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광인 (요 12:34-43)
광인 (요 12:34-4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실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죽음은 삶의 끝이고, 한계이다. 어둠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장 빛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그렇게 빛의 모습으로 가졌는지 묵상할 수 있다.
첫째, 예수님은 성경을 통합적으로 이해 하셨다. 당시 유대인들은 오실 메시야의 일 부분만 이해했다. 메시야는 왕으로, 해방자로 오셔야 한다고 이해했다. 그러나 십자가의 어린양으로 오시는 부분은 유대인들은 성경을 통해서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한다. “너(예수님을 가리킴)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34) 이들은 메시야를 바로 눈앞에 두고서도 메시야로 보지 못했다. 왜? 성경을 성경 그대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씀은 내 관점에서 보면 안된다. 말씀은 말씀 그대로 봐야 한다. 말씀은 영의 책이기에, 빛의 책이기에 말씀 그대로 보고, 듣고, 순종하면 나도 빛의 자녀가 된다.
둘째, 예수님은 항상 준비된 삶을 사셨다.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35). 예수님께서 며칠 후면 이제 십자가에서 죽으신다. 언제까지나 사역을 계속 할 수 있지 않다. 그래서 예수님은 언제나 깨어 있고, 준비된 삶을 사셨다. 사역을 미루지 않으셨다. 농부가 하루라도 게으르게 되면 한 해의 농사를 망칠 수 있다. 군사가 한 시라도 전투자세를 흐트리고 있으면 언제 전쟁에서 질 지 모른다. 예수님은 늘 준비되어 있었고, 깨어 있었다. 그러한 삶이 바로 빛의 삶이다.
셋째, 예수님은 초점을 맞추는 삶을 사셨다. 이제 며칠 후면 십자가에서 죽으신다. 육으로서 살아가신 생애가 얼마 남지 않으셨다. 그래서 초점을 맞추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36). 숨으셨다는 말은 비겁하게 도망갔다는 말이 아니다. 남은 며칠을 가장 중요한 일을 하시기 위해서 초점을 맞추셨다. 요한복음 13장부터 18장까지 예수님은 마지막 생애를 초점맞추는 삶을 사셨다. 그 삶의 핵심은 제자들에게 초점(발을 씻기심, 성만찬), 성령을 강조, 하나됨의 유언, 그리고 기도사역이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에 초점을 맞추셨기에 빛의 삶을 사실 수 있으셨다.
넷째, 예수님은 예언적 경고를 행하셨다. 아무리 많은 표적을 일으켜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라고 하시면서(39), 이사야의 경고의 예언을 다시 한번 더 말씀하신다. 이사야의 예언적 경고는 이런 말씀이다.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40). 얼핏 보면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회개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것 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어떤 부모가 자녀 잘 못 되기 위해서 야단을 치실까? 모든 부모의 자녀를 향한 꾸지람과 야단은 바로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경고이고, 훈계이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른 길을 가기를 원하시는 예언적 경고를 늘 주신다. 이 경고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 선고를 받았어도, 심판이 번복됨을 알아야 한다. 히스기야 왕의 경우가 그렇고, 니느웨 성의 경우가 그렇다. 분명히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오늘날 성도들이 이제 이러한 예언적 경고를 세상을 향하여 선포해야 한다. 이 선포는 심판을 선포하는 경고적인 측면이 있지만, 또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는 사랑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런 예언적 경고는 바로 빛의 선포이기에, 이 선포를 행하는 자는 빛의 사람이 된다.
다섯째, 고난 중에도 영광의 삶을 소망하셨다.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었지만, 드러내 놓고 고백하지 못했다. 즉, 제대로 믿지 못한 것이다. 왜? 유대인 사회로부터 출교를 두려워 했기 때문에. 이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했다(43).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 자체를 영광이라고 믿었다(28). 예수님은 고난 중에서도 영광의 삶을 소망하셨다(41).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 그 결과가 죽음이든, 실패든, 고난이든 관계없이 영광의 삶이라 믿으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결과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 자체를 영광된 삶이라고 보셨다. 그래서 고난 중에서도 영광을 보는 빛의 삶을 사실 수 있으셨다.
이 시대는 참된 빛이 필요한 시대이다. 가짜 빛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시대이다. 아무리 정밀하게 그려서 실제처럼 보이는 ‘촛불 그림’은 결코 휴지 한장도 태울 수 없다. 참 빛은 그 빛이 진정한 살아있는 빛이라면, 성냥불처럼 작은 불이라도 집도 태우고, 산도 태운다. 살아있는 빛. 그 빛은 바로 예수님만 주신다. 그 예수님을 내 가슴속에 모시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 따라 살아갈 때, 성도 또한 빛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예수에 미칠때(광인-Crazy for Jesus Christ), 광인(Life of Light!)이 된다!
2009-2-19 ( 배헌석목사 / pastorbae@gmail.com / www.aahope.net )
| 첨부파일 '2' |
|---|
새벽 Q.T.
Dawn Q.T.
| 번호 | 제목 | 날짜 | 조회 수 |
|---|---|---|---|
| 18 |
아침 식사를 차려 주시는 주님
|
2009.04.15 | 10387 |
| 17 | 큐티본문/2009/04/14/화 (요 20:24-31) | 2009.04.14 | 11570 |
| 16 |
참된 신앙
|
2009.04.14 | 9654 |
| 15 |
부활 신앙이 주는 능력
|
2009.04.13 | 9479 |
| 14 |
죽음과 부활 사이 (특새 6일째)
|
2009.04.13 | 10073 |
| 13 |
다 이루신 예수님 (특새 5일째)
|
2009.04.10 | 9524 |
| 12 |
사명자 예수 그리스도 (특새 4일째)
|
2009.04.09 | 10404 |
| 11 |
기쁜 고난 (Joyful Suffering) (특새 3일째)
|
2009.04.09 | 13405 |
| 10 |
무엇이 진리인가? (특새 2일째)
|
2009.04.09 | 9902 |
| 9 |
준비 되었나요? (특새 1일째)
|
2009.04.09 | 11582 |
| 8 |
요 14:25-31 (2009/03/26/목)
|
2009.03.26 | 11867 |
| 7 |
증인 (요 12:44-50)
|
2009.03.20 | 12412 |
| » |
광인 (요 12:34-43)
|
2009.03.19 | 12513 |
| 5 |
오직 복음! (요 12:1-11)
|
2009.03.16 | 11671 |
| 4 | 날마다 부활을 기대하는 삶 (요 11:17-27) | 2009.03.13 | 11802 |
| 3 |
예수 닮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요 10:22-30)
2 |
2009.03.11 | 11426 |
| 2 |
나는 누구인가? (요 10:22-30)
|
2009.03.11 | 11893 |
| 1 |
하나님을 알라! (벧후 1:1-11)
|
2009.03.01 | 12603 |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