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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2 16:01
[송구영신 예배 설교] 더하지도, 제하지도 말아야 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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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무겁고, 어려운 송구영신 예배 설교를 함께 나눕니다]
말씀–더하지도, 제하지도 말아야! (계 22:18-19)
(* 더하지도, 제하지도 말아야 하는 말씀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와 자세)
(송구 영신 예배의 의미와 필요성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복신앙이 아니라, 한 해를 처음 시작하는 시점에 예배와 말씀, 그리고 바른 헌신의 자세를 갖는 차원에서 드리는 송구영신 예배는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구 영신 예배 설교는 일년의 출발과 방향을 제시합니다. 시대가 바른 신앙 갖기에 어렵기에 조금은 진지하게 송구영신 예배 설교를 전했습니다. 어려운 (내용적으로도, 받아들이기도) 설교를 행했습니다. 그러나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설교중 비판하나 내용은 비난이 아니며, 저 자신을 향한 입장이기도 합니다. 현대의 종교 개혁을 부르짖는 심정으로 올 한 해 살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의 중요성]
1. 오늘, 지금 이 시간은 매우 중요합니다. 한 해의 마지막 시간이며,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2. 마지막과 새로운 시작의 연결시간을 지내면서 우리가 함께 예배로 나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3. 저희가 이렇게 예배로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시작하듯이, 마지막과 시작은 기억에 남는 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4. 성경을 볼 때 처음 장면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어떤 것입니까?
5.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성경의 시작은 ‘말씀’입니다.
6. 신약의 처음이라 할 수 있는 요한복음 1장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고,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시고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의 시작도 ‘말씀’입니다.
7. 그리고 요한 계시록 마지막 장면을 사도 요한은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22:10)라고 하면서 말씀에 대한 철저한 자세를 가르침으로 요한 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8. 이는 말씀이 삶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이고, 뿌리이며, 기본적인 능력의 원천임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가볍게 여긴 결과]
9.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는 현대 기독교의 난감한 상황을 보면서 절감하게 됩니다. 현대 기독교는 지금, 매우 그 본질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10. 한국 기독교의 경우는 교회 다니는 가정의 자녀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대학생 혹은 직장인이 될 때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되는 비율이 무려 95%나 된다고 합니다
11. (부모님은 교회 다니는데 자녀들이 다니지 않게 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silent exodus 라고 하면서 20여년 전에 이미 90% 정도가 대학진학시와 직장 다닐 시 교회를 나가지 않은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12.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13. 믿는 사람들을 보면서, 특히 부모와 어른들을 보면서, 장년 성도들이 사회와 가정에서 살아가는 ‘삶’을 보면서 실망하고 길을 잃고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14. 장년들의 삶이 자녀들에게 기대와 소망을 주지 않고 실망을 주는 이유는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경우) 신앙 생활의 기초가 기복적 의식, 감정적, 극단적, 현세적 사상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15. 즉, 말씀이 주는 핵심인 ‘죄의 심각성’, ‘은혜’, ‘복음’, ‘하나님 나라’, ‘영생의 성경적 개념’ 그리고 이러한 말씀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16. 뿐만 아니라 그러한 말씀의 본질을 삶의 현장에서 내면 깊이 묵상하고, 고민하고, 기도하고, 실천(순종)하려고 하는 등의 진지한 모습 또한 있지 않았기에 그렇게 신앙의 본질을 벗어난, 미성숙한 신앙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자녀들이 신앙에 대한 기대감이 반감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17. 그리고, 자녀들 또한 그렇게 자라다 보니, 말씀의 본질, 말씀의 실천적 삶을 기를 수 있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18. 즉, 자녀들의 신앙 내면 속에 말씀이 주는 이해력, 소화력 등을 자생적으로 가질 수 없는 것이 큰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19. 반면에 유대인들 자녀들이 유대교를 떠나는 배교율은 0.1%라고 합니다.
20. 유대인들은 말씀의 중요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민족입니다.
21. 비록 그들이 갖고 있는 말씀의 이해가 성경의 본질에 비해서는 제약적이고, 유대인들만이 갖는 공동체 특성 때문에 배교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배교율이 0.1%인 이유는 그들이 갖고 있는 말씀에 대한 자세 때문입니다.
22. 유대인들은 자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뱃속에서 모세 오경을 3번 듣게 한다고 합니다.
