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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9:7) – “신학교가 중요한 이유!”

레위기는 어려운 책이다.  그러나 중요한 책이다.  중요성을 가슴에 품고 레위기를 보게 되면 어려운 것이 고맙게 된다.  어려울 수록 더 제대로 알려고 노력하게 되고, 노력할 수록 더 깊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레위기는 1장부터 7장까지 5대 제사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제사는 예배이다.  은혜로 구원 받고, 은혜로 출애굽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사(예배)는 가장 중요한 신앙 훈련, 신앙 성장의 길이 된다.  하나님을 제대로, 바르게 만나는 것이 참된 영적 훈련, 영적 성장의 길이 되는 것이다.

레위기 8장부터 10장까지는 그 제사들을 집전하는 제사장에 관한 규례가 나온다.  제사장 없이 제사가 드려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바른 제사가 드려지기 위해서는 바른 자세를 가진 제사장이 필요하기에 제사장 규례 또한 복잡하고 까다롭다.

복잡하고 까다롭기에 오늘날의 목회자들이, 그리고 ‘왕같은 제사장들’인 모든 성도들이 이 제사장 규례의 의미를 바르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바르게 깨달을 수록, 바른 제사(예배)가 드려지게 될 것이고, 바른 제사(예배)가 드려지게 될 때, 교회는 바른 교회, 즉 세상을 바르게 섬기는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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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의 임직은 매우 엄중하게 진행되었다.  매일 속죄제, 번제, 화목제가 차례로 드려 졌다.  번제는 아침과 저녁에 드려 졌으므로 2회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때, 하루 최소 4회의 제사가 드려진 셈이다.  그런데 이 4회 패키지 제사를 제사장 임직을 위해서 7일 동안 매일 드려야 한다.  즉, 28회 정도의 제사가 일주일 동안 드려지는 것이다.

제사 한번 드리는 것이 쉽겠는가?  제사 준비와 제사 진행, 제사 이후에 갖는 추후 절차 등을 합하면 하루 종일 제사로만 진행해야 한다.  그것도 7일 동안 회막을 나가서는 안된다.  온종일, 일주일 내내 회막 안에서 제사로만 마음의 전부, 시간의 전부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덟째 날이 되었다.  이 날은 제사장으로서 직무를 시작하는 날이다(9:1).  제사장 직무 중의 가장 중요한 직무가 무엇인가?  당연히 백성들을 위해 제사를 드려 주는 것이다.  

그런데 모세는 아론을 향하여 뭐라고 말하는가?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라고 말한다(7).  아니, 일주일 내내 제사장 임직을 위해서 7일 동안 무려 28회 정도의 제사를 그토록 많이 드렸는데… 이제 막상 제사장 업무를 보려고 하는데… 한번 더 제사장을 위해서 제사를 드리라고?  

본문의 이 표현을 보는 순간, 목회자의 입장에서 제사장과 한편이라고 생각할 때 하나님께 약간은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28+1…  조금 과하신 것이 아니냐고…

그러나 달리 생각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만남이 어떤 만남일까를 생각해 보니, 이렇게 함도 어쩌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성들을 위해서 제사를 대신 드려야 할 제사장은 백성의 죄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자이다.  자신이 먼저 속죄함 받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죄용서함과 하나님의 복을 선포해야 할 자가 또한 제사장이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과 사랑과 권위와 위엄과 충만과 능력을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보여 주어야 할 자이다.  

그런 그가 함부로, 아무 준비없이, 대충 그렇게 제사를 드릴 수 있겠는가?  백성을 위해서 제사를 드리기 전에, 자신의 속죄를 위해서 한번 더 제사를 드리는 것은 그 의미를 생각할 때 당연히, 반드시 해야 할 과정임을 묵상 중 깨닫게 되었다.

바로 이 제사직분 감당 직후에 나오는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은 이러한 제사장 자신을 위한 속죄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더 보여 주지 않는가?

제사는 단순히 의식이 아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살아있는 신앙의 표현이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제사 드리는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이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보다 더 크신 분께 드리는 예배이다.  그 분이 그 예배(제사)를 받으시기를 원한다면 피조물인 인간이, 죄성을 지닌 인간이 진정한 마음, 진실한 마음, 간절한 마음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진정 그런 마음이라면, 백성들을 위해서 제사를 집전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속죄를 확인하는 제사를 반드시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실존적으로, 실제적으로 만나고, 죄 용서함을 받고, 그것을 선포하는 그 엄중한 의식을 집전하는 입장이라면 자기 자신을 백번, 천번 돌아보고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데,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데… 자기를 점검(속죄제)하지 않고 나아간다는 것이 참된 진정성있는 자세인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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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묵상을 하게 되었을 때 드는 생각이 몇가지가 있다.  

