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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에스겔29] “어떻게 하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다시는 너희 예물과 너희 우상들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말지니라…”(21:39) 거룩은 ‘구별된 삶’을 의미한다. 세속에서 완전히 단절되어, 관계도 없이 사는 것은 거룩의 참된 의미가 아니다.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삶! 영어로 굳이 표현한다면 living in the world, but not of the world 의 삶을 말한다. 세상 위에 있어서(above the world)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사는 것은 실은 매우 위선적으로 살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서 살 수 없고, 이 세상 안에서 살 수 밖에 없다. 더구나 SNS 가 많이 발달한 이 시대에는 더욱 더… 세상에서 사는 한, 세상과 연관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참된 거룩의 삶이 어려운 것이다. 거룩해야 영향력을 끼친다. 거룩해야 영적 권위가 있다. 거룩해야 진실한 신앙의 모습을 갖는다. 그래서 거룩은 중요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이 거룩의 문제를 정말로 많이 얘기하셨다. 구약을 통독해 보면 얼마나 많은 경우를 통해 하나님께서 ‘거룩’을 말씀하셨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레위기서는 핵심 주제를 ‘거룩’이라고 쉽게 알 수 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거룩을 중요시 여기신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서 ‘거룩’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삶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신앙인은 하나님을 믿는, 복음의 능력을 이해한,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동행하심을 늘 민감하게 구하는 자들이다. 신앙인의 표징은 거룩함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순수한 신앙을 요구하신다. 하나님만이 거룩의 원천이시기에, 하나님과 다른 세속적 요소를 혼합 할 때, 거룩의 능력을 잃어 버리기에… 하나님은 순수한 신앙, 즉 거룩함을 언제나 강력하게 요구하신다. 그래서 산당을 하나님은 무너뜨리라 하셨다. 가나안 원주민 신앙(기복신앙, 인본주의가 대부분)을 섬기는 장소인 산당이 예루살렘 성전과 함께 예배의 장소로 사용되면,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은 혼합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산당을 제거하라 하신다. ‘이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다니는 산당이 무엇이냐 하였노라…’(29) 이 표현 속에는 하나님의 강력한 냉소가 담겨져 있다. 산당은 ‘바마’라고 당시에 표현되었는데, 그 의미가 ‘바’는 ‘다닌다는 뜻이고, ‘마’는 ‘무엇이냐’는 뜻(성경 해설란 참조)으로서, 연결해서 표현해 보면 ‘너가 뭣 찾아 그렇게 다니냐?’ ‘너 찾는다고 다녔는데 진짜로, 제대로 찾았니?’ ‘찾아 보니 정말로 있디?’ 등과 같은 표현이다. 산당신앙은 그 속에 진리도 없고, 거룩도 없고, 더러운 인간의 욕심과 욕정만 있다. 참 자유를 주는 진리가 없다. 그런데 그 속에 무엇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찾아 다닌다. 그런데 찾는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냉소하신다. ‘너 그렇게 찾아 다녔는데 있디?’ 그 냉소 속에는 우리로 하여금 진짜를 찾기를 원하신다. 진짜, 즉 하나님을 찾아야 거룩하게 되고, 거룩해야 세상에 참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영향 받지 않고, 영향 주게 된다. 영적 삼투압 싸움에서 더 찐해야 영향 주게 되는 것이다. 거룩은 단순히 예배 시간에만 찾는 것이 아니다. 음란으로 혼탁한 이 시대에, 거룩은 진정으로 성도가 추구해야 할 목표점이다. 산당신앙으로는 안된다. 하나님과만의 시간(aloneness with
God), 즉 참된 안식의 개념에 대한 진정한 이해,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실제로 안식의 시간을 갖는 것(being with God)이 오늘날 바쁜(?) 성도들에게 적용될 때, 참된, 진실한 신앙의 모습을 갖게 될 것이다. 그 결과 거룩을 힘입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세상에 진정한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는 순전히 개인적인 적용인데…) 내 경우는 새벽의 기도 시간을 중요시 여기며(그렇게 하지 않으면 많은 관계들로 인해 하나님과의 매일 규칙적인 시간을 방해 받지 않고 가질 수 없기에), 하루에 한시간 정도는 (스마트 폰도 내려 놓고) 무작정 걸으면서 ‘하나님과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잠자는 시간이 줄어 들긴 해도, 하루 한시간이라는 시간이 아까운 것(?) 같아도… 그 결과는 실제로 180도 다른 것을 경험한다. 하나님과만의 시간(영적 데이트의 시간)은 실은 doing 보다 being 이 중요하다는 말의 실제 실천이고, 능력의 원천이라고… 진심으로 고백 하고 싶다. 이 시대는 ‘거룩(을 위한 처절한) 싸움의 시대’이다. (매일 성경-새벽 묵상 / 에스겔서 20:27-39)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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