23. 73년 제 1 차 유대-로마 전투 당시 가장 유명한 마사다 전투에서 식량이 다 떨어 졌을 때 자기 자식 보다 말씀을 가르치는 랍비에게 남아있던 마지막 식량을 공급해 주었다고 합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랍비가 살아야 자신의 자녀 뿐만 아니라, 후세대들에게 말씀 교육이 되기 때문이라는 그들의 의식 때문이었습니다.
24. 그만큼 유대인들은 말씀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25. 말씀은 글로 되어 있고, 그 속에 역사와 공동체를 통해 정립된 가치관, 의식, 인생관 등을 글로 의식에 정립하기에 말씀에 의한 교육은 쉽게 평생 인생의 가치관이 되고, 그 결과 그러한 가치관은 개인 뿐만 아니라 집단 공동체의 공유 가치관이 됨으로 강력한 의식 공유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6. 유대인의 율법주의적 말씀관에 반하여, 참된 진리인 성경 전체의 말씀을 붙잡고 있는 기독교인은 말씀을 통해 이성적, 경험적 과정을 넘어 진리, 자유케 하는 말씀, 찔러 쪼갬 받는 역사를 경험하기 때문에 반석위에 지은 집처럼 결코 흔들리지 않는 가장 견고하고, 강력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27. 그래서 성경은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계 22:10)고 합니다.
28. 즉, 말씀을 덮어 두지 말라고 합니다. 말씀을 늘 열고, 대하고, 읽고, 묵상하고, 순종하라고 합니다. 그만큼 말씀이 중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29. 저는 2019년도 소망 교회가 이렇게 말씀을 늘 열어 놓고,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반석위에 짓는 교회, 가정, 개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0. 이러한 말씀에 대한 바른 자세를 성경은 좀 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제하지도, 더하지도 말라!]
31. 18절과 19절에 보면 주신 말씀 외에 더하거나, 제하여 버리면 재앙을 받고,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32. 말씀을 주신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뜻입니다.
33. 18절에 보면 ‘하나님의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이라는 표현에 나타난 ‘기록된(게그람메나스)’는 완료시제를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 말씀 그 자체로 완벽한 내용을 담은, 충족된 내용을 담은 것을 의미합니다.
34. 즉, 말씀은 완벽합니다. 말씀 자체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내용이 다 담겨져 있다는 말입니다.
35. 말씀은 지정의, 전인적 공급과 인도를 해 주는 책입니다.
36. 성령께서 역사하시기에 말씀에는 이론을 넘어 살아있는 하나님의 메시지, 능력, 생명이 담겨져 있습니다.
37. 이러한 말씀에 대해서 성도는 가장 바른 자세를 가지고 대해야 합니다. 즉, 더하지도, 제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 말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함부로 더하거나, 함부로 제하면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함에서 제함을 받는다고 할 만큼 말씀을 진지하게 대하라고 성경은 얘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계 22:19). 그 구체적인 적용을 저는 다음의 몇가지로 묵상해 보았습니다.
[첫째, 말씀 연구(말씀의 본질)를 철저하게, 진지하게, 꼼꼼하게 해야 합니다]
38. 이 말은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성경) 자체를 잘 공부하고, 과연 그러한가 라는 베뢰아 교인들처럼 상고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39. (행 17:3)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examine)하므로…
40. 여기서 “상고”(아나크리노)라는 말은 사금을 걸러 내듯이 그렇게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해서 말씀을 진지하게 대하고, 연구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41.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을 온전히 잘 연구하고 묵상하는 진지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42. 이러한 말씀에 대한 진지한 공부와 연구의 자세를 ‘말씀 연구’(Biblical Study)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현대 나의 삶에 적용하며 살아가는 삶을 ‘말씀 생활 혹은 말씀 실천’(Biblical Life)라고 합니다. 이 두가지는 모두 중요합니다!’보다
43. 그러나 말씀을 실천하는 ‘말씀의 실천 삶’보다 실은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깨닫는 ‘말씀 연구’의 과정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44. 말씀을 기록한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고, 그 말씀들이 당시 어떤 배경하에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기록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문학적으로, 신학적으로,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살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45. 예를 들어 예레미야 선지자가 조국 유대 이스라엘을 대항하여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말한 내용에 대한 이해를 먼저 바르게 함이 필요합니다.
46.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항복해야 한다고 한 것은 국가와 민족을 살리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 유대 민족의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관점을 정확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47. 예레미야는 단순한 국수주의적 국가관이나 민족관의 한계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48. 더 큰 하나님의 뜻에 국가와 민족 또한 순종하고, 따라야 참된 국가로, 민족으로 인도함 받는다는 더 큰 관점, 즉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 우선 순위를 두었던 것입니다.
