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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동행하는 영적 순례 40일 / 18일째

 

[내적 치유를 넘어… 전인 치유를 넘어… 전인 무장으로!]

 

 

[묵상할 말씀] 눅 17:11-19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19)

 

 

[묵상] 

 

(2016년 사순절 18일째는 3월 1일 화요일입니다. )

 

한 때 ‘내적 치유’라는 표현이 많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상처가 많은 세상이기에 이러한 ‘치유’ 프로그램은 매우 유용했고, 인기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내적 치유’라고 하니, 그 치유의 영역이 내면에 제약되기에 이 프로그램이 발전하면서 좀 더 전반적인 치유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전인 치유’(total healing)라는 개념입니다.  내면의 치유 뿐만 아니라, 삶의 전 영역을 다 치유의 영역으로 하고, 치유 될 때 진정한 치유가 된다는 개념입니다.

 

이 또한 매우 인기있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좀 더 발전 된 개념이 있는데 치유라는 접근법 대신에 예방법으로 나아가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인 삶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문제가 발생한뒤,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하는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예방책을 미리 하면 문제 뒤에 해결하려는 에너지의 20퍼센트만 쏟아 부어도 문제 발생을 막는다는 매우 효율적인 차원을 말하는 것이 바로 예방책입니다.

 

그래서 전인치유라는 말 대신 ‘전인 무장’(total equipping)이라는 개념입니다.

 

--

 

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기 전에, 제자들을 향하여 이러한 예방책을 많이 미리 말씀해 주시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 이후에 홀로 남게 될 제자들을 위해서 미리 갖추고, 무장하고, 준비해야 할 일을 말씀해 주시고, 준비시켜 주셨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열 명의 나병환자들에 관한 얘기입니다.  예수님께 나아와서 치유를 호소했고, 그 결과 10명이 모두 나았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한 명만 예수님께 와서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렸습니다.  이 얘기는 단순히 나병의 치유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치유에 대한 올바를 이해를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전인 무장의 관점을 미리 말씀해 주심이라 생각됩니다.

 

하나 하나 무장해야 할 영역을 함께 점검하고, 기도함으로 무장하기를 원합니다.  전인무장 하기를 원합니다!  다음은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전인 무장의 몇가지 영역들입니다.

 

첫째, 예수님은 삶의 목표가 정확하였습니다.  목표가 있다는 것은 방향이 있다는 것이고, 삶의 의미, 가치, 생기, 자세, 동기부여 등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떤 목표를 갖느냐도 매우 중요합니다.

 

본문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11).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목표는 예루살렘이었고, 예루살렘은 바로 ‘십자가의 장소’를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이 성전이 있는 예배의 장소임을 생각할 때,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예배였고(예배의 모범을 보이심), 그것이 참된 성전의 의미였습니다.  

 

우리 삶에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기억하고, 그 은혜 토대 위에서 나의 삶을 섬기고 희생하는 삶을 목표로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가져야 할 유일한 삶의 목표라는 말입니다.  십자가의 삶만이 이 세상의 모든 죄악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라는 접경 지역을 지나가셨습니다(11).  이 사마리아와 갈릴리의 접경 지역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사마리아 중심부에도, 갈릴리 중심부에도 잘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경우가 많은 곳이 바로 이러한 접경 지역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지역을 지나가실 때 나병환자 10명이 예수님께 나아오게 되었습니다.  나병환자는 하나님의 벌을 받았다는 영적 심판의 의미까지 받은 자들입니다.  본문을 살펴 볼 때 10명 중에서 9명은 유대인이고, 1명은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갈릴리 지역으로부터도, 사마리아 지역으로부터도 배척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 친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사회로부터 배척받고 버림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자들을 향하여 ‘가셨습니다.’  이 또한 매우 중요하게 우리가 무장해야 할 영역입니다.  내가 관심갖고, 내가 기도하고, 내가 위하는 지역과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성령은 말할 수 없이 탄식함으로 간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간구하실까요?  바로 연약하고, 범죄하고, 소외되고, 죄짓고,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위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눈길을 그들을 향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인생의 방향을 바르게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곳에 이미 눈길과 마음이 가 계신 하나님을 그 곳에서 함께 하게 되는 더 귀한 영적 체험을 하게 됩니다.  영적 무장은 하나님이 계신 곳에 내가 함께 있으므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길과 마음은 가장 낮은 곳에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낮은 곳으로 갈 때,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참된 무장을 하게 됩니다.

