, 집회를 통해 저의 상처 난 마음을 만져주시고, 깊은 하늘의 평강을 지금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기에 다른 어떤 것은 몰라도, 나에게 하늘의 평강을 맛보게 하신 이 하나님만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의 마음 깊이 진정으로 저의 미래를 완전히 포기해 드리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의 마음 속에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22년의 삶을 완전히 부정하는 기도이기에, 저의 마음 속에 깊은 서러움이 북받쳐 올라와 계속 울었습니다.

그런데, 수분을 계속 울고 있는 순간에 저의 울음이 서러움에서 깊은 평강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보다 더 깊은 평강이 제 속에 계속 임하고 있었고, 어느 샌가 저의 마음 속에 과거에 가졌던 공부를 비롯한 모든 눌린 것들이 완전히 없어지고 있었습니다.

포기하면 죽을 것 같았던 저의 계획들이 마음 속에서 실제로 사라지고 있음에도 오히려 제가 깊은 하나님의 평강 가운데 있을 수 있음에 놀랐습니다.

그런 찰나에 주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경철아, 나의 영광을 위해서 공부해 보지 않겠니?


자유게시판

Free Board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2014년 VBS 참석관련 공지사항 AAHC 2014.05.02 15659
180 [토요 말씀 학교 안내] 2012년 가을 학기 커리큘럼 AAHC 2012.10.26 7854
179 이흥호 집사 연락 바랍니다. . 황선진 2012.10.11 8287
178 2012년 앤아버 지역 연합 부흥회 file AAHC 2012.10.02 9266
177 복음반 [2기] 안내 file AAHC 2012.09.28 7659
176 my prayers pauljo 2012.09.05 7186
175 제 69 차 미시간 연합 중보 기도회 AAHC 2012.08.06 8202
174 광복절 기념식 행사 및 한마음 대회 AAHC 2012.08.06 7360
173 성경책에 대한 질문 아자아자 2012.07.28 7454
172 소망교회 친교 골프 대회 (8/18) AAHC 2012.07.19 14461
171 중고등부 교사 모집 file AAHC 2012.07.13 14928
170 홈페이지 작업 관련... Song 2012.07.11 10822
169 배목사님, 평안하십니까? 제임스 2012.07.05 7470
168 토요 아침 성경 공부 봄/여름 학기 (2012년 5월-8월) 안내 AAHC 2012.05.11 7815
167 소망교회 찬양대 nicolas 2012.04.23 8774
166 교회 홈페이지가 복구되었습니다! (3월23일) AAHC 2012.03.23 7677
» 너의 가장 귀한 것을 포기할 수 있느냐? Deborah 2012.02.09 7301
164 기독교 크리스마스 음악 사이트 김관덕 2011.12.14 6780
163 하용조목사 누구인가? 김관덕 2011.08.02 9354
162 온누리교회 하용조목사 소천 김관덕 2011.08.01 8327
161 한국에 오신 주영하 구역장님과 만남 한컷! file 김영선 2011.06.25 8204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Next ›
/ 1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