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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마가복음묵상4] 나서야 할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분별하는 것은 지혜요 아름다움입니다! (막 1:29-45)
[새벽-마가복음묵상4] 나서야 할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분별하는 것은 지혜요 아름다움입니다! (막 1:29-45)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1:34)
예수님의 은휘(隱諱)성!
‘은휘’라는 말은 말하기를 꺼려 숨긴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오해 됨을 방지하고져 자신을 숨기셨다.
본질을 드러내시고져 비본질적 상황이 되었을 때는 드러내지 않으셨다.
“귀신을 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1:34)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1:35)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게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1:45)
왜?
본질이 본질로 이해되지 못하는 것을 방지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의 본질적 사역은 병 고침이 아니었다. 귀신 쫓음이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급증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하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구원 사역을 행하시는 것이었다. 그것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새생명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다른 모든 것은 도구적 과정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 도구적 과정이 본질이 될 수는 없다. 비본질이 본질이 되는 것은 또 다른 왜곡이고, 몰이해,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 이러한 비본질적 요소가 본질로 오도되는 모습들이 있지 않는가?
병고침? 외적 성장? 비교에 의한 경쟁상황 속에서의 승리감? 감정적 기쁨?
이 모두는 모두 본질을 위한 도구적 과정, 과정적 도구일 뿐이다. 본질이 결코 아니다. 이러한 상황들이 목적이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격하시키는 행동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담의 최초 범죄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본질이 제대로 본질화 되고 있는지를 냉철하게 늘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한다. 비본질이 본질적 모습으로 보여진다면 가차없이 자신의 수족이라 할지라도 잘라내는 냉철함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다. 그런 자세를 가지심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했던 성전을 향하여 무너지라고 말씀 하셨다. 모든 사람들이 다 존경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원색적 비판을 가 하셨다.
나의 삶은 비본질을 본질로 오해, 오판, 오용, 오도하고 있지 않는가?
앞으로 나아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돌아봄이다.
참된 돌아봄 없이 바른 나아감은 있을 수 없다.
연초부터 예수님의 은휘적 자세를 우리는 배워야 한다.
나의 삶에서 '십자가'가 드러나는가?
그 외의 모든 삶의 모습에 대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은휘적 자세'를 배우고, 가져야 한다!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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