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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견리사의
견리사의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이로움을 보거든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이 말은 안중근 의사가 생애 마지막 상황에서 한 말씀 중의 하나로 그 뜻이 오역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오늘 읽게 되었다. ‘견리사의’를
“이로움의 처지를 당하면 이로운 것인지를 생각”하라고 잘못 해석했다는 것이다. 한자를 잘 모르지만, 이 뜻을 다시 새겨 보면서 이렇게 오역한 것이 이 시대를 반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견리사의’, 즉 득이 되고 실이 되는 이로운 상황을 보게 된다면, 그렇게 득과 실이 되는 이로운 상황이 진정으로 ‘정의로운, 공의로운’ 과정이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자세가 아닐까? 예를 들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아파트 값이 갑자기 천정부지로
뛰어 올라가는 상황과 같은 이로운(?) 상황을 보게 되었을 때, 과연
그것이 ‘정의로운 것인가’를 살펴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나
개인에게는 이로운 상황(?)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아파트나 땅 값이 갑자기 엄청나게 오르는 것은 결코 지역이나
국가에 좋은 것이 아니다. 불로소득의
나쁜 예가 되고, 상대적 빈곤감, 그리고 위화감이 공동체와 국가적으로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결국 그러한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살게 되는 그 부당이익의 혜택을 받은 당사자에게도 결코 건강한 경제관, 가치관으로 주어지지
않게 되는 악순환의 결과를 스스로에게도 낳게 된다. 한국에는
지금 어떤 특정 지역이 매일 치솟는 땅갑,
아파트 가격 등으로 인해 건강하지 못한 사회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챤들이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나 개인의 경제적 횡재(?)와 같은 이익을 좋아하지 않고, 또 조장하지 않고, 오히려 건강한 경제 개념에 의한 집값 안정, 땅값 안정을 위해 함부로 땅장사, 집장사 하지 말고 건강한 경제 공개념의 자세를 갖는 다면…
작게나마 진실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분명
‘견리사의’(이익이 올 때 정당한 의가 이루어 지는 가를 살피는 자세)의 자세는 이 땅의 크리스챤들이 반드시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닐까… 그렇게 함으로
날마다 주기도문을 통해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던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기도 응답의 모습을 보게 되지 않을까…
목회칼럼
Pastoral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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