첫째, 목회자인 나 자신을 보면서 나의 삶, 나의 자세, 나의 예배 섬김, 말씀 준비, 기도의 삶, 목회의 구체적인 부분 등 목회와 관련된 전반적 부분을 다시 매우 진지하게 돌아보게 되었다.

과연 나는 제대로 준비하고, 제대로 돌아보고, 바른 자세로 목회에 임하는가?  28+1 의 점검 또 점검, 준비 또 준비 등의 자세를 철저하게 가져야 하지 않을까 라는 매우 깊은 반성과 결단을 하게 되었다.

둘째, 신학교에 관한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교회는 선교 현장에 대해서는 관심을 많이 갖는다.  그래서 많이 선교 후원, 선교사님 후원, 선교 사역 참여 등을 행한다.  그러나 그만큼 교회는 신학교에 관심을 갖는가?  신학교를 위해서 기도하고, 신학교가 올바르 운영되도록 물심양면의 후원 및 관심을 가지는가?

신학교가 살아야 5년 후 교회가 보장된다.  현재 교회가 엉망이라면 실은 5년 전, 10년 전 신학교육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교회가 목회자에 모든 것을 걸고, 좌지 우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목회자의 역할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도,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신학교는 모든 교회들이 눈을 뜨고 지켜 보아야 한다.  철저하고도 풍성한 후원을 해야 한다.  신학교가 영적/질적/지적/도덕적/사회적 등 모든 면에서 어느 수준 이상의 수준을 가져야 한다.  감정적 소명감이 있다고 모두 신학교 가서는 안된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삶의 전인적 영역이 상식 선은 넘어서야 한다.  성품과 인격의 성숙함이 있어야 한다.  삶의 자립도도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관계 형성의 성숙함도 기본적으로 있어야 한다.  지적 능력 또한 있지 않으면 성경에 대한 넓고 깊은 이해를 하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말씀 연구와 교육과 선포 사역에 문제가 된다.

10년후의 한국 교회가 건강하고, 성숙되기를 원하는가?  당장의 결과만 바란다면 신학교를 등한시 하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10년 후에는 더 처참한 결과를 갖게 될 것이다.  진정한 성장과 성숙을 원하는가?  모든 교회들이 선교하는 열정과 헌신만큼 신학교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교회가 두 눈 크게 뜨고 신학교의 성숙을 위해서 기도와 최선을 다 한다면… 부패, 저급, 세속적 모습의 신학교 대신에 신뢰, 건강, 성숙, 거룩의 모습을 갖춘 신학교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러면 비로소 교회를 향해서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셋째, 왕같은 제사장들인 일반 성도님들에 관한 생각이다.  종교 개혁자들의 가장 큰 공헌 중의 하나는 사제 직분과 일반 성도 직분의 차별을 없앤 것이다.  분명히 이 둘 사이에 기능적 구별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제든 일반 성도든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책임감 있게, 헌신적으로 선포해야 할 사역자, 즉 왕같은 제사장임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사안이다.  

성도님들은 자신 스스로가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평신도 사역자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모든 신앙인은 엄밀히 말해서 말씀을 섬기는 사역자이다.  기도해야 하는 기도의 사역자이다.  영혼을 바라보며 영혼구원하고, 영혼 양육하는 사역자이다.  

즉, 28+1의 개념이 목회자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님들의 삶에도 적용되는 사안이라는 말이다.  성도로서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려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직장을 나가는 것도, 가정에서 자녀를 돌보는 것도, 지역 사회에 동참하는 것도, 심지어는 마켓에 장을 보러 가는 것도 모두 사역의 현장이고, 사역의 일환인 것이다.  그 사역을 행하기 전에 왕같은 제사장은 자기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나의 일거수 일투족이 나의 이름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보여지고, 비쳐질텐데… 

이런 관점에서 일주일의 첫 날, 모든 성도가 함께 예배 드리는 주일 예배, 매일 삶의 현장으로 가기 전에 먼저 하나님과의 조용한 시간(Quiet Time)을 갖는 것은 참으로 중요함을 다시 한번 더 깨닫는다.

이래도 하루의 첫 시간(경건의 시간)을, 일주일의 첫 시간(주일 예배)을 안 드리겠는가?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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