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메시지 - 열왕기상 6] "은혜을 잊지 마라. 잘못하면... 자식 죽일 수 있다!"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16:34) – “은혜를 잊지 마라!... 잘못하면... 자식 죽일 수 있다!!!”
신앙인에게 가장 많이 오해 되는 단어가 ‘은혜’가 아닐까 싶다. 신앙인의 삶 자체가 ‘은혜’인데, 힘들고 어려울 때는 은혜를 구하고, 의지하지만, 조금 형편이 나아지면 금방 잊어 버리는 것이 은혜이다. 또, 은혜를 너무 값싸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쉽게 생각하고,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은혜는 하나님의 목숨, 생명값인데… 은혜가 공짜라서 값싸게 생각하면 안된다. 너무 비싸서 공짜로 주실 수 밖에 없고, 사랑하기에 그저 주신 것이다. 그리고 은혜를 받으면, 은혜를 받는 나 자신이 잘나서, 능력이 많아서, 본질적으로 의로운 존재인 것처럼 착각하기가 쉽다. 은혜를 받았을 따름이지, 받았다고 나의 본질적 본성이 무한 능력자로 바뀌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은혜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이기에 받아야 하고, 받게 된 것을 말한다(엡 2:1, 3). 죄가 없거나, 심판을 받지 않은 자들은 본질적으로 은혜를 받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은혜를 필요로 하고, 받은 자라면 그러한 자는 본성상 진노의 자녀였고, 허물과 죄로 이미 죽었던 자였음을 말한다. 그래서 다시 살게 되었을 때, 즉 은혜를 받은 자들은 진실하다면 가장 먼저 취하는 자세가 ‘겸손’이다. 받을 자격도 없는 자에게 가장 귀한 ‘하나님의 값’을 치루어 주셨음을 생각할 때, 감사와 함께 겸손함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은혜는 담대함 또한 갖게 한다. 죽음에서 건지시고, 자신의 전부를 주신 그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기에 은혜를 받은 자는 겸손함과 함께 ‘담대함’ 또한 갖는다. ‘겸손한 담대함!’ 어쩌면 모순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그것이 은혜이다. 그 은혜를 바르게 이해하고,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사는 것이 성도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자세이다. 가나안의 첫 성인 여리고 성은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무너뜨리신 성이다. 여리고 성은 죄의 철저한 상징이다. 그래서 완전히 무너 뜨리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