49. 그러나 이렇게 예레미야의 바벨론 항복 관점을 일제 치하 때 신사참배 복종과 연결시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실은 예레미야서에 대한 철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50. 실제로 한국 교회와 교단이 살기 위해서는 신사 참배를 해야 한다고 말한 교단들이 당시 대부분이었습니다.
51. 그들은 개교회와 교단이 사는 것이 성경적이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스스로 이해하고(?), 교단적으로 강요하고(?), 그렇게 일반 성도들을 쇠뇌하면서(?) 신사참배를 합리화 했습니다.
52. 물론 당시 신사참배 상황은 결코 쉽게 생각할 사안은 아님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53.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가 가졌던 자세가 단순히 바벨론에 항복하는 문제가 아니라, 더 큰 하나님의 뜻에 우선순위를 둔 결과적 행동임을 기억한다면, 신사참배의 상황을 놓고서도 개교회 및 교단의 보호와 유지가 관건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 가를 더 우선적으로 생각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54. 일제 시대 때 하나님의 더 큰 우선순위는 무엇일까요? 신사참배 절하는 것일까요? 그래서 개교회와 교단을 살리는 것이었을까요? 하나님의 더 큰 우선 순위는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55. 우리는 성경을 통해 성경이 말하는 본질, 핵심, 하나님의 중심 뜻을 진지하게,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바른 ‘성경 연구 & 공부’(Biblical study)가 있을 때, 바른 ‘성경적 실천’(Biblical life)이 가능해 집니다.
56. 오늘날 신문에서 회자되고 있는 교회건물 신축과 관련하여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한다든지, 개교회의 조직 유지를 위해 세습에 대한 논란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개교회 결정을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든지, 여러가지 비리적 상황이 보이고, 무리한 학사 일정 등의 상황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신학교 유지를 더 우선시 하고, 교단의 총회장이 되기 위해서 무리한 선거 과정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말하며 투명하거나 청렴하지 못한 총회장 선거 과정 등을 갖는 일련의 모습들은 실제로 예레미야 선지자의 하나님 중심 관점에 대한 철저한 잘못된 이해에 기인한 것입니다.
57. 예레미야가 겉으로는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했지만, 그 핵심은 철저한 회개였습니다. 하나님만이 역사를 움직이는 유일한 분이시고, 유대도 바벨론도 결국 하나님 앞에서 순종해야 함을 선포한 것입니다.
58.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예레미야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바벨론에 항복하고 포로가 되는 것이 더 맞는 뜻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외적 물질적 성전시대를 넘어, 말씀으로 성도들이 인도함 받는 ‘성경 시대’를 열었습니다.
59. 개교회 성전(?) 건축보다, 개교단의 총회장 선출보다, 개별 신학교의 성장과 번창보다, 억지의 세습까지 강행하면서 개교회를 살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60. 그 하나님의 뜻보다 개교회, 개교단, 개별 신학교, 개별 부자(아버지/아들을 의미) 목회자를 더 앞세울 때… 기독교는 개독교가 되는 것입니다.
61. 성경연구를 철저히 하고, 성경적 삶(적용) 또한 바르게 행할 때 교회는 이 세상에서 참된 권위를 갖게 됩니다. 이것이 말씀을 더하지도, 제하지도 않는 바른 자세입니다.
62. 둘 중에 하나만 해서도 안되고, 둘 다 진지하게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전자를 바르게 할 때, 후자가 바르게 실천됨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말씀 전체에 대해서 균형감 있게 대해야 합니다]
63. 말씀을 빠뜨리지 않게 대하는 것도 더하지 않고, 제하지 않는 자세입니다.
64. 성경은 66권으로 되어 있고, 그 전체 성경은 구약의 경우 율법서, 역사서, 시가서, 선지서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약도 복음서, 역사서, 서신서, 계시록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65. 이러한 성경을 대하면서 구약과 신약의 균형, 그리고 각 장르별로도 균형 있게 성경을 대해야 합니다.
66. 한국 기독교는 어쩌면 기득권 층에 많이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천당, 불신 지옥’과 같은 전천년설에 입각한 개인주의적, 이기적 관점의 복음을 많이 전했기 때문입니다.
67. 그래서 복음서, 교회론을 강조하는 서신서 등은 많이 강조되었지만, 반면에 선지서나 산상수훈과 같은 성경들은 상대적으로 강조되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68. 이렇게 성경을 전체적으로, 균형적으로 대하지 않는 결과, 한국 교회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서 전반적, 균형적, 전인적 입장을 보여 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69. 세상은 촛불과 태극기로 나눠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촛불과 태극기를 뛰어 넘는 전인적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
70. 전반적 성경관을 가진 교회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보수나 진보, 경제적 다양한 계층 등에 관계없이 말씀을 말씀으로 대해야 합니다.
