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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30 23:23
다윗왕 시대때에는 예루살렘 성벽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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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목사님 ^^*
역대하와 열왕기상을 동시에 읽고있는데 신기한것이 있더라고요
솔로몬이 왕이되어서 한것이 많은데 (성전건축, 왕궁건축) 그런데 그중 하나는 성벽건축이더라고 적혀있던데
그럼 그때까진 (다윗시대 포함) 예루살렘에 성벽이 없었다는건가요?
역대하와 열왕기상을 동시에 읽고있는데 신기한것이 있더라고요
솔로몬이 왕이되어서 한것이 많은데 (성전건축, 왕궁건축) 그런데 그중 하나는 성벽건축이더라고 적혀있던데
그럼 그때까진 (다윗시대 포함) 예루살렘에 성벽이 없었다는건가요?
신앙생활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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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성경을 자세하게, 주의깊게 읽으시려고 해서 좋은 자세라 생각됩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단순한 성벽이 아니라,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둘러서, 보호하는 곳이기 때문에 더 큰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1차 귀환 한 뒤 먼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고, 2차 에스라의 귀환과 함께 본격적인 신앙 생활과 제사가 부활 되었으며, 3차 느헤미야의 귀환으로 예루살렘 성벽이 건축되었습니다. 성전은 제사의 장소이고, 성벽(예루살렘 성)은 신앙적 삶의 장소이므로, 신앙인에게 두 가지 개념이 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루살렘 성벽을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은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기브아에 자신의 거처를 정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왕이 된 후, 기브아 성의 네 배에 달하는 여부스 사람의 성읍인 시온 산성(오늘날의 예루살렘 구 시가지에 해당)을 거점으로 도성을 세우게 됨으로서 예루살렘 성은 ‘다윗성’이라고도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자신이 거처할 궁을 세웠기에 당연히 성벽도 세웠습니다(삼하 5:7-9.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물론 이 때 성벽을 세운 것은 이미 기존에 있었던 밀로의 성벽을 개축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개축과 함께 왕궁을 세웠고(삼하 5:11), 북쪽 오르난 타작 마당에 성막과 언약궤를 안치시킴으로써 예루살렘이 신앙의 중심지가 되게 했습니다(삼사 5:5-6; 6:1-15).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당대에 왕궁을 지은 뒤, 하나님의 전을 짓고자 했으나 그 일은 솔로몬에게 넘어갔습니다(삼하 7장).
솔로몬은 자신의 통치 기간 중 예루살렘 성전을 짓고, 그 뒤 자신의 궁을 지었으며, 예루살렘 성벽을 쌓아 올렸습니다(이 또한 개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왕상 3:1’ 9:15). 그리고 그 밖의 다른 곳에 많은 건축물을 남기기도 했습니다(왕상 9:17, 19, 24). 즉, 솔로몬이 처음으로 예루살렘 성벽을 쌓은 것이 아니라, 이미 고대에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성을 이룩할 때 자연스럽게 외부 침입으로 부터 방비하기 위해서 성벽은 당연히 만들어 졌던 것입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 왕궁을 세울 때 이미 있던 사람들이 만들어 놓았던 성벽을 개축했고, 솔로몬 또한 다윗 왕이 개축한 성벽을 또한 더 좋게, 더 강하게 개축했던 것이지, 솔로몬 왕이 처음으로 성벽을 신축한 것은 아닙니다.
성전 그리고 성벽, 특히 예루살렘과 관련하여 건축을 하였다는 것은 신앙 생활의 올바른 자세, 기본 생명력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솔로몬의 성전 건축과 성벽 개축은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그 뒤 스룹바벨의 성전 건축, 느헤미야의 성벽 건축 또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삶의 예배, 산 제사의 삶 또한 이런 맥락에서 늘 살펴보고, 무너진 데가 없는지, 그리고 잘 점검함으로 거룩한 성전, 거룩한 산 제사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 배헌석 / pastorbae@gmail.com / www.aahope.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