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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시편22편] 천년이 가도… (시 22:1-21)
[새벽묵상-시편22편] 천년이 가도… (시 22:1-21)
천년이 가도…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22:3)
기도를 드렸는데, 천년동안 응답이 없었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요? 한번 묵상을 깊이 같이 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시편 22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부르짖으면서 드린 기도로 유명합니다(1). 신학자들에 의해서 전달되는 성경신학적 내용으로, 그냥 이론으로 신앙의 이론을 정립하게 되면 매우 중요한 것을 빠트리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개인적 신앙’의 영역이 충실하게 세워 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시편 22편을 묵상하면서 그동안 들어왔던 관점을 좀 더 넘어서는 묵상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렇다고 각 절에 있는 내용을 무시해서 묵상하면 안된다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시편 22편은 신앙인으로서 다윗이 겪었던 실존적 어려움, 고난, 한계의 상황, 그리고 그런 처절한 상황에 대한 다윗의 신앙적 자세를 먼저 살펴봄은 중요합니다.
다윗의 상황은 실제로 처절했습니다.
신음(1), 밤낮 응답없음(2), 내적 괴로움(6), 관계적 괴로움(6), 조소(7), 하나님 모독(8), 고독(11), 무능과 무기력(12), 내면 좌절(14, 15), 감당키 어려운 공격들(16), 죽을 고비(20) 등등… 각 절들의 내용은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최대치라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제가 이러한 고통의 내적, 외적, 관계적 상황을 당했다면 저는 이미 심장이 터져 버렸을 것입니다. 정신이 돌아버리거나, 어쩌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신앙인은 기도를 드립니다. ‘내 하나님이여’(1)라는 두 번 반복된 표현 속에는 간절함과 함께 하나님에 대한 애절함이 깃들여 있습니다. 어쩌면 자기 주위에 다윗이 의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 누가 다윗을 이해하겠습니까?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포기할 정도의 상황이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내 하나님이여’라고 고백하게 되는 상황을 보면서… 신앙인이 너무 힘들어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신음소리정도로 내는 이런 고백도 할 수 있다는 것… 나의 극한 한계 너머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저는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신앙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찬양하게 됩니다(3). 이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이 아니면 안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조상들, 즉 과거에도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계속 기도 드립니다(4-5).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존재 너머에 계시고, 시간 너머에 계시는 분이십니다(9-10, 21).
그리고 제가 묵상을 계속 하는 동안 17절과 18절에 와서 저는 가장 큰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는’ 이 상황은 다윗이 겪은 상황과는 거리가 멉니다. 실제로 다윗은 이런 상황까지 경험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상황은 십자가에서 그대로 재현되었습니다. 다윗을 앞으로 오실 메시야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예표적 인물 및 상황으로, 그렇게 신학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언약 신학에 기초하여 하나님은 반드시 구원 약속을 성취하시는 그런 하나님으로 이해함도 맞고, 필요합니다.
그러나 실존적 신앙인의 측면에서 느끼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폭과 길이였습니다. 다윗은 어쩌면 자신의 상황에 대한 극복 차원에서 간구하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 개인의 인간적 간구를 들어 주시는 것 이상으로 영혼의 구원, 즉 십자가를 통한 참된 전인적, 인격적, 영원한 구원을 하나님은 생각하셨음에 틀림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했던 그 이상의 폭과 길이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당시 다윗은 못 느꼈겠지만, 거의 천년 후에 십자가에서 이 기도에 대한 응답을 그대로 행하시면서 다윗에서 100여년의 인생을 넘어 천여년의 폭으로 응답하심으로 영원한 삶,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폭으로 기도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저는 깨달으며… 거의 기절할 뻔 했습니다. 기도는 이렇게 강력한 것이구나…
기도는 인간의 생각과 가치관의 범위를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폭과 길이로 응답되는 것이구나….
‘천년의 사랑’이라는 대중가요가 있습니다. ‘천년이 가도 난 너를 잊을 수 없어… 사랑했기 때문에…’라는 가사가 담긴 애절한 곡입니다. 이 곡 속에는 천년이라는 긴 세월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간절함과 애절함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한계 속에 갇힌 인간의 관점에서 이 가사는 애절함은 있지만 ‘희망 사항’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천년의 사랑’이 희망사항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기도의 실제적 능력과 광대한 폭과 길이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너무나도 크게 깨달은 주일 아침 묵상이었습니다.
(매일 성경-새벽 묵상 / 시편 22:1-21)
| 첨부파일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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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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