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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묵상-레위기/12] “You Are What You Eat”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11:44) – “You Are What You Eat”
영어
표현에 ‘You are what
you eat.”라는 표현이 있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이 정해 진다’는 의미라 볼 수 있다. 먹는 것은 중요하다. 먹는 동기, 먹는 자세, 먹는 양, 먹는 종류, 먹는 속도 등은 그 사람의 몸 뿐만 아니라, 마음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그렇게 먹는 자세와 과정과 결과는 그 사람의 영적 상태와도 연결되며,
영적 내면을 음식과 몸으로 보여주는 영향력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은
전인적으로 해야 한다. 또 원래가 전인적인 것이다. 육신과 영혼이 분리된 것이 아니다. 영혼의 상태가 육신에 영향을 끼친다. 물론 영혼의 우선순위적 능력과 모습이 있지만,
그 영혼은 육신에 영향을 끼치고, 또 육신 또한 영혼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하루에 세번 정도, 혹은 그 이상을 먹는다. 먹는 것은 삶의 일상사이다. 먹지 않으면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레위기 11장은 한 장 전체를 먹는 것을 다룬다. 동물, 어류, 조류, 곤충 심지어는 음식을 담는 그릇의 사용 부분에 이르기까지 자세하게, 먹을 것과 관련된 총체적
메뉴를 성경은 다루고 있다. 이는 삶의
가장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인 먹는 것과 관련된 삶을 살 때, 늘 영적으로 점검하고, 깨어 있으라는 말이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아니, 먹는 것까지
신앙과 결부해야 하나요?’ ‘먹는 것
정도는 조금 자유함을 가지고 원하는 것을 원하는 대로 먹으면 안되나요?’
‘치사하게 먹는 것까지도 신앙과 결부시켜야만 하나요…?’
이러한
질문의 이면에는 무슨 생각이 있는가? ‘나의 삶과 나의 신앙은 어느 선에서는, 어느 영역에서는 조금 별개로 하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과연 삶과 신앙은 별개로 되고, 분리가 될 수 있는 영역인가?
여기서
우리가 꼭 생각해 봐야 할 점검 포인트가 있다. 레위기서는 ‘구원을
위한 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레위기서는 출애굽기 다음에 기록된 책이라는 사실이다. 즉, 레위기는 ‘이미 구원 받은 백성이 구원받은 자로서 살아가야 할 삶의 규범을 다룬 책’이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받았다. 신앙생활은 좀 더 그 구원을 기억하고, 되새기고, 의미를 더 깊게 깨닫고, 그리고 삶 속에서
구원의 실제적 삶을 살아갈 때 구원 자체가 갖고 있는 능력을 더 깊게, 많이 체험, 확인하게 되고, 그로 인해 신앙생활은 더 큰 활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레위기서는
바로 그런 ‘구원의 확인’ ‘구원의 깊은 세계에로 들어감’ ‘구원의
실제 삶에서의 깨달음과 더 깊은 체험을 위한 가이드 라인’과도 같은 책이다.
레위기를
통해 구원받는다고 생각한다면 삶의 모든 영역은 부담이 될 것이다. 정말로 하나님을 치사한 하나님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먹는 것 가지고 치사하게 복잡한 규율을 만들어서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에 반대되게, ‘먹을 때 부담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먹는 것 가지고 복잡하게 걸고 넘어지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돼지족발 좋아하는 분들, 낙지와 오징어 회(무침)를 좋아하는 분들 등은 레위기가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시험들게 되는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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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레위기가 출애굽기 이후의 삶을 위한 책임을 생각할 때,
레위기를 ‘구원 받기 위한 책’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의 깊고 풍성한 삶을 위한 책’임을 기억하게 되고, 레위기의 모든 규례가 ‘은혜로 받은 구원'의 넓이,
깊이, 높이, 길이를 깨닫게 되는 매우 소중하고
귀한 책이 될 것이다.
레위기 11장에 나타난 모든 종류의
음식대상들은 나름대로 그 의미가 있다. 부패도 및 소화와 관련된 건강적 측면의 관점도 있지만 실은 영적인 차원으로 바라 보기 위한 상징적 의미의 차원이 더 근본적인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의 판별 기준을 주신 이유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굽이 갈라진 것(즉 쪽이 지어진 것)은 세상과의 구별을
의미하기에 정한 것이고, 되새김질 하는 것은 말씀을 되새기면서 깊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여 준다는
차원에서 정한 것으로 성경은 말한다. 또 지느러미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생명력과 방향성을 의미하며, 비늘은 오염된 세상에서 오염되지
않는 거룩한 삶을 산다는 의미에서 정한 것으로 성경은 말한다.
또
죽은 고기를 먹는 조류는 부정한 것이며,
네발로 배를 땅에 대고 사는 종류는 저주 받은 뱀을 상징한다는 차원에서 부정한 것으로 성경은 말한다.
모든
종류의 음식을 대하면서도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세로 대할 때,
삶의 전 영역을, 전 시간대를 영적으로 깨어있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경건을 묵상하고, 거룩의 삶을 결심하다가도 ‘매우 맛있게 보이는 음식’을 대하게 되는 순간, 모든 경건과 거룩을
잊어 버리고, ‘먹기를 탐할 때’가 많음을 고백한다. 그럴 때는 먹고 난 후에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몸에 좋지 않지만, 입에 맛있다고 많이 먹을 때가 많고, 적당히 먹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식욕,
즉 식탐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할 때가 많다.
지나치게
맵거나 짠 것과 같은 자극적인 것을 찾는 것은 습관적인 이유도 있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불만족의 외적 표현인 경우도 있음을 고백한다.
신앙생활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이 땅에 살기에 너무 쉽게 거룩함을 잊어 버린다. 너무 쉽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잊어 버릴
때가 많다. 특히 인간의
3대 욕망이라 할 수 있는 먹는 것(식욕), 쾌락적인 것(성욕), 외형적인 것(주거욕, 지위욕)에 인간은 매우 약하다. 3대 욕망의 영역을 보게 되면 쉽게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
버리기 쉽다. 쉽게 탐닉하기 쉽다. 쉽게 은혜를 금방 쏟아 부어 버리게 된다.
그러나
가장 자주, 반복적으로, 평생, 매일, 매 순간 대하는 음식을 대하면서 늘 ‘깨어 있는 자세’로 대하게 된다면 실은 삶의 매우 구체적인 영역과 매순간의 삶을 거룩으로 깨어 있을 수 있게 된다. 먹는 순간에도 ‘거룩’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면, 신앙인은 실은 삶의
전 영역에서 거룩을 세상에 보여주고, 나누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결국
‘무엇을
먹는가가 너 자신을 결정한다’(You are what you eat)는 말은 실은 ‘무엇을 먹는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먹는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자기 내면에 불만이 가득하고, 참된 삶의 만족이 없는 사람이라면 ‘먹는 것’에 목숨을 걸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늘 경쟁의식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은 ‘자기 먹을 것 챙기기에 바쁠 것’이고, 삶을 자포자기한
사람은 ‘아예 안 먹거나’ 아니면 ‘술과 마약 등으로 자기 몸을 망치는’ 경우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먹는 것’과 ‘먹는 자세’는 달라진다. 신앙인은 먹기 전에 늘 자기 정체성을 확인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할
때, 그 정체성을 가질 때, 삶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게 접하게 되는
‘먹는 영역’에서 조차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을 기억하고,
유지하고, 나누고, 선포하게 될 것이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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