 

셋째, 10명의 나병 환자들은 예수님의 말씀, 즉 제사장들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는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음을 입게 되었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관계 구체적인 형성법은 바로 ‘순종’이고 ‘기도’입니다.  만약 대등한 관계라면 순종 대신에 서로 의견교환, 상호 협조 등의 방법이 가장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라는 존재를 이해할 때,  피조물이 가져야 할 가장 바른 자세는 바로 ‘순종’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것 자체가 바로 자신의 존재를 피조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이 기본은 실은 영적 치유, 자아 정체성에 대한 치유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들의 순종의 더 깊은 내면적 동기는 앞으로 더 따져 봐야 하지만, ‘순종’이라는 그 개념 자체는 창조주에 대한 피조물이 갖는 가장 합당하고 적절한 자세라는 것을 정립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치유의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넷째, 이들은 육체적으로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즉, 육체적 영역 또한 매우 중요함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에는 육체적 영역은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바울도 자신의 육체적 가시 제거를 위해서 세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이 말은 그 육체의 가시가 바울을 많이 괴롭혔음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육체의 치유를 받지 않았지만, 대신 감당할 힘을 받았습니다.  이 또한 중요한 치유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육신을 갖고 있는 동안은 육체의 온전함, 혹은 연약함을 하나님 주시는 힘으로 이길 수 있는 더 강한 정신적 자세 또한 우리가 갖춰야 할 영역입니다.

 

다섯째, 관계적 치유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10명이 모두 나았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1명은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이 사마리아인이 유대인 제사장들이 있는 갈릴리나 유대땅으로 가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가 육체가 낫게 되자, 그는 관계적인 면에서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는 그동안 같이 마음도 나누고, 위로하였을 9명의 유대인으로부터 사마리아인이라는 이유로 그 그룹에서 떨어지게 되는 상처를 입습니다.  

 

많은 경우가 관계적 상처가 가장 큰 상처라고 얘기합니다.  사마리아인은 육체의 치유대신에 관계적 상처가 더 크게 된 상황이 되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께로 와서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렸을 때, 예수님은 그 사마리아인의 마음도 보시고, 영적인 상태도 보시며, 전적으로 위로, 격려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다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민족, 인종, 계층, 배경 등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다 받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관계로 인한 왕따, 소외, 배척 등이 없습니다.  

 

여섯째,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안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치유입니다.  9명은 육신의 병 나음에 모든 마음을 쏟았지만, 사마리아인은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나병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치유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병을 치유해 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육신의 나음에 모든 마음을 사람들이 돌리고 있는 사이에, 이 사마리아인은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고, 그 분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 못하고, 존재의 참된 회복을 가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을 만든 근본되시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떻게 참된, 전인적 회복이 있겠습니까?  그 어떤 피조물로도 일순간의 만족뿐입니다.  

 

이 사마리아인은 영적 치유를 귀하게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일곱째, 새로운 소명을 부여 받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치유의 영역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마리아인을 향하여 ‘일어나 가라’(19)라고 하십니다.  KJV에서는 이 표현을 ‘Arise, go thy way’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냥 아무데나 가라는 말씀이 아니라, 이제 부터 ‘너가 가야 할 너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마리아인이 그냥 갔겠습니까?  아무 데나 갔겠습니까?  대제사장이신, 진짜 성전되신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를 선언받았는데, 그가 이제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의 가는 모든 길은 바로 참 자유, 참 치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만을 선포하는 삶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사명자로 나아갑니다.  소명을 안고 나아갑니다.  그것이 바로 그가 가야 할 ‘그의 길’(his way)이었습니다.  

 

소명이 없는 삶은 참된 치유의 삶이 아닙니다.  자기 욕심 성취의 목표를 갖는 삶은 소명의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으로 치유받고, 그 하나님만을 증거하는 삶이 바로 참된 소명의 삶입니다.  이 사마리아인은 전인 치유를 받았던 것입니다.

 

--

 

지금까지 조금은 길~게 일곱가지 치유의 영역을 살펴 보았습니다.  아마 묵상을 더 깊게 하면 더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반적 영역을 우리가 살펴 보면서 한가지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인적으로 치유하신 이 사마리아인에 대한 말씀을 우리는 이 사건이 있은 후 2천년 정도 후에 보고 있습니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이미 역사 속에 일어난 일이기에, 이 사건을 전인 치유로 해결하신 예수님을 우리가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의지하는 한… 우리는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전인무장’을 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문제 해결(problem solving)이전에, 예방책(preventative approach)의 일환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모시고, 예수님을 나의 스승으로 모시고, 예수님과 교제하며, 예수님을 전적으로 따를 때, 우리는 ‘전인무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 전인무장을 행했을 때, 삶의 모든 상황 자체, 어려운 상황 자체가 오히려 하나님의 강력함, 살아계심을 선포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 묵상과 기도로 사순절을 지내실 때, 비로소 ‘십자가’라는 가장 큰 고통과 어려움을 우리는 ‘하나님’으로 인해 이기게 됩니다.  여기에 사순절 묵상의 귀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의 적용] 사순절 기간 동안, 진리에 의한 가장 왕성한 섬김의 삶 살기를 바랍니다.

 

* 인생의 목적, 행동적 신앙, 순종, 육체의 영역, 관계, 하나님을 힘써 앎, 그리고 소명….  다 너무나 커다랗고 무거운 주제들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영역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옴으로 갖추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오늘 매 순간 바라보는’(히 12:2) 삶을 오늘 하루 살아가십시다.  ‘봄’이 ‘됨’으로, 그 ‘됨’이 진실한 ‘행(行)’으로 인도하여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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