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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누가복음11장] 비움보다는 채움을... (눅 11:14-26)
[새아침 기도회/배헌석 목사] (눅 11:14-26)
비움 보다는 채움을…
예수님 당시는 메시야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과 기대가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구약에 약 300회 정도 메시야의 임재(초림)에 관한 구절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많이 언급 되었고, 당시 상황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기에 유대인들은 메시야에 대한 간절한 기대와 기다림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이 기다렸던 메시야가 어떤 메시야냐 하는 것입니다. 말 못하고, 눈 먼 자를 고쳐 주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연약함을 채워주고, 육체적, 정치적 어려움을 해소시켜 주는 그런 분으로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14). 이러한 메시야관은 나 중심적, 기복적, 이기적 동기에 의해서 나온 메시야 관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메시야의 존재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미 사회적 기득권을 소유한 자이기에 메시야와 같은 강력한 존재가 나타나면 자신들의 위치가 흔들릴 것을 알았기에 이들은 겉으로는 메시야를 기다리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자신들이 메시야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당시 종교 사회 속에서 기득권을 누렸던 대제사장들, 종교 지도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귀신 쫓아 내는 것을 보시면서 바알세불, 즉 마귀가 귀신을 쫓아 낸다고 하는 말이 안되는 주장을 하며 예수님의 메시야적 권능을 부인하려고 합니다(15).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 구약의 엘리야 처럼 불을 하늘에서 내려 주도록 하는 것과 같은 초자연적 기적, 또는 놀라운 표적을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16). 이들은 자기 병이나 물질축복 등을 바라는 기복적 자세를 넘어서기에 고귀하게 보이지만, 이들 또한 샤마니즘적 관점으로 메시야를 바라보는 자들이었습니다. 자연의 위대함이나, 인간의 영원과 절대를 향한 숭고한 마음은 귀한 것이지만, 그것을 초자연적 영역과 기적 등의 영역으로만 이해하려고 하고, 경험하려고 하는 자세는 인간의 숭고한 종교성을 드러낼 따름이지, 절대적 존재이신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죄악을 속량하시기 위해 인간으로 오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인간과 인격적 관계를 가지시며, 참된 교제(안식의 진정한 의미)를 갖기를 원하시는 근본적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결여된 인간의 고귀한 종교적인 모습에만 머무르는 한계를 갖습니다. 이 그룹 속에는 종교성은 있어도, 존재론적인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세가지 메시야에 대한 관점은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면서 혹시 우리들은 기복적 관점의 메시야 대망론, 내가 메시야라고 하는 메시야 신드롬, 그리고 인격적 본질적 구원이 결여된 종교적 관점의 메시야론 등을 혹시 우리가 갖고 있지 않는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실제로 겸손히, 진실하게 오늘날의 신자들의 삶을 바라 보면 어쩌면 잘못된 메시야론을 많이 갖고 있지 않는지 돌아 보게 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바알세불이 귀신을 쫓아 낼 수 없듯이, 타락한 피조물(타락한 인간, 타락한 천사, 즉 마귀)은 결코 죄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고(17-19),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죄의 권능을 이길 수 있으며(20-22), 그 하나님의 권능을 의지하는 것은 단회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되고, 삶의 현장에서 ‘계속’ 되어야 하는 ‘관계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24-26)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올바른 메시야관을 갖고 다시 오실 주님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의 철저한 자기 부인, 하나님’만’을 의지, 그리고 그 하나님을 ‘계속’ 의지하는 이 세가지 자세를 가질 때, 우리는 이미 하나님을 삶의 현장에서 모시는 ‘하나님 나라의 임함’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비움에도 초점을 가져야 합니다. 인간의 죄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자기를 부인하는 비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가 늘 가득한 채움 또한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빈그릇과 같은 인간에게 마귀가 한번 나갔다고 좋아만 하게 되면 일곱 귀신이 들어와서 더 강력하게 죄로 이끌게 됩니다. 빈 그릇은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계속 계실 때, 영적 능력과 거룩과 영광된 삶을 이 땅에서 살게 됩니다.
죄를 인정하고 자신을 철저하게 부인하십니까?(비우십니까?)
하나님을 계속 의지하심으로 하나님으로 채움 받고 계십니까?
신앙생활은 점이 아니라 선입니다.
신앙생활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끊임없이 샘솟는 성령의 물로 계속 샘솟게 될 때
죄악 물결 속에서도 깨끗한 옹달샘의 삶을 계속 살게 됩니다.
(매일 성경 새아침 기도회 묵상: 눅 11:14-26)
앤아버 소망 교회 ‘줌’
주일 예배 @ 2 PM / 새아침 기도회 @ 6:30 AM / 수요 성경 공부 @ 7:30 PM
https://us02web.zoom.us/j/5616249763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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