71. 사람의 관점에서 갖게 되는 보수나 진보는 나름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계 또한 있습니다.
72. 하나님의 관점에서 잘하는 부분은 협력 및 지원해야 하며, 각 한계 부분에 대해서는 교회가 지적하고, 바른 길을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보이든 보수이든 관계없이…
73. 진보적 성향은 지나친 인본주의적 관점을 가질 위험이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무신론적 인본주의적 극단적 모습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74. 동성애와 관련해서 동성애적 성향(homo sexuality)에 대한 이해와 동성애적 행동(homo sexualism)에 대한 구분을 함과 동시에 분명히 동성애적 행동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임을 정확하게 가져야 합니다.
75. 그러면서도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영혼에 대해서 교회는 죄(인)를 향한 주님의 마음으로 대하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격려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76. 그러나 자칫 일반 인본주의적 입장에서는 이러한 ‘동성애적 성향’과 ‘동성애적 행동’의 구분과 경계를 허물어 버리고, 창조의 근본적 입장까지 무시하면서 모든 사람과 행동을 다 받아 들이려는 경향이 있게 됩니다. 그것은 죄를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고 이끌어 가야 한다는 성경의 기본적 관점과는 배치되는 입장입니다.
77. 기득권이 많을수록 보수주의자가 되기 쉽습니다.
78. 그러나 기독교인은 기득권에 대한 항상 긴장감의 자세를 가져야 하며, 기득권에 관계없이 더 큰 하나님의 뜻을 늘 물어야 합니다.
79. 한 예가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집 값, 땅값 상승과 관련되는 자세입니다.
80. 인플레이션에 의해서 일어나게 되는 집 값, 땅 값 상승 폭은 사회적 상황이므로 어쩔 수 없이 함께 할 수 밖에 없습니다.
81. 그러나 그런 인플레이션 폭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집 값, 땅 값 폭등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한국의 몇 몇 지역들이 있습니다.
82. 대표적인 지역이 강남지역이고, 학군이 좋은 서울의 지역들입니다.
83. 세상에서는 그렇게 집값, 땅값이 폭등하면 좋다고 할 지 몰라도, 적어도… 적어도… 그 지역에 사는 크리스챤들이 진정 ‘하나님 나라’의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게 자신이 사는 지역의 땅과 집의 값이 올라 갈 때 덩달아 좋아 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고, 그런 폭등을 통해 헌금을 더 많이 낼 수 있어서 교회 건축도 하게 되었다고 자랑하게 된다면… 이는 도저히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결과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84. 그러한 지역에 사는 성도들만이라도 집값 폭등과 땅값 폭등에 대해 자제하고, 함께 부추기는 상황에 동조하지 않고, 냉철하게 국가 전체를 생각하면서 집과 땅을 투기적 목적으로 함부로, 자주 사고 팔지 않았더라면… 기독교는 사회를 향하여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85. 선지서는 너무나 신랄하게 이러한 공적 신앙, 공적 하나님 나라 건설을 강렬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86.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있을진저’(이사야 5:8)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강력한 선포를 그렇게 폭등한 땅과 집들의 지역에 살면서 덩달아 좋아한 기독교인들이 (있다면…) 많은 교회에서는 과연 이러한 선지서를 연중 성경공부로 대할 수 있었을까요? 과연 이러한 선지서를 대하면서도 사회적으로는 반성경적 자세를 가졌다면…(실은 실제로 그러하다고 볼 수 있음)… 성경에 대한 진지함이 없거나, 아니면 성경의 몇 부분은 빼고 성경을 읽는…(성경의 내용을 제한 죄) 그런 잘못을 범한 것이라고 솔직하게 자책하고, 회개해야 하지 않을까요?
87. 말씀을 균형감있게 대할 때 한국 교회는 말씀이 갖는 전인적, 성숙함을 갖게 된다고 믿습니다.
[셋째, 성경공부 및 말씀 적용의 삶, 순종의 삶도 중요합니다]
88. 성경 연구는 성경 공부의 차원을 넘어 성경적 적용으로 인도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자신을 찔러 쪼갰을 때, 그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놀랍게 건설되었습니다.
