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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누가복음19장] 삭개오의 회심이 주는 의미 (눅 19:1-10)
삭개오의 회심이 주는 의미
삭개오 얘기는 누가복음에만 나옵니다. 그래서 모든 공관복음서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비유나 스토리에 비해서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오해라 봅니다.
삭개오의 회심 얘기가 중요한 것은 그의 회심이 단순한 내적, 개인적 회심에 그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회심의 한 모습으로 자신의 소유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다고 했고, 사람들에게 속여서 탈취한 금액은 4배로 갚겠다고 했습니다(8).
그가 모든 통관 지역의 중심부라 할 수 있고, 교통의 요충지라 할 수 있는 여리고의 세관장임을 생각할 때, 그의 재산은 매우 큰 규모임을 알 수 있고, 그와 함께 그가 가졌던 재력에 의한 권력은 매우 컸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삭개오가 자신의 재산의 거의 대부분을 사회로 환원한다고 한 것은 매우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질 욕심으로 부터 자유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데, 삭개오는 그 참된 물질로부터의 자유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가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준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경제적 평등을 일으키는 획기적 사건이었습니다. 속여서 탈취한 자들에게 4배를 갚아 준다는 것은 수 많은 사람들에게 격려와 삶의 새 소망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삭개오의 회심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적, 관계적, 사회적 큰 영향을 끼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복신앙에 많이 젖어 있고, 그 결과 기독교인들이 더 이기적이라고 얘기 들을 수 있는 현대 신앙인들의 모습을 볼 때, 가히 삭개오의 회심은 정말로 놀라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삭개오는 그런 놀라운 회심을 하게 된 것일까요?
사람의 노력으로 자신 소유의 거의 전부를 나눈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많은 정치인들이 선거 전에 자신이 당선되면 자기 재산의 많은 부분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실제로 그렇게 하는 분들을 많이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오직 하나님을 만날 때만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천지의 주재 되시고, 창조주 되시며, 유일한 구원의 통로 되시는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향하여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5) 말씀하시는 그 순간, 삭개오는 그 어떤 돈과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가치, 가장 큰 의미, 가장 큰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 분이 나의 이름을 불러 주시고, 그 분이 나에게 함께 하시겠다는 그 분의 임재 상황을 맞이했을 때, 삭개오는 평생 느끼지 못했던 전인격적 감격과 감동을 받았을 것이고, 그로 인해 그는 다른 모든 것이 목적이 아니라 도구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온 세상의 전부 이상 되시는 주님이 내 안에 계실 때, 나와 함께 하실 때, 우리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목적으로 삼게 되는 노예의 삶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되는 자유인이 됩니다.
이것이 구원의 기쁨과 능력입니다. 삭개오는 그 구원의 기쁨을 체험했기에, 자신의 소유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세상에 참된 자유를 물질의 영역에서도 보여 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주님께서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시듯이,
나의 이름을 지금 불러 주십니다.
“000야, 내가 오늘 너와 함께 하여야 하겠다…”
이 소리, 들리시죠… ^^
(매일 성경 새아침 기도회 묵상: 눅 19:1-10)
앤아버 소망 교회 ‘줌’
주일 예배 @ 2 PM / 새아침 기도회 @ 6:30 AM / 수요 성경 공부 @ 7:30 PM
https://us02web.zoom.us/j/5616249763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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