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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만들어 가는 자 (왕상 1:1-10)


1.
시간은 저절로 흘러갑니다.  가만 내 버려 두어도 시간은 스스로 흘러 갑니다.  그러나 그 시간의 흐름 속에 의미를 부여하고, 발전과 완성에로 나아가려고 발버둥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향하여 ‘역사를 만들어 가는 자’(history maker)라고 합니다. 

역사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철저한 의식과 부단한 노력을 통해 만들어져 갑니다.  ‘인생은 살아져 주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다.  살려거든 살아라!’라고 서정윤 시인은 그의 시 “미시시피의 황혼”에서 인생을 절규하듯이 선포했습니다.  사람은 일생을 통해 자신의 생애를 만들어 가고 마감하지만, 개인의 생애는 결코 개인의 생애로 끝나지 않습니다.  최소한 자신의 자녀, 가까운 지인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나비효과처럼, 한번 행동한 것은 결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역사 속에서 영향을 시대 속에, 지역 사회에 끼칩니다.

모든 사람은 동 시대의 다른 사람, 후세대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이런 의미에서 누가, 어떻게 역사를 만들어가는 가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생의 삶을 살아가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누리고 있는 크리스챤은 특히 이 시대의 역사 창출에 진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크리스챤의 행동 하나 하나는 분명히 이 시대 큰 영향을 끼칩니다.  진리를 붙잡고 있는 자들이 크리스챤이라면, 시대의 올바른 역사 창출을 위해서라도 주어진 삶을 진실하게, 진지하게 살아가야만 합니다.

열왕기서는 과거 역사입니다.  그러나 과거 역사를 올바르게 배움으로써 현재 역사를 바르게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열왕기서는 현대를 사는 크리스챤들에게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주는 반면 교사입니다.

역사를 보고도 배우지 못하는 자는 참으로 무지한 자입니다.  반면에, 역사를 통해 배운 자는 미래의 역사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 즉 구속의 역사가 어떤 원리와 방식으로 전개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전개되고, 발전되는지를 후손들에게 보여 줍니다. 

2.
크리스찬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야 합니다.  아무리 힘든 역경이라도, 자신의 삶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 창출의 방향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삶에서 나에게 다가오는 외적 고난, 핍박, 어려움에 대해서 대응하고, 도전하고, 응전하여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합니다. 

범선은 바람이 없이는 전진할 수 없습니다.  바람을 이용하여 앞으로 나아갑니다.  배를 힘들게 하는 바람을 오히려 이용하는 것이 범선의 원리입니다.  바이킹은 맟바람을 이용하여 전진이 가능하도록 하는 돛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역경을 이용하여 오히려 더 강해지는 발판으로 삼은 것입니다.

다윗은 어떤 인생을 살았습니까?  매우 고달픈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전투, 전쟁, 쫓김, 집안의 불화, 정권의 내분, 유혹에 넘어감, 살인 등으로 인해 평생 고난과 역경속에서 산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과 역경의 인생을 산 다윗의 노년을 성경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다윗이 왕위를 솔로몬에게 물려 준 때는 그의 나이 70세 정도로 짐작됩니다.  그가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때가 그의 나이 30세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 준 때는 그의 나이 70세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120세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면, 다윗의 나이가 70세라는 사실이 분명히 노년은 노년이지만, 아주 연로한 노년은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1)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다윗의 노년을 이렇게 표현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단순히 다윗의 육적 상태가 노령화 되었다는 것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이 매우 피곤하고, 지친 인생을 살았음을 말합니다.  사실 다윗은 내외적으로 수많은 고난, 역경 속에 산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가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좀 더 믿음으로 소화하고, 신앙으로 승화하였다면 그의 노년이 그렇게 피곤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아들들이 왕위를 노리며 쟁투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실은 그가 자신의 인생에 주어진 여러 가지 고난의 상황을 온전히 소화하지 못했기에 그는 이런 결과를 맛보게 된 것입니다.

그는 부인을 여럿 두었습니다.  아들만도 19명에 해당합니다.  배다른 자녀들이 많기에 어쩌면 더 엄하게 교육했어야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녀 교육을 너무 쉽게 행했습니다.  맏아들 암논은 자신의 이복 여동생을 겁탈하는 엄청나게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셋째 아들 압살롬은 자신의 아버지인 다윗을 대항하는 큰 불효를 행하게 됩니다.  넷째 아들이 아도니야는 자신의 세 형들이 다 죽게 된 상황에서 자신이 스스로를 왕으로 자처하고 나섭니다.  이렇게 자녀들을 통하여 큰 어려움을 겪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윗이 자녀들에 대해서 엄하게 교육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도니야에게는 질책하는 엄한 교육을 평생에 한번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6).

