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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1-22) 나는 방주를 소개하는 자인가?
(창세기 6:1-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22)
노아는 어떤 인물이었기에 홍수 심판을 면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은 언제나 창세기 6-9장을 읽으면서 가졌던 질문입니다.
노아도 여호와께 은혜를 입지 않으면 안되는 죄인입니다(8). 노아가 잘 나서가 아닙니다. 노아도 방주에 들어가지 않으면 홍수심판을 받고 죽게 된 존재입니다. 그래서 노아가 잘 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노아도 죄성을 갖고 살아간 죄인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9절을 오해하면 안된다고 봅니다.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의인이라는 말은 하나님에 의해서 의롭게 된 존재라는 의미이고, 당대에 완전한 자라는 말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온전케 되었다는 의미이고,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의미로 이해함이
더 맞겠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노아의 의는 전혀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능력이 역할을 합니다. 그것이 방주입니다. 노아도, 식구들도 방주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절대로 안되는 심판의 대상이라는 사실입니다.
본문에서 노아가 주인공이 아니라, 방주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그 방주를 만들게 해 주신 하나님이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그 방주는 유일한 구원의 길 되시고, 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노아의 날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베드로전서 3:20–21).
그런 관점에서 22절에 노아가 하나님께서 말씀 하신대로 다 준행했다는 것은 결코 노아의 자랑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심판의 무서움 앞에서 순종한 것은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를 철저하게 인정한 믿음의 자세이고, 그 믿음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만을 높이고, 자랑해야 합니다.
방주를 통해서 우리는 노아의 의를 봐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죄악 속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 자 만이 방주 안에 들어가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 만이 방주를 만들라고 하실 때, 겸손과 두려움과 담대함으로 방주를 만드는 자가 됩니다.
나는 이 방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입니까?
나는 이 방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에게 안내하는 자입니까?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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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성경 읽기’를 행해야 함을 성경 정독하면 할 수록 더 깊게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한 분 중심으로 역사 전체를 써 내려 갈 수 있는 대하 소설이 있을까요?
삼위일체 하나님의 완벽한 존재와 계획과 행함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 이상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기대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히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노아의 방주 핵심은 메시야 예수 이십니다. 물 샐 틈이 없이 완벽하게 세상 안에 있지만, 세상 속에 이끌려 다니면서 영향 받지 않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방주를 늘 타고, 의지하고, 따라가고, 믿고, 순종하고, 그 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그 분만으로 채움 받아서 오직 그 분의 향기만을 나타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내 삶을 통해 그 분이 보이고, 그 분이 증거 된다면 그것이 바로 방주를 안내하는 바른, 의미있는 삶입니다. 평생 내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진하게, 은은하게, 오래동안, 계속 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직 예수! 오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