89. 아브라함이 그랬고, 요셉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고,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랬습니다. 마리아는 혼전 임신이라는 돌 맞을 수 있는 상황에서 “말씀대로 하옵소서” 라고 순종했고, 약혼자 요셉 또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90.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가 말씀에 순종함으로 초대 교회의 강력한 교회를 열었고, 안디옥을 넘어 아시아로, 유럽으로, 전 세계로 복음을 전파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91. 이를 위해서 주일 설교 및 말씀을 삶에서 진지하게 순종하는 자세를 위해 각 소그룹 모임에서는 철저하게 말씀대로 사는 삶을 ‘진지하게 나누고, 기도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92. 제자를 향하여 온 열방으로 제자 삼으라는 그 명령을 초대교회를 넘어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국교화 할 때도 철저하게 지켰더라면 중세 암흑시기를 맞이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93. 철저하게 초대 교회의 제자화의 삶을 313년 기독교 공인을 넘어 400년에도, 500년에도 지켰더라면 이슬람이라는 기독교가 아닌 변질된 인본주의의 종교가 태어 나지도 않았지도 모를 일입니다.
94. 소그룹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소그룹인 일대일은 섬기는 자나 함께 양육 받는 자나 할 것 없이 말씀 앞에 그대로 드러나기에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으로 이끌림 받는 귀한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95. 그래서 우리 교회는 이 소그룹과 일대일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고 함께 힘을 쏟기를 소원합니다. 목회자로서 이 부분에 최선과 충성을 다하려고 합니다.
96. 말씀을 말씀으로 온전하게 받아 들이고 순종하는 그런 자세를 우리 교회가 2019년에 가질 때, 교회는 가장 바른 길, 그리고 가장 강력한 길로 인도함 받게 되리라 믿습니다.
[넷째, 실제 시간 속에서 말씀을 인봉하지 않는 삶을 살아봅시다]
97. 이를 위해서 이제 바로 내일부터 시작하는 1월 1일을 말씀 앞으로 나아가고, 일년 열두달, 매일 말씀을 인봉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98. 주일에만 말씀을 대하고, 나머지 요일에 말씀을 대하지 않는다면 이는 삶에서 시간적으로 말씀을 제하는 삶을 사는 것과도 같습니다.
99. 주 중에 말씀 대신에 다른 일반 가치관 등에 영향받고 살아간다면 실은 나의 말씀 생활에 세상 가치관을 더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100. 나의 24시간 7일 동안, 그리고 일년 365일 동안, 그리고 내가 대하는 매 상황을 말씀의 기준을 놓고 평가해 보고, 바른 방향을 추구하며 나아가는 삶을 살아갈 때 교회는 가장 바른 삶, 세상에 기준이 되어 주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101. 이를 위해서 이번 주일에는 좀 더 구체적인 말씀 생활의 가이드 라인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결론: 한국 교회 참된 개혁을 위한 유일한 길!]
102. 이제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103. 한국 교회 및 세계 교회는 현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104. 온갖 욕을 다 먹고 있는 실정이고, 그렇게 잘못된 모습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정적인 모습을 갖지 못하는 것을 볼 때, 정말 좌절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105. 그러나 방법은 있습니다.
106. 중세 천년동안 교회는 완전히 부패했고, 더럽혀졌고,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107. 그 때 단 한가지 기치를 들고 개혁주의자들은 나왔습니다.
108. 바로 Sola Scriptura! 오직 말씀으로!
109. 왜 그런줄 아십니까?
110. 부패와 타락의 출발이 말씀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111. 아담이 말씀대로 따르지 않았고, 광야 백성들이 말씀대로 따르지 않았고, 역대 왕들이 선지자들의 말씀 대로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12. 반대로 말씀대로 따랐던 여호수아와 갈렙, 마리아, 바울, 초대교회 성도들 등은 모두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바른 길, 생명의 길을 제시했습니다.
113. 우리 교회가 내년에 29살이 됩니다. 이제 30살이 되면 예수님처럼 더 공생애 사역을 강하게 행할 수 있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114. 그렇게 될 수 있는 가장 바른 토대, 이 시대 교회가 가장 바르게 나아갈 수 있는 가장 바른 토대는 바로 말씀을 가장 진지하게 받아 들이는 자세입니다.
115. 여러분의 2019년이 진정으로 능력있게 인도함 받기 위해서는 말씀에 대한 여러분의 자세에 그 관건이 달려 있습니다.
116. 성경의 마지막을 말씀의 중요함으로 맺었다면, 한 해의 마지막을 말씀의 중요함으로 인도함 받고,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했듯이, 새해 말씀으로 인도함 받으심으로 창조적 새해가 되시는 귀한 2019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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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찬양과 경배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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