다윗의 인생은 너무나 많은 역경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마 많이 피곤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가 바르게 행했어야 할 자녀 교육에는 등한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해가 가긴 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창출해야 할 크리스챤들에게는 이런 상황이 변명의 요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입니다.  언제나 크리스챤들에게 도전이 있습니다.  이에 순순히 따라가는 순응의 삶을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죽은 물고기는 아무리 커도 물살따라 흘러 갑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물고기는 아무리 피라미라도 물결을 거슬러 올라 갑니다.  그래서 새로운 인생의 길을 만들어 갑니다.

‘가계의 흐르는 저주를 끊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어 보지 않았고, 또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기에 그리 찬성하는 입장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가지 이 책의 제목이 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저주를 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환경 탓, 여건 탓, 조상 탓, 유전자 탓 할 것입니까?  시대가 주는 도전에 대해서 살아있는 크리스챤이라면 응전해야 합니다.  이방여인인 룻이 응전했고, 기생 라합이 자신의 배경에 대해서 응전했고, 사마리아 여인이 당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응전했고, 막달라 마리아가 자신에게 주어진 귀신들림에 대해서 응전했습니다.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새로운 역사를 창출해 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BC에서 AD로 바꾸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크리스챤은 삶의 모든 상황을 새로운 역사 창출로 만들어 갑니다.


3.
크리스챤은 유명주의(populism)를 따라 가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주신 소명따라 살아갑니다.  유명세는 한 철 유행입니다.  결코 역사의 주역, 주류가 될 수 없습니다.  역사의 주역은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따라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아도니야는 하나님의 주권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주권은 다윗의 열번째 아들인 솔로몬을 통해서 나라의 통치가 연결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도니야는 자신을 스스로 높입니다.  하나님 주권을 따르는 대신에 자신의 내면이 원하는 욕심따라 삶을 살아갑니다. 

군대장관 요압과 대제사장 아비아달이 자신을 후원하고, 왕으로 즉위하는 것을 찬성하게 함으로써 아도니야는 하나님의 주권마저도 자신의 권력과 야심으로 덮어 버립니다.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아비아달은 또 다른 대제사장인 사독을 내적으로 은근히 질투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원래 아비아달은 다윗이 헤브론으로 피난하여 망명정부를 세웠을 당시 제사장의 옷인 에봇을 가지고 가서 다윗을 도운 자입니다.  그런 아비아달이 고마워서 다윗은 아비아달을 대제사장으로 위촉합니다.

그리고 사울이 죽고 난 이후 사울 시대의 대제사장이었던 사독이 다윗의 왕권 시대에도 대제사장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다윗 시대에는 대제사장이 두 명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망명 정부를 섬길 당시 자신을 도왔던 아비아달이 더 중요한 인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언제나 사독의 이름을 아비아달의 이름 앞에 거명합니다.  이는 사독이 더욱 영적으로 대제사장으로서 영향을 끼친 사람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독을 인간적인 눈으로 보게 된다면 아비아달은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분명히 시기 혹은 질투의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지 않고 보게 되었을 대 시기와 질투의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누가 역사를 창출합니까?  역사 창출의 주역은 누구입니까?  근본적으로는 시간을 만드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는 자만이 역사 창출의 사역에 동참하게 됩니다.  사람의 생각, 시대의 인기에 영합하는 자, 인간의 욕심과 야망 따라 살아가는 자는 결코 역사 창출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당시의 상황으로는 왕위 계승 서열 1위였던 아도니야 쪽에 줄을 서는 것이 분명히 줄을 잘 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기따라, 세상 풍조 따라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결단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제사장 사독이었고, 선지자 나단이었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영적인 분별력으로 삶을 살아 왔습니다.  그는 사람의 판단이나 인기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만 좇으며 살았습니다.  그는 일찍이 다윗이 성전 건축하려고 했을 때, 다윗의 일생을 돌아 보면서 성전 건축을 직접 행하는 것을 만류했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밧세바를 통해서 범죄한 다윗에게 가장 바른 직언을 행하였습니다.  그는 영적 분별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왕 앞에서도 직언을 행하는 바른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자신을 따르는 37명의 용사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왕권이 바뀌어도, 상황이 불리해져도 배신하지 않을 언약관계를 맺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끝까지 다윗을 따르고 섬깁니다. 

이렇게 유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만 좇으며 살아가는 자들에 의해서 역사는 진정으로 창출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만 따름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구속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His will)을 따름으로 그 분의 역사(His Story)를 만들어 가셨습니다.  성도 또한 하나님의 뜻 따라 살아갈 때 일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만들어 가는 History Maker 가 될 줄 믿습니다.

(배헌석 / pastorbae@gmail.com / twitter:@hunsukbae / www.aahope.net)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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