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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시편 한 편…] 오늘은 시편 13편: 가장 큰 고통은 아무리 간구해도 응답이 없을 때가 아닐까요…
[매일 시편 한 편…] 오늘은 시편 13편: 가장 큰 고통은 아무리 간구해도 응답이 없을 때가 아닐까요…
“But I have trusted in thy mercy; my heart shall rejoice in thy salvation.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5)
시편 13편은 너무나 큰 고통 중에 드리게 되는 ‘간구시’ ‘비탄시’라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1)라는 첫마디의 비탄표현을 통해서 시인이 가졌던 가장 큰 고통이 바로 ‘응답이 없는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물론 수많은 고통의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간절히 간구하는 상황 가운데, 외적 응답이나 변화가 없는 것도 아픔이지만, 내면과 마음의 평안 조차 갖지 못하게 될 때, 그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까지…’라는 표현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시인의 내면 상태가 참으로 고통스러운 상태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이렇게까지 표현합니다.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3). 이 말은 자신의 내면이 거의 죽음에 가깝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4). 급기야 하나님의 존재마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 의해서 약화되거나 부정되는 결과를 갖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면서 신앙인으로서 갖는 시인의 내면은 거의 바닥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시편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묵상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나 중심적으로 하나님을 대하는구나…’. 내가 기도하고, 내가 무엇이 필요할 때 응답해 주시기를 바라는 그 마음, 내면 속에는 여전히 ‘나’라는 자아가 저의 중심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탕자가 돌아 올 때까지 기다려 주시는 그 하나님의 기다림… 하나님의 자녀들이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 찾을 때까지 찾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중심은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우리’였던 것을 이 시편을 묵상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우리)의 기다림은 너무나 자기 중심적이고, 짧은 인간의 한시적 마음 크기에 제한된 기다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물론 1-4절까지의 내용이 한숨에 읽을 수 있는 그런 짧은 시간이 아니라, 시인에게는 매우 긴 기간, 어쩌면 평생의 시간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영원의 하나님을 기억할 때… 여전히 우리의 기다림은 너무나 짧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국 시인의 이러한 깨달음을 읽는 순간 저도 기쁨의 동의를 하게 됩니다.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5). 그렇습니다. 주의 인자하심의 크기를 제가 다 알지 못하지만, 기다림의 과정 속에서도 함께 하시고, 기다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더 큰 선하신 뜻이 그 속에 있고, 결국은 영원한 기쁨을 위해서 기다림의 끝이 있다는 것도 그 하나님의 ‘인자하심’속에 다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 ‘기다림’을 이제 받아 들이게 되고, 기다림 가운데 하나님의 더 깊고 넓은 뜻을 더 묻게 되고, 이 기다림 속에서도 여전히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예수님을 성령 하나님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함께 기다림이 참으로 귀하고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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