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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목회 칼럼 11] 시선
[목회 칼럼/Pastor’s Column]
시선 삶에서
가장 즐거우면서도 가장 힘든 것이 ‘관계’라고 합니다.
좋은 관계를 가질 때 우리는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관계가 안 좋으면 삶의 다른 영역이 아무리 좋아도
힘을 잃습니다. 관계는 그만큼 중요합니다. 베드로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예수님께 말씀 드리면서,
자신은 형제가 자기에게 죄를 범해도 일곱번 정도는 용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대답했습니다(마태 18:21). 그러나
예수님은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해야 한다고 말씀 하십니다. 유대인에게
7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를 의미합니다. 베드로가 일곱번이라고
대답했던 것은 자신이 그만큼 사람들에게 완전한 마음과 자세, 관계로 대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매우 황당하게 말씀 하십니다. 그런 일곱번을 일흔번이라도 해야 한다고… 누가 490번 반복해서 잘못 한 것을 용서해 줄 수 있을까요? 이 말씀은 인간의 힘으로는 완전한 용서, 완전한 관계를 가질 수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용서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용서 하지 못하는 ‘미움과 죄악’의 삶과 사회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성경은 이 구절 들에 이어서 곧 바로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비유’로 말씀 합니다. 일만
달란트는 오늘날로 환산하면 약 6조원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개인으로서는 결코 가질 수 없는 돈을 말합니다.
갚는 것이 불가능한 금액입니다.
그만큼 인간 죄악이 크고, 결코 인간 스스로는 죄값을 치룰 수 없는
삶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탕감받았다는
것은 바로 단 하나, ‘은혜’로만 설명되는 말입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이렇게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가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일만 달란트의 1/600,000 에 해당) 빚진 자를
보자 용서해 주지 못합니다. 관계가
바르게 되지 못합니다. 그렇게 큰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관계에 실패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단
하나 이유입니다. 시선을 탕감 받은 자신, 탕감받은 뒤에 자기 앞에 나타난 채무자, 그리고 그 채무자가 자기에게 진 빚 100데나리온에 둘 때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가 1만 달란트라는 은혜에서 시선을 거두는 순간, 은혜를
잊어 버린 순간, 그는 관계를 깨어 버리는 악한 자가 되고 맙니다. 성도의
시선은 늘 은혜, 하나님께 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관계 맺음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배헌석 목사)
목회칼럼
Pastoral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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