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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5 05:16
(고린도전서 15:12-19) 전인적 신앙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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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12-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19)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믿는데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온전한 복음, 온전한 구원이 아니라고 사도 바울은 강력하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로마 시대 때는 영혼 중시 사상이 있었기에, 육체의 부활에 대해서는 부정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12).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서 우리의 죄 값을 온전히 치루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삶의 첫 열매로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온전한 구원을 이룩하셨고, 그 구원의 길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셨습니다(13-17). 인간을 창조하실 때 전인적(holistic)으로 창조하셨기에, 구원도 전인적 구원을 행하신 것입니다. 바른 신앙은 이렇게 전인적 관점으로, 전인적 삶을 살아갑니다.
나는 혹시 나의 관점에서’만’ 보고, 전인적이지 않은 주관적/부분적 관점으로만 신앙생활 하고 있지 않습니까?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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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장 주의해야 할 자세 중의 하나가 ‘안전지대에 빠져 있어서 성장도 없이 도태해 버리는데도 무감각증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는 것은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계속 되어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성장은 외적, 물리적 성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숙을 말하는 것이고, 주님께서 갖고 계시는 그런 하나님 나라 건설의 방향과 목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의 성장/성숙을 멈추는 순간 신앙은 도태됩니다. 도태 되는 것 자체가 공동체와 자신에게 어려움을 줍니다. 그래서 ‘넘어서, 너머서 Beyond’의 의미를 늘 되새기며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주일을 넘어 주 중으로, 나 자신의 감정을 넘어 전인적 삶으로, 불안을 넘어 안식과 안심과 평안으로, 나를 넘어 우리로, 나의 인종을 넘어 다 인종을 향한 열려 있는 자세로, 내가 다니는 로칼 처치를 넘어 지역 교회들의 연합체를 향한 열린 마음과 자세로, 교회 안을 넘어 사회와 문화와 정치의 영역으로 등 등….
오늘 카펜터 플레이스 사역(한달에 한번 시니어 아파트에서 진행되는 영어 성경 공부에 참석하고, 함께 교제하고, 친교 음식을 제공하는 것)에 참여 하였습니다. 이 분들을 보는 것 만으로도 위로가 됩니다. 내가 위로를 드리러 갔지만, 제가 위로를 받습니다.
섬김은 높은 자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 아니고서는 죽은 자들입니다. 더 높아질 것이 없는 그런 감사와 겸손만 갖고 있어야 할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나아갈 때 거기 계시는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갈 때 함께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게 됩니다.
‘당신들만의 천국’(이청준 소설)을 만들지 않도록, 교회는 늘 ‘넘어서, 너머서’의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전인적’ 신앙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 만의 신앙(잘못된 신앙), 머무는 신앙(또 다른 잘못된 신앙)의 상태가 됩니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저는 계속 움직이고, 계속 자라기를 원합니다. 그래도 넘어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넘어져 있지 않기를 원합니다. 또 일어서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살아 계시고, 제가 갖고 있는 신앙이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