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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에스겔39] “이웃이 잘 될 때 같이 기뻐할 수 있는가?”
“이웃이 잘 될 때 같이 기뻐할 수 있는가?”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에
네(암몬)가 그들에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도다”(25:3) 나는 동역자 혹은 동료가 잘 될 때 함께 기뻐하고, 잘 안될 때 함께 슬퍼할 수 있는가? 일이 잘되고, 잘 안되고를 떠나서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할 수 있는 동역자 혹은 동료가 있다는 것 자체가 실은 행복이고 기쁨이 된다. 그러나 실상 우리의 솔직한, 내면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한 공동체의 지체가 힘들고 어려워 할 때, 같이 아파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다른 지체가 잘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을 볼 때 같이 기뻐하는 것은 더 어려운 것이 죄성을 가진 인간의 내면이다. 본문에 나타나는 암몬, 모압, 에돔은 이스라엘의 이웃 친척(?) 국가 들이다. 하나님은 이들의 잘못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심판하신다. 즉, 하나님은 인류 모든 민족, 국가, 개인을 정확하게 하나님은 심판하신다. 즉, 모든 사람은 심판의 대상이다. 즉, 모든 사람은 구원의 대상이다. 즉,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즉, 모든 사람은 구원 받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암몬, 모압, 에돔에 대해서도 다 정확하게 심판의 이유들을 말씀하신다. 암몬의 죄악은 유다 족속이 사로 잡힐 때 그 아픔과 어려움을 같이 마음으로 대하거나, 돕는 대신에 ‘아하 좋다’ 하면서 남의 아픔을 자신의 기쁨으로 여긴 잘못이 있었다고 말씀하신다(3). 모압은 유다 족속을 이방과 다르지 않게, 같은 대상으로 보았다(8). 에돔은 유다 족속이 과거에 잘 못한 것에 대해서 원수 갚듯이 그렇게 앙갚음을 했다(12).
한 마디로 ‘남’일 때 이렇게 할 수 있다. 나의 죄성으로 상대방을 대할 때 이렇게 할 수 있다. 일반 이익 추구 관계라면 이렇게 할 수 있다. 그런데… 가족관계라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남이 잘 못 될 때 같이 아파하고, 남이 잘 될 때 같이 기뻐할 수 있는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 가족관계일 때 가능하다. 목회 하면서 개인적으로 한 분기점이 있었다. 그 전에는 어려운 일이 있으면 힘이 들었고, 목회 현장을 떠나고 싶었고, 괴로움이 극에 달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분기점 이후로는 동일하게 어려운 상황이 되어도 문제 상황이 풀릴 때까지 노력하고 싶고, 어려워도 끝까지 노력해 보아야 하겠다고 포기하지 않게 되었다. 그 분기점은 섬기는 목회 현장의 성도님들을 교회 교인들로 보는 단계에서 ‘가족’으로 대하게 되는 마음의 변화가 있었던 시점이었다. 그 날 이전과 이후는 동일하게 어려움은 늘 있지만, 마음은 포기 혹은 좌절 대신 ‘끝까지’ ‘아픔도 힘든 것도 같이’와 같은 헌신의 자세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행복한 목회를 한다. 행복은 불행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같이 어려움을 이겨내는 관계, 즉 가족같은 사람들이 있는 것이 참된 행복이라 생각한다. 교회 공동체가 서로 단순히 ‘교인’관계(같은 교회를 다니는) 를 넘어서 진심으로 한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서로 ‘형제, 자매, 형님, 아우, 언니, 동생’같은 가족의 관계가 될 때 교회는 슬픔도, 기쁨도 같이 나누게 될 것이다. 성도님들을, 교인들을 ‘가족’으로 대하는 목회 현장은 어려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함께’ 이기기를 노력하는 ‘하나님 나라 가족’이 있기에… 행복하다… (매일 성경-새벽 묵상 / 에스겔서 25:1-17)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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