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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교육, 바른 교육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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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전반에 대해서 논하고 싶지만... 지면도 그렇고.. 지식도 그렇고... 그러나 너무 중요한 영역이기에 일단 단편적 생각을 오늘 묵상 정리와 함께 나눕니다. 사무엘 상을 계속 묵상하면서, 사무엘 상의 한 주제인 '지도자론'과 함께 참된, 바른 교육을 계속 같이 고민하고, 나누고, 발전시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그 작은 한 부분을 함께 나눕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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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2:21)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논하지 않아도 모두 동의하는 바일 것이다. 특히 부모가 되면 자녀를 향한 교육의 열정은 본능처럼 발휘되기에 거의 동물적 수준(?)으로 자녀교육에 열정을 쏟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그러나 ‘참 교육’ ‘바른 교육’이 중요하다. 교육에 대한 올바른 관이 없이는 올바른 교육도 행하기 어렵다. 한자어로 ‘敎育’은 ‘가르치고, 기른다’는 의미이다. 부모나 어른이 자녀 혹은 학생을 향하여 지식 혹은 지혜를 제공해 주고, 받아서 자라도록 하는 그런 의미가 있다. 즉, 당사자가 아닌, 타인이 교육 대상자에게 무엇을 제공해 주는 의미가 한자어 敎育이 말하고져하는 의미이다.

그러나 ‘교육’이라는 영어 education 의 원래 의미인 라틴어 educare는 그 방향이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끄집어 내어서 실현화 시킨다’라는 의미를 가진 educare 는 ‘안에서 밖으로 끄집어 낸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자어의 ‘교육’의 의미와 그 방향이 정반대인 것을 보게 된다.

자녀 속에 이미 가능성, 잠재성으로 있는 것을 부모 혹은 교사는 격려하고, 자극하여서 자녀 (혹은 학생) 속에 있는 내재되어 있는 재능 혹은 은사를 외형화, 실현화 시키는 것이 바로 라틴어 educare가 갖고 있는 의미인 것이다.

어느 개념이 맞을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은,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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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마다 재능 혹은 은사가 다 다르다. 참된 교육은 ‘각 자녀마다 다른 그 재능’을 발견케 하고, 개발케 하고, 실현화 시켜 주는 것이 참된 교육인 것이다. 교육으로 인한 결과는 당연히 자녀마다 다를 것이 분명한 것이다. 똑같이 상품을 산출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다른 개성의 인물로 자라도록 돕고, 그 각자의 다른 것을 인정해주고, 격려해 주는 것. 이것이 진정한 교육의 참된 목표라는 것이다.

한자어의 개념으로 교육을 하게 되면 밖에서 안으로 주입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동일한 지식, 동일한 결과를 기대하기 쉽다. 그러나 각자 다른 개성을 갖고 태어난 자녀들에게 이러한 상품생산과 같은 교육 방법은 너무나 맞지 않는, 적응하기 힘든 교육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인성 교육, 개성 교육, 각각 다른 재능에 맞는 눈높이 교육관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자녀들은 공장에서 기계 찍어 내듯이 그렇게 상품생산의 차원으로 삶을 살아가게 된다. 평생을 그런 기계처럼, 상품처럼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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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일반 교육론에 대한 반성의 차원에서 잠시 나눠 보았다.

‘교육’을 ‘밖에서 안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끄집어 내는 것’이라고 했을 때, 한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람은 어떤 존재이냐’ 하는 인간관에 대한 것이다.

사람은 분명히 동물과 다르다. 물론 같은 점도 있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동일하게 지적인 측면도 있고, 의지적인 측면도 있다. 동물과 사람 동일하게 감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리고 당연히 육적인 물리적 측면도 있다. 그래서 동물이나 사람 모두 감성도, 지성도, 의지적인 측면도, 그리고 신체적인 영역도 모두 성장하고, 잘 관리되고, 훈육되어야 한다.

그러나 동물에게는 없고,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영원한 세계’ ‘절대적 존재에 대한 의식’ ‘ 죽음에 대한 개념’ ‘신적 존재에 대한 의구심과 열망’ 등의 의식이다. 물론 이런 영역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것은 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 부정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기본적으로 동물과 사람을 일반적으로 비교한다면 사람은 ‘영적 동물’이라고 하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을 영적 동물로 인정한다면… 그렇다면 그 사람 속에 있는 영적 의식에 대해서 참된 교육(한자어 식의 밖에서 안으로 집어 넣어주는 교육 개념이 아닌, 안에서 밖으로 끄집어 내는 교육 개념)의 원리를 적용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어릴 때 부터 ‘영적 의식’ 혹은 ‘영적 세계’에 대해서도 교육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리다고 지적, 정적, 의지적 영역이 없는가? 그 기능의 정도는 달라도 분명히 있듯이, 영적 의식 또한 그 안에 내재해 있는 것을 격려하고, 자극하고, 개발하게 해서 밖으로 실현화 되도록 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어리다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부모들만, 어른들만 예배 드리고, 말씀 공부하고, 기도생활하고… 자녀들은 놀이방에다 데려 놓고 그렇게 지내는 것이 올바른 신앙 교육일까? 태어나는 순간 부터 어쩌면 자녀들 속에 있는 영적 감각력은 더 크게 예민하고, 섬세하게 기능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온 가족이, 전 세대가 같이 예배 드리고, 모든 세대가 같이 기도하며, 신앙 공동체 안에 있는 것은 실은 참된 전인교육인 것이다.

사무엘은 어릴 때 부터 하나님 앞에서 자랐다. 그는 간절한 기도로 태어났고, 태어나면서 부터 하나님께 드려진 삶을 살았다. 어릴 때 부터 세마포 에봇 옷을 입고 자람으로 환경적 요인도 영적인 영역이 함께 하는 전인적 교육 환경속에서 자랐다.

반면 엘리의 아들들은 아버지로부터 올바른 신앙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모세가 받은 제사의 원래 의미가 세월이 흐르면서 ‘변질’된 모습을 띄었다. 제사장에게도 고기를 바치는 제사는 화목제이다. 그러나 화목제 고기를 제사장이 다 갖지 않았다. 넓적 다리 부분과 같은 일정 부분만 제사장에게 돌아갈 몫이었다.

그러나 홉니와 비느하스는 변질된 관습, 즉 세 갈고리로(하나도 아니고, 세 갈고리이다…) 가마 솥안의 고기를 건져서 걸리는 고기는 제사장 몫이 된다는 전혀 영적이지 않는 관습을 자신의 아버지 제사장으로 부터 ‘교육’받은 것이었다. 그 교육안에는 전혀 ‘영적인 면’은 없고, ‘육적인 면’만 담겨 있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라는 외적, 형식적 행위는 배웠어도, 그 참된 의미인 ‘하나님의 임재’라는 영적 의미는 전혀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엘리는 ‘교육적 측면’에서는 낙제점을 가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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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는 매우 많다. 목회자도 무지 많다… ㅠㅠ 신학교도 참으로 많다… ㅠㅠ 그러나 엘리 가문의 ‘빈 껍데기 영적 교육’이 진행되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반면, 한나는 직접 자기 손으로 자녀 사무엘을 기르지 않지만, 매년 작은 겉옷을 아들 사무엘에게 건네 주면서 그 동안 ‘쌓아온 기도’와 함께 건넨다. 참된 기도는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기에, 일년 내내 엄마가 옆에 없어도, 그 기도의 양육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서 자녀 사무엘과 함께 했고, 그로 인해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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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교육의 달 5월에 참된, 바른 교육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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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묵상-사무엘상] 삼상 